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62463262","title":"남한산성 항전일기(병자년)","description":"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u003cbr\u003e\n인조가 명나라와 청나라를 대상으로 편 정책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명분이 실리를 죽인 외교였다’고 할 수 있다. 대명의리론과 명분론은 조선의 국왕은 물론 그 백성들을 철저히 유린한 결과를 불렀다. 그들은 명분 한 가지만을 주요 외교정책으로 내세웠다. 누루하치(후일의 청 태조)가 후금을 건국한 1616년 이후 1640년대까지의 사정을 보면 명·청·조선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저 단선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여러 분야에서 이미 복잡한 관계가 조성되어 있었으므로 조선의 외교가 명나라 한쪽으로만 경도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청나라를 배척하거나 받아들여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그럼에도 17세기 전반을 살았던 조선의 지도층은 대개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조선에 파병하여 나라와 백성을 구해주었다 하여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파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조선의 국왕과 대신들은 현실적인 여건을 무시한 채 청나라와의 전면적인 대결을 선택함으로써 한 나라의 국왕이 삼전도에 나가 삼고구궤의 항복의식을 치르는 굴욕을 당했고, 까닭 없이 백성들만 무수히 죽어나가는 참화를 겪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병자호란은 치욕스런 과거의 역사이지만, 우리들의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될 수 있다. 38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졌던 피눈물 나는 사건을 이 마당에 떠올려보려는 것도 바로 이 점에 있다. 병자호란이나 그 전 정묘호란은 무엇보다도 평형외교에 실패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외교정책을 어떻게 세우고 수시로 바뀌는 국제상황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다양한 외교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나라와 국민에 유익한가 하는 기준이나 교훈을 우리는 나만갑의 『병자록(丙子錄)』과 같은 기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60499581180,"sku":"9788962463262","price":20.22,"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62463262.jpg?v=1776015259","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62463262","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