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84947726","title":"조선 초기 절의파 두문동 72현 연구(민족문화 학술총서 51)(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역사의 이면에 존재했던 고려말ㆍ조선초 두문동 72현을 비로소 역사의 표면으로 드러내다!\u003cbr\u003e\n역성혁명과 대의명분\u003cbr\u003e\n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왕조 교체가 아니라 시대적 사회 변혁이다. \u003cbr\u003e\n고려 후기 성리학의 수용은 사회 변혁의 사상적 이념이 되었으며, 이는 불교 중심 사회에서 유교(성리학)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가져왔다. 현 학계의 통설에서는 사회 변혁의 주체는 성리학을 수용한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로서, 역성혁명을 통하여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는 것이다.\u003cbr\u003e\n유교(성리학)의 근본이념인 대의명분을 지켜야 할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이 스스로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어긋난 역성혁명을 도모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역성혁명을 도모한 것은 아니듯, 역성혁명을 반대하고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켰던 사대부들이자 성리학자들도 존재하였으니, 이들이 바로 두문동 72현이다.\u003cbr\u003e\n저자 김보정 박사는 그간 현재의 통념으로 바라본 두문동 72현을 조선 후기 성리학자의 잣대로 새롭게 규명하였다. 역사의 이면에 존재했던 두문동 72현을 비로소 역사의 표면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학술적 의미가 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두문동 72현의 자료와 존재\u003cbr\u003e\n조선 초기부터 절의를 지킨 충신에 대한 지속적이며 간헐적인 예우와 추숭이 조선 후기 영조 27년(1751) 두문동 72인의 충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면서 역사상으로 드러났다.\u003cbr\u003e\n두문동 72현은 누구인가? 그 구체적 인물상은 「두문동칠십이현록」과 「고려두문문동칠십이인」의 두 종류에 나타나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 자료라는 점에서 존재 여부의 신빙성을 두고 가타부타하지만, 이는 조선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받은 예우와 추숭의 결과로써 남겨진 자료이다.\u003cbr\u003e\n저자는 이들을 고서족보(古書族譜)를 통하여 일일이 대조 분석한 결과, 당대 실존한 인물이었음을 밝혔다. 두 종류의 자료가 존재하는 것은 고려 말 역성혁명을 반대한 사대부들 가운데 대표적인 두 세력으로서 정몽주당과 우현보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u003cbr\u003e\n그러므로 조선 후기 당쟁의 가운데 남인과 노론의 입장에서 바라본 두문동 72현에 대한 견해도 달랐다. 남인들은 『기우집』 의 「두문동칠십이현록」에서 정몽주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하였고, 노론들은 우현보를 대표적 인물로 선정한 「고려두문동칠십이인」의 출처인 『화해사전』을 서술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두문동 72현의 사상 계승과 의미\u003cbr\u003e\n두문동 72현이란 용어는 '두문동'이 갖는 정치 사건과 '72현'이 의미하는 유학 사상(성리학)이 함께 함축되어 있다. 이들은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올바르게 지키며 개국공신에 맞선 사상적 정치세력이었다. 정치적으로 두문동 72현은 고려 말 이색, 우현보, 정몽주 등이 중심이 되어 역성혁명을 전후하여 개국공신에 대립하는 정치세력으로서, 태조대 정치 탄압과 불합리한 정치 처우에도 불구하고 태종대 정치세력 내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그 자손들이 대간 세력으로 성장하여 정치입지를 굳힌다. 이를 이어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은 세종대 집현전학사뿐만 아니라, 재상의 반열에까지 오르는 등 조선의 정치세력을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전기 정치세력의 흐름은 고려 말 절의파－두문동 72현－세종대 집현전학사－사육신－성종대 사림파 등으로 맥락을 잡을 수 있다.\u003cbr\u003e\n또한 사상적으로 '72현'이 의미하는 것은 유학사상(성리학)의 도통(道統)이다. 조선의 국시(國是)는 성리학이다. 역성혁명을 반대한 근본이념은 바로 성리학의 대의명분에 있다. 두문동 72현은 단순히 충신이 아니라 성리학을 수용하고 이해하였으며, 이를 현실에서 행동으로 실천한 성리학자들이다. 이 책에서는 두문동 72현 가운데 대표적 인물로서 정몽주, 원천석, 길재, 이행 등과 그들의 사상을 계승한 하연, 박서생, 강석덕 그리고 사육신 박팽년 등 모두 8인의 사상을 살펴보았다. 대의명분을 따라 절의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사상은 세종대 집현전 학사를 거쳐서 사육신으로까지 계승되면서 조선 초기 사상의 흐름을 주도하였다.\u003cbr\u003e\n조선 초기 사상과 문화가 가장 꽃피웠던 시기를 이끌었던 세력은 두문동 72현의 자손들이었다. 이는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에서 사회 변혁을 이끈 진정한 주체는 역성혁명을 성공한 개국공신이 아니라 역성혁명을 반대한 두문동 72현이었음을 의미한다.\u003cbr\u003e\n대의명분에 어긋난 행동은 시대와 사상을 불문하고 오늘날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u003cbr\u003e\n두문동 72현의 진정한 화두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사고의 전환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brand":"Bookstore 12","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1336165753084,"sku":"9788984947726","price":44.9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84947726.jpg?v=1789637330","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84947726","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