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88997533664","title":"고구려(중국 사서로 보는)","description":"고구려 역사를 새롭게 조망한다!\u003cbr\u003e\n우리나라는 한사군 설치 이후에 중국 문물의 영향을 받아 문명화가 진행되었고, 신라, 고구려, 백제 순으로 고대국가가 건국되었다는 게 강단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 문명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을지언정 모든 정치 문화 제도가 중국 문명과 전혀 다르고, 남송시대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보다 무려 1,000년 이상 앞선 독자적인 천문도를 가진 천자국이었다.(〈천상열차분야지도〉)\u003cbr\u003e\n\u003cbr\u003e\n고구려는 기원전 217년 건국되었다!\u003cbr\u003e\n①『삼국사기』는 사론(史論)에서 진(秦, BC 221년 건국) 한(漢, BC 206년 건국) 시대부터 고구려가 존재했었으며, ②『책부원귀』는 한(漢) 건국 초 고구려 추모왕(鄒牟王)이 죽었다고 하고, ③당(唐)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의 말처럼, 당나라는 고구려 역사가 900년이라고 널리 알고 있었다.(④『삼국지』 및 『후한서』에도 확인됨) 그러므로 고구려 건국은 BC 232년에서 BC 107년 사이로 추정되며, 추모왕의 즉위 간지가 갑신년이므로 BC 217년(885년)이 가장 유력하다.\u003cbr\u003e\n\u003cbr\u003e\n고구려는 최소 5대왕이 누락되었다!\u003cbr\u003e\n광개토대왕 비문을 보면, 『삼국사기』와 달리 광개토대왕을 12세손이 아닌 17세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왕 계보를 가장 앞서 기록한 『위서』(魏書)에도 주몽(朱蒙), 여달(閭達), 여율(閭栗), 막래로(莫來) 4대가 이어진다는 기록에서 확인되고 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고구려 핵심 강역인 요동(遼東)\u003cbr\u003e\n요동(遼東)과 낙랑(樂浪)은 본래 고조선 강역으로 우리 고대사의 중심 지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역사에서도 핵심 강역이었다. 그 이유는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왕검성(王儉城) 및 고구려 평양성(平壤城)이 모두 (현 중국 하북성) 요동과 낙랑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u003cbr\u003e\n위만조선 멸망 이후 고구려는 한나라에 빼앗긴 요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남방 농경 세력의 대표 주자인 한족(漢族)뿐만 아니라 북방 유목 세력의 대표 주자인 선비족과 수없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 마침내 고구려가 요동을 점령한 이후 요동은 고구려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쓰였다.","brand":"Bookstore 12","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0716238381308,"sku":"9788997533664","price":24.72,"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88997533664.jpg?v=178514478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88997533664","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