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64472743","title":"창세기의 진화론","description":"진화와 창조는 동일한 것이다\u003cbr\u003e\n필자가 이 책에서 논하고 있는 것은 창조와 진화가 사실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세기 1, 2, 3장을 논리적으로 읽었다. 그 결과 창세기 1장이 “지구 생태계의 먹이사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먹이사슬’은 에너지의 이동 경로이다. 즉, ‘에너지의 순환 시스템’이다. 창세기 2장은 “이 지구 자연을 대상으로 인간이 노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노동의 과정에서 막연한 대상 인식이 싹트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지구 인간의 ‘진화사’(進化史)이다. 창세기는 사실상 진화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종교가 이제 와서 과학이 되고자 한다는 비아냥을 듣지 않아도 된다. 창세기 3장에서는 “막연한 대상 인식이 부끄러움을 아는 자기의식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표현한다.\u003cbr\u003e\n지금까지 신학은 목적론적 창조를 말하여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잘못된 사상을 전파했다. 그러나 신은 창세기 1장에서 분명히 자신이 창조하고자 하는 것 그 자체인 것을 맨 먼저 그리고 그에 필요한 것을 우선순위로 하여 창조했다. 따라서 인간은 이 우주에 가장 덜 필요한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필연적으로 창조되었다. 논리에 따라 창조한 이 세계에 논리적인 존재가 없다면, 이 세계는 비논리만이 존재할까? 아니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우주 안에 우주를 이해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오늘날 인간은 지구를 황폐하게 하고 지금은 다른 행성을 식민지로 만들 기획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미래를 우리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태초로 회고해 보면 알 수 있다.\u003cbr\u003e\n성서는 인간을 위한 인간학이다. 그 이유는 이 세계의 전제가 논리이기 때문에 그 논리에 따라 나오는 가능성일 뿐이다. 우리 인간이 논리에 따라 무엇인가를 할 수가 있기에 그 가능성과 필연성에 따라 이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논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 한계에 도착할 때까지 인간은 전진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성서를 읽으면 인간의 미래를 볼 수가 있다.\u003cbr\u003e\n“우리 인간은 자연을 과학의 대상으로 하여 착취할 것이 아니라, 신비롭고 경이와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하느님도 그런 것이다.” 필자는 창세기를 이해하는 데에 생태계와 인간의 노동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0443595004,"sku":"9788964472743","price":30.3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64472743.jpg?v=1776343993","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64472743","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