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79403497","title":"고대 동아시아 최대의 충돌, 고구려-수 전쟁(외대역사문화연구총서 17)(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고구려는 기원 전후한 시기 압록강 중상류유역에서 예맥족(濊貊族)에 의해 건국되었다.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국가적 성장을 이룩한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4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대외 확장을 추진하였는데, 5세기 대에 이르러서는 만주(滿洲) 중남부지역과 한반도 중북부지역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고 독자적인 천하관을 확립하며 중국대륙의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그리고 북방 유목세력인 유연(柔然)과 더불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였다. \u003cbr\u003e\n6세기 중반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는 급변하였다. 북중국에서는 534년에 북위(北魏)가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되었고, 550년에는 동위가 북제(北齊), 557년에는 서위가 북주(北周)로 교체되었다. 남중국에서는 557년에 양(梁)을 대신하여 진(陳)이 성립하였고 북아시아 초원에서는 552년에 유연이 멸망하고 돌궐(突厥)이 대두되었는데,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요서(遼西)에 거주하던 제종족이 제국(諸國) 사이에서 주목을 받았다. \u003cbr\u003e\n6세기 후반에 이르면 북주가 577년에 북제를 멸망시킴으로써 북중국을 통일하였지만 581년 양견(楊堅)이 북주정권을 탈취하면서 수(隋)를 건국하였다. 수는 589년에 진을 멸망시킴으로써 300여 년간 분열되었던 중국대륙을 통일하고 초강대국으로 변모하였는데, 동아시아에서 기존의 다원적인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 중심의 일원적인 국제 질서를 추구하였다. 이로써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고구려와 수의 충돌이 불가피하였는데, 결국 우호와 대립을 반복하던 관계 속에서 양국은 598년, 612년, 613년, 614년 등 모두 4차례에 걸쳐 전쟁을 벌였다.  \u003cbr\u003e\n고구려-수 전쟁은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되었던 동아시아의 최강국 간 충돌이었는데, 특히 612년 전쟁에서 수군이 동원하였다는 1,133,800명은 「수서(隋書)」의 찬자가 언급한 바 있듯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대병력이었다. 그리고 전쟁 당사국인 고구려와 수는 물론 주변 제세력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뒤흔들었던 사건이기도 하였다. \u003cbr\u003e\n기존 연구 동향을 살펴보면 크게 두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u003cbr\u003e\n첫 번째 유형은 당시 국제 정세와 연관시켜 전쟁의 원인, 영향, 전쟁 당사국 간의 관계 혹은 주변 세력들과의 관계 등을 다룬 연구이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는 전쟁의 원인이나 배경 그리고 양국의 관계뿐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국제 정세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두 번째 유형은 군사사적 관점에서 군단 편성, 무기체계, 방어체계, 전략 ㆍ 전술 등을 다룬 연구이다. 이러한 유형의 연구는 전쟁사 연구의 핵심 주제로서 고구려-수 전쟁의 전개 양상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u003cbr\u003e\n본서에서는 선행 연구 성과를 감안하면서 군사사적 관점에서 군대 편성, 무기 및 병종(兵種)체계, 진군 노선, 전략과 전술 등을 검토하여 전쟁의 구체적인 전개 양상을 최대한 규명해 봄으로써 고구려-수 전쟁을 새롭게 이해해 보고자 한다.\u003cbr\u003e\n먼저 「수서」 본기(本紀)나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한정된 자료에서 벗어나 기존 연구에서 간과하였던 문헌 자료를 최대한 집대성하여 종합적인 고찰을 시도해 보고자 하는데, 특히 인물 개개인의 행보가 담겨 있는 열전(列傳)이나 묘지명(墓誌銘)을 주목해보고자 한다.\u003cbr\u003e\n다음으로 고고 자료를 최대한 반영하여 문헌 자료를 보완하고자 한다. 본서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고고 자료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이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당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고구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귀중한 자료라고 볼 수 있는데, 고구려군의 모습이나 전투 상황이 담겨 있는 벽화는 당시 고구려군의 무기와 갑주(甲?), 병종 구성, 전투 수행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u003cbr\u003e\n고분벽화 이외에 고구려 유적에서 출토된 무기와 갑주 등도 주목해보고자 하는데, 특히 성곽에서 출토된 무기와 갑주는 성곽전을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고 볼 수 있다. 무기와 갑주는 전술하였듯이 전쟁 수행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전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유물이다. 고구려는 주변 세력과의 계속되는 충돌 속에서 군사조직 혹은 전투 양상의 변화에 맞추어 무기와 갑주를 개량함으로써 살상력과 전투력을 극대화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출토된 무기나 갑주의 분석을 통해 전쟁 당시 고구려군의 무기와 갑주의 특징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전투 양상에 따른 고구려군의 대응 방식을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u003cbr\u003e\n반면 수의 무기 및 갑주와 관련해서는 도용(陶俑)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수는 그 존속 기간이 매우 짧았기 때문에 무기나 갑주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무기나 갑주를 갖추고 있는 수대의 보 ㆍ 기병 도용에는 고구려-수 전쟁 당시 수군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u003cbr\u003e\n본서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u003cbr\u003e\n1부에서는 고구려와 수 양국의 4차례 전쟁의 시초로서 전체 전쟁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598년 고구려-수 전쟁에 대해 그 전반을 살펴보고자 한다. \u003cbr\u003e\n2부에서는 수양제(隋煬帝)가 고구려 원정을 결심하게 된 배경 그리고 원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군단 편성, 조직체계, 병종 구성 등 612년 고구려-수 전쟁 개전(開戰) 이전의 수군에 대한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u003cbr\u003e\n3부에서는 612년 고구려-수 전쟁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u003cbr\u003e\n4부에서는 수양제가 고구려 정벌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면서 일으킨 613년과 614년 고구려-수 전쟁에 보이는 수군의 군단 편성과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수군의 전략에 담겨져 있는 의미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고구려-수 전쟁이 마무리되어 가는 모습 그리고 종전 이후의 국제 정세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 \u003cbr\u003e\n본서는 군사사적 관점에서 고구려-수 전쟁의 전개 양상을 폭넓게 그리고 새롭게 이해하고, 고구려-수 전쟁의 역사적 의미를 새로이 규명하는 데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한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2881927420,"sku":"9788979403497","price":28.09,"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79403497.jpg?v=1776357805","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79403497","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