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66551583","title":"분홍달이 떠오릅니다(삶창시선 70)","description":"작고 낮은 목소리, 그러나…  \u003cbr\u003e\n \u003cbr\u003e\n박영선 시인의 시는 얼핏 보면 단순하게 보이지만 조금 더 시 속으로 들어가면 순결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시를 언어의 기술로 쓴다고 하지만 그 언어도 결국 시인의 영혼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따라서 시에서 느끼는 시인의 영혼은 언어의 기술 능력과는 별개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박영선 시인이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이번 시집은 첫 시집인데 그만큼 또 순결한 영혼이 바짝 다가온다. 예를 들면 시집의 가장 앞자리에 실린 「10월」이란 작품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소리가 없는 것들은 \u003cbr\u003e\n적막한 혀를 가지고 있을 거야 \u003cbr\u003e\n노래를 불러줄까 \u003cbr\u003e\n쓸쓸한 나의 노래는 늘 낮은음자리 \u003cbr\u003e\n중얼거리는 손가락들이 \u003cbr\u003e\n주머니 속에서 꿈틀거렸다 \u003cbr\u003e\n_「10월」 3연\u003cbr\u003e\n\u003cbr\u003e\n박영선 시인의 목소리는 이렇듯 작고 낮다. 발문을 쓴 황규관 시인의 말마따나 이것은 정직의 모습이다. 박영선 시인은 이런 작고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돌아보고 생활을 돌아본다. 충혈된 자아가 너무도 흔한 시대에 이런 목소리는 읽는 이를 고요하게 한다. “강은 흐르고 나는 물소리에 귀를 적시다\/ 들풀 가득한 오솔길을 맨발로 걷고 싶네”(「길 위에서」)라는 표현이나 “작은 몸 하나에\/ 많은 손들이 나왔다\/ 손들은 해보다 더 반짝거렸다”(「기억의 봄」) 같은 감각적인 언어는 더욱 그것을 촉진시킨다. 그래서 시집을 다 읽고나면 작은 숲을 지나온 느낌을 준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어느 해 바람 불고 꽃피우는 날 \u003cbr\u003e\n가만히 눈감고 불러볼 \u003cbr\u003e\n쓸쓸한 이름 \u003cbr\u003e\n후회처럼 \u003cbr\u003e\n내게 돌아올 시간들이여 \u003cbr\u003e\n주저했던 발걸음이여 \u003cbr\u003e\n기나긴 \u003cbr\u003e\n먼지의 시간들이여  \u003cbr\u003e\n_「먼지의 시간」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이 시에서도 화자의 목소리는 작고 낮지만 신생의 시간을 불러들이는 주술이다. 그런데 그 주술이 요란하거나 선언적이지 않다. 도리어 “주저했던 발걸음”이나 “먼지의 시간들”을 가만히 긍정하는 화자의 태도가 보인다. 즉, 박영선 시인의 작고 낮은 목소리는 타자를 시인의 마음 안으로 모시기 위한 본능적인 태도에 가깝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타자를 자신 안으로 모셔오기\u003cbr\u003e\n\u003cbr\u003e\n시집에 실린 여러 작품에서 타자를 모시는 모습은 희미하게 존재한다. 시인 자신도 모르는 이 본능적 태도에 대한 예를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거기에는 일종의 ‘주저’가 있는데, 이 주저는 정직에서 나오고, 주저는 작고 낮은 목소리를 발한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한참을 돌아서 걷는 사이 \u003cbr\u003e\n스쳐가는 사내의 젖은 얼굴을 보았다 \u003cbr\u003e\n마른 나무처럼 흔들거리는 몸 \u003cbr\u003e\n트럭이 떠난 뒤에도 \u003cbr\u003e\n엔진 소리는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u003cbr\u003e\n_「엔진 소리」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이 시는 화자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목격한 어느 택배 노동자의 모습을 스케치한 작품인데,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하는 아이와 통화하는 내용을 옮긴 것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약간의 큰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데, 시에서 화자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아픈 것을 예민하게 붙잡아낸다. 하지만 감정을 과잉되게 얹지 않고 떠난 트럭이 남긴 “엔진 소리”만 모셔온다. “오래도록”이라는 한 단어에 그것이 응축되어 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힘없이 미끄러지고 주저앉은 길 \u003cbr\u003e\n손목의 가는 실금을 따라 \u003cbr\u003e\n분홍물이 들었네 \u003cbr\u003e\n예감은 낯설지도 않아서 붉은 꽃처럼 울었네 \u003cbr\u003e\n_「꽃 보러 갔다가」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이 시에서 화자는 단지 ‘꽃구경’을 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꽃”을 자신 안에 모셔온 경우이다. 그런데 타자를 모셔오는 것에는 “힘없이 미끄러지고 주저앉은” 일이 수반되기도 한다. 오로지 작고 낮은 목소리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 따라서는 고통을 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예감은 낯설지도 않”다고 말한다. 이는 “힘없이 미끄러지고 주저앉은” 일을 예감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타자를 모셔오는 일 자체에 어떤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에 조금 더 가깝다. 이 시의 마지막이 “붉은\/ 봄”인 것은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삶의 고통을 말할 때도 박영선 시인은 작고 낮게 말한다.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이 미덕도 시인 스스로  자기 삶에 정직하기에 가능한 경지다. \u003cbr\u003e\n발문을 쓴 황규관 시인이 시의 정직과 삶의 정직을 말한 것은 이런 작고 낮은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다들 목소리들이 커진 현대 세계에서 작고 낮은 목소리는 희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작고 낮은 목소리가 크고 높은 목소리보다 더 잘 들릴 때가 있다. 작고 낮은 목소리에는 청자의 귀를 여는 신비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영선 시인의 첫 시집 『분홍달이 떠오릅니다』는 그런 시들로 빼곡하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1377220860,"sku":"9788966551583","price":11.2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66551583.jpg?v=177634985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66551583","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