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80974245","title":"우리땅 독도를 지킨 안용복","description":"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되찾아온 안용복을 만나다\u003cbr\u003e\n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본에 분명히 밝히고\u003cbr\u003e\n\u003cbr\u003e\n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되찾아온 안용복\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안용복은 『성호사설』에 동래부 수군에 예속된 전함의 노꾼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왜관에 자주 드나들어 일본말을 익혔으며, 1693년(숙종 19년)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일본 어민이 침입하자 이를 막다가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다. 이때 에도의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았으나 귀국 도중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빼앗겼다. 같은 해 9월 대마도주는 예조에 서계를 보내 울릉도(일본명?다케시마 竹島)에서 조선 어민의 고기잡이를 금지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밝히고 외딴 섬에 왕래를 금지하는 공도정책(空島政策)에 일본도 협조할 것을 요청한 예조복서(禮曹覆書)를 보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1696년 안용복은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다시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일본명?마쓰시마 松島)까지 추격하여 영토 침입을 꾸짖었으며 스스로 울릉우산양도감세관(鬱陵于山兩島監稅官)이라 칭하고 백기도주로부터 영토 침입에 대한 사과를 받고 귀국했다. 귀국 후 사사로이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할 위험에 처했으나 영의정 남구만의 도움으로 귀양을 가는 데 그쳤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1697년 대마도주가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보냄으로써 조선과 일본 간의 울릉도를 둘러싼 분쟁은 일단락되었다. 유배 이후 완전히 잊힌 안용복을 되살려낸 이는 실학자들이었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안용복은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해 강적과 겨뤄 그들의 간사한 마음을 꺾고, 여러 대에 걸친 분쟁을 그치게 하였으니, 계급은 일개 초졸에 불과해도 행동한 것을 보면 진짜 영웅호걸답다”라고 평가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2814818556,"sku":"9788980974245","price":16.85,"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80974245.jpg?v=1776357502","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80974245","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