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62464955","title":"병자호란과 김화 백전전투(태봉학회 총서 4)","description":"병자호란 중 조선군이 거둔 몇 안 되는 승전 중 하나인 ‘김화 백전전투’의 비밀을 풀다\u003cbr\u003e\n16~17세기 동아시아 3국은 큰 변동을 겪었다. 그 직접적인 계기는 임진왜란(1592~1598)이었다. 조선 침공의 실패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은 붕괴하고, 에도막부가 성립하였다. 대규모 구원병을 파견하였던 명은 그 몰락의 속도가 빨라졌다.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를 본 조선 왕조는 새로운 지배 질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왜란으로 인한 혼란을 미처 수습하기도 전에 두 차례의 호란을 겪게 되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명의 국력이 쇠약해진 틈을 이용하여 만주의 여진족은 후금을 건국하고, 명과 패권을 다투기에 이르렀다. 후금과 그 후신인 청은 배후의 조선이 친명정책을 추구하는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1627년과 1636년 두 차례 조선을 침입하였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그것이다. 정묘호란은 양국 간의 화의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1637년 1월 30일 인조가\u003cbr\u003e\n청 태종에게 항복함으로써 끝났다.\u003cbr\u003e\n\u003cbr\u003e\n1636년 12월 14일 한양 인근에 도착한 청군의 선봉대는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한편 인조가 피신한 남한산성을 포위하였다. 이어 청 태종이 대군을 거느리고 남하하여 합세하였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조선 조정은 각도의 근왕병이 구원해줄 것을 기대하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청군에 의해 격퇴되고 말았다. 김준룡 휘하의 전라도 근왕병이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청군을 무찔렀지만 곧 해산하였다. 유림이 지휘하던 평안도 근왕병은 강원도 김화의 백전(栢田)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인조가 곧 항복함으로써 이들은 근왕병으로서의 임무를 다할 수 없었지만, 이 승리는 병자호란 중 조선군이 거둔 몇 안 되는 승전 중 하나였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0262945020,"sku":"9788962464955","price":24.72,"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62464955.jpg?v=1776343123","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62464955","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