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78140201","title":"건방진 용서(국제PEN한국본부 창립70주년기념 산문선집 2)","description":"6월이 다 가기 전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의 행사 등으로 6월이면 현충원을 참배할 때가 많았거나 현충일 기념식에 경건한 마음으로 차분히 앉아 방송으로라도 머리를 숙여 호국영령들께 추모와 감사의 인사를 올리곤 해 왔다. 요즘에는 그것조차 잘 안되어 시간을 놓치고는 마음이 무겁고 미안했다. 이제 철이 들었는지 혼자서라도 참배 한번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서 조바심이 났다. 그분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인천상륙작전이 며칠만 늦어졌어도 우리 엄마와 나는 인민군에 의해 소개 당해 북녘땅 어딘가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아마 이미 죽었겠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6.25 당시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모골이 송연해진다.\u003cbr\u003e\n반동분자놈의 에미나이라며 길에서 친구들과 놀고 앉아 있는 9살짜리 계집애의 땋아 내린 머리 꼬랭이를 사정없이 잡아 흔들던 사내, 그 눈빛은 뱀 같았다. 하나님 앞에 가서 열 번을 책망 받는다 해도 그들을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용서 운운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다. 국군장병의 목숨값으로 지금의 내가 있는데 1년에 단 하루, 6월의 하루를 그분들께 참배하는 것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된 것이 70년 만이니 이제야 철이 좀 드는 모양이다.\u003cbr\u003e\n이른 아침 현충원은 고요했다. 충혼문을 들어서 현충탑 앞에 묵념을 올리고 무명용사비를 우러르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동안 여럿이 함께 왔을 때와 사뭇 다른 경건함에 머리 숙여 참배하며 미안하다는 사과와 감사하다는 고백을 소리 없이 바쳤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하나씩뿐인데 나라를 구하고자 그 귀한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림으로써 나라를 구하신 고귀한 피가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묘역을 돌며 머리만 조아릴 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령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 여기 없을 거라며 ‘서울에서 북으로 끌려갈 뻔한 9살 계집애, 당시 서울 거주’라고 방명록에 쓰는 일만이 감사의 표시였다.\u003cbr\u003e\n이승만 대통령 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1950년 6월 25일 서울 중구 저동2가 14번지의 우리 집에서 북괴군의 남침만을 알리며 국군장병은 귀대하라는 방송, 그리고 북이 38선을 넘어왔으나 잘 물리치고 있으니 서울 시민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아나운서의 반복적인 보도를 전해 들으며 아버지 무릎에 기대 있던 나는 서울 교동초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27일 밤 지하실에서 국민 여러분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있으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방송을 서울 경무대에서 하는 것으로 알고 정부의 발표를 철썩 같이 믿으며 잠이 들었다.\u003cbr\u003e\n이튿날 아침 눈을 떠보니 소련제 탱크가 서울 한복판에 버젓이 들어와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서울 시민은 독 안에 든 쥐가 되어 석 달의 생지옥을 겪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아버지같이 북괴의 손에 강제로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간 소위 납북인사가 10만을 넘어섰다. (하략)","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3131488508,"sku":"9788978140201","price":14.61,"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78140201.jpg?v=1776359710","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78140201","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