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57868331","title":"조선 신극의 기치 극예술연구회 1(한국연구총서 110)(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극예술연구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단체이다. 우리는 사실 극예술연구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많이 양보해도 그저 유치진과 그의 희곡을 알고, 공연한 명단과 공연을 하려 했던 이들의 각오를 알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면만으로는 극예술연구회의 진정한 가치나 역사를 탐색할 수 없다.\u003cbr\u003e\n극예술연구회의 출발은 다소 우발적이었다. 그 시작은 홍해성과 관련이 있다. 축지소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귀국한 홍해성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여러 차례 진행된 바 있었는데, 1931년에는 〈동아일보〉 기자 서항석을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재개되었다. 서항석은 홍해성의 생계 곤란을 해결할 목적으로, 홍해성이 소장하고 있는 연극과 영화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연극영화전람회’를 기획했다. 이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임시 단체인 ‘극영동호회’를 급조해야 했는데, 이 극영동호회가 극예술연구회의 모태이다.\u003cbr\u003e\n1931년 7월 8일 창립 선언을 제창한 극예술연구회는 최초에는 연구 단체에 가까웠다. 발기인 겸 주요 회원은 12명으로, 서항석과 유치진을 비롯하여 윤백남과 홍해성의 연극계 원로를 포함하고 있으며, 김진섭, 이하윤, 이헌구, 장기제, 정인섭, 조희순, 최정우, 함대훈이 가입되어 있었다. 극예술연구회 최초 회원은 외국 문학 전공자들이 대다수였고 모두 일본에서 유학한 경험을 지니고 있었기에 ‘해외문학파’로 혼용되기도 했다.\u003cbr\u003e\n1931년 극예술연구회는 강좌를 개최하거나 강연을 시행하거나 연구생을 모집하는 활동에 주력했고, 단체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단체의 본부(회관)를 마련하는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비평가 그룹으로 활동하며 당대 조선 연극의 흐름을 개괄하고 개별 작품을 품평하는 활동도 시작했다. 특히 대중극단의 공연을 참관하고 그 장단점을 분석하는 비평 활동에 주력했는데, 이러한 비평 행위는 대중극 중심의 조선 연극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라고 할 수 있다. \u003cbr\u003e\n하지만 그들은 이론 확충이나 연극 교유 혹은 비평 활동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연극 분야가 지닌 본질적인 특성이기도 했다. 타자의 연극을 감상하거나 관객들에게 연극에 대한 이론을 알리는 작업 못지않게 자신들이 직접 공연을 수행하고 제반 작업에 뛰어드는 경험을 희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공연을 시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그 계기가 실험무대의 창단이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5163734268,"sku":"9788957868331","price":28.09,"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57868331.jpg?v=1776437675","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57868331","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