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84947573","title":"한국 중세불교와 역사교육(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한국 중세의 역사와 문화를 불교사 시각에서 정리하고, \u003cbr\u003e\n역사교육에서 불교사 역할을 강조한 책!\u003cbr\u003e\n이 책은 우리의 중세 역사와 문화를 불교사적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중세불교와 역사교육을 다룬 연구서이다. 40여 년간 한국 중세불교사와 역사교육에 헌신해 온 저자 황인규 동국대 명예교수의 학문적 내공이 담긴 역작이다. 책은 제1부 고려 불교와 역사교육 편은 제1장 고려시대 불교, 제2장 「중등국사」 고려 불교사 서술, 제2부 조선불교와 의승 편은 제3장 조선 불교와 탄압, 제4장 조선 불교 의승, 제3부 한국 전통사회와 한국사 교육으로 구성되었다.\u003cbr\u003e\n제1부 고려 불교와 역사교육 편에서는, 고려시대 불교는 한반도의 문화 사상을 주도하여 서역 및 중국의 승려에 의해 전해졌지만 선종의 수용은 우리 승려의 주체적인 태도로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고려시대 산문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 불교 사상 문화를 성립시켰다. 고려불교 가운데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한국불교사의 주류를 이루면서 불교계를 주도하였다. 선종 9산문 가운데 도의의 가지산문과 범일의 사굴산문이 고려중기까지 조계종을 주도하였다. 고려후기에는 지눌의 사굴산문계 수선사가 또 하나의 산문이 되어 불교를 주도하였다.\u003cbr\u003e\n승려 가운데 내원당 감주는 국사와 왕사 다음의 지위에 있으면서 왕실과 밀접한 종파의 고승이 선정되었다. 이들은 궁궐 비구니 도량인 정업원과 더불어 왕실 불교를 주관하고 주도하였다. 도선국사의 국가비보 사상은 고려말까지 준수되어 운용되는데, 그 연장선에서 외침을 막기 위하여 승려 혹은 수원승도가 대장경 조판 사업을 전개하고 참전하였다.\u003cbr\u003e\n고려불교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계와의 국제적 교류를 통해 발전을 꾀해 나갔다. 그러한 가운데 인도와 중국, 일본의 고승의 고려 참방은 고려불교, 나아가 고려문화 사상의 국제적 면모로 확대되었다.\u003cbr\u003e\n역사교육 쪽으로 「중등국사」 고려 불교사 서술 편에서는, 제2차 교육과정기의 검인정 「고등국사」 서술 내용을 다루었다. 이어 1973년 국정화를 단행한 이후 검인정 1종 교과서 체제로 변모하였다. 사실상 국정화로, 「고등국사」의 불교사 서술 내용이 대부분 같다. 5교 9산과 선교 양종 등 서술 내용이 개선되었지만 고려말 사원경제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유불교체가 당연한 듯 기술하였다.\u003cbr\u003e\n제7차부터 최근의 교육과정은 2009개정의 「중학국사」에서는 제7차 교육과정의 「국사」에서 불교사 서술은 정치사와 관련하여 서술되어 있다. 「역사」에서 불교사와 불교 문화로 독립 서술되었는데, 이는 해방 이후 「국사」교과서 간행이후 처음이다. 불교사와 개설사의 범주를 넘어 국가와 민족의 삶과 문화라는 시각에서 역사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u003cbr\u003e\n제2부 조선 불교와 의승 편에서는, 조선 건국후 성리학을 정착시키면서 종교 가운데 가장 유력했던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불교 의례를 중심으로 축소시켰으나 왕실의 능침 사찰과 유생들의 분암 등 불교문화는 지속되었음을 밝혔다. 왕사와 국사는 조선 건국 후 무학이 왕사로 책봉되고 천태종 공암 조구가 국사로 책봉되는 등 여전히 국가 불교의 정신적 수장이었지만 숭유억불시책의 강화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u003cbr\u003e\n조선후기에 억불책은 더욱 강화되어 불교 본산이었던 봉은사ㆍ봉선사와 도성내 비구니원 인수원과 자수원의 철훼 시도가 전개되었다. 이에 백곡 처능은 논리 정연한 최장문의 상소를 올려 불교 호법과 불교계 수호를 위해 적극 대응하였다. 더욱이 척불시책이 강화되자 환성 지안과 같은 고승들은 불교 호법과 불교계 수호를 위해 저항하다가 순교하였다.\u003cbr\u003e\n한편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 일본의 조선불교 침탈은 불교계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에 전국에서 의승들이 봉기하여 유격전 등을 감행하였는데 처음으로 봉기한 승려는 기허 영규이다. 영규는 금산전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격전을 펼치다가 장렬히 순교하였다. 당시 문인 성해응이 남긴 기문에 의하면 이때 수많은 의승들이 전사했지만 밝혀진 의승은 겨우 20여 명뿐이다. 더욱이 충청도 의승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선후기 문집인 「검간집」과 「가휴집」 등에 의하면 속리산 법주사 의승 초언 등 충청도 의승의 참전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u003cbr\u003e\n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정부는 산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한양도성의 수비를 강화하고자 남한산성의 축성론이 제기되었다. 불교계는 의승군을 징발하여 남한산성을 쌓았으며 12개의 승영사찰을 운영하였다. 숙종대인 1711년 북한산성 축성 때는 화엄사 고승 계파 성능이 8도 도총섭으로 산성내 중흥사와 11사 2암을 운영하면서 축성을 지휘하였다. 이들 남ㆍ북한산성의 승영사찰들은 조선후기 270년간 존치되면서 국가 수호와 불교 수호 역할을 하였다.\u003cbr\u003e\n고려시대까지 한국사회는 불교의 연기론적인 세계관이 크게 작용하였으며 대체로 불교가 우리 고유의 문화를 포용하였다. 우리는 ‘한 맺힌’ 삶이 아니라 열정적이고 개방적이며 역동적으로 살아왔으며, ‘나’와 ‘우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정신도 함께 해왔다. 이런 면에서 현재의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역사학과 미래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여야 한다. 저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역량과 기존의 지식기반인 핵심주제도 함께 역사교육의 대주제로 삼아야 함을 주장한다.\u003cbr\u003e\n우리 역사는 불교를 통해 국가와 사회 및 문화의 공동체를 아우르는 정신을 함양하였다. 모든 인간과 그 위에 펼쳐진 세상의 생물과 무생물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은 불교에서 연원하는 국가의 건국 이념이자 교육 이념이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 문화는 불교를 중심으로 도교적 심성과 유교적 문화뿐만 아니라 이슬람ㆍ인도ㆍ서역 등의 문화 요소가 종합된 것이다. 한국 중세불교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앞으로 역사교육에서 불교사를 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을 통해 현재 불교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성을 가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2875865340,"sku":"9788984947573","price":44.9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84947573.jpg?v=1776357783","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84947573","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