{"product_id":"book-9788942390854","title":"임시정부 국무령 석주 이상룡(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인물총서 18)","description":"의병 투쟁과 독립전쟁론의 실제를 두 인물로 생생하게 조명한 평전\u003cbr\u003e\n\u003cbr\u003e\n이상룡이 서간도에서 이룩한 업적과 김하락의 굽히지 않은 투쟁 그 현장을 가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일대기와 전쟁일지 형식의 인물사이자 치열한 구국운동사\u003cbr\u003e\n서로 다른 독립의 길을 걸었던 두 인물을 조명한 경북독립운동기념관총서 18·19가 동시에 나왔다. 안동에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투쟁을 선도했던 이상룡과 이천의진의 영수로 활약한 김하락의 평전이 그것이다. 의병과 독립운동사 연구에 정진해 온 두 저자의 깊이 있는 필치와 경북독립운동기념관 여러 분들의 노고가 더해져 기념서로서나 연구 업적 면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평생 독립의 방도를 고민한 이상룡의 자취\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안동의 재지사족在地士族이자 고성이씨의 종손 이상룡은 명문대가로서 특혜를 버리고 오직 광복의 그날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우당 이회영 일가의 독립운동에 견주어 덜 알려진 감이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이상룡과 그 일가의 독립투쟁이 선연하게 밝혀진다. 이상룡의 독립운동은 크게 국내 활동과 서간도 망명 이후로 나뉠 수 있다. 전자가 의병투쟁과 계몽운동이라면 후자는 독립전쟁 근거지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박민영은 이상룡이 왜 다양한 길로 독립을 모색했으며, 궁극적으로 서간도 독립군 양성에 매진하게 되었는가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가 인용하는 《석주유고》의 글들은 중대한 시점에 석주가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를 투시해 보여 준다. 1911년 1월 27일 서간도로 떠나면서 지은 시 〈도강渡江〉에서 이상룡은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호연히 나아가리라”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강건한 독립 의지는 낯선 땅에서 독립운동을 개척해 나가는 원동력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  이상룡이 간도에서 경학사와 서간도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전쟁 기지를 건설하면서 무엇보다도 주력한 것은 여러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과 통일이었다. 저자는 통합의 지도자로서 이상룡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이상룡이 남만주 독립운동단체 통합조직인 정의부(1924)를 성립시키면서 자신이 이끌어오던 서로군정서를 해산시킨 것이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계의 갈등을 봉합하고자 상해에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직에 오른 것(1925) 등이 그 사례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78176409852,"sku":"9788942390854","price":16.85,"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42390854.jpg?v=1776329143","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42390854","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