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56121459","title":"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description":"과거사 진상 규명으로 읽는\u003cbr\u003e\n\u003cbr\u003e\n전쟁과 분단의 그늘, 국가폭력\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은폐?왜곡된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밝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경찰, “쌀을 달라”는 시위대에 발포\u003cbr\u003e\n\u003cbr\u003e\n1946년 10월 1일 오전 10시 30분경, 대구부청 앞에서 여성과 어린이 중심의 시민 1,000여 명이 시위를 벌였다. “배고파 못 살겠다, 쌀을 달라!” 성난 군중을 해산하려고 경관 1명이 공포탄을 세 발 발사했다. 군중은 더욱 분노하여 그 경관을 구타하고 도청 광장으로 이동하여 계속 시위를 벌였다. 대구공회당과 대구역 광장 일대에서는 파업 노동자와 100여 명의 무장경찰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친일 인사가 대부분이어서 시민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던 경찰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발포했다. 노동자 1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1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틀 뒤 숨졌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이후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경찰서가 점령되자 장갑차를 앞세운 미군이 시내에 진입하고, 농민까지 가세하여 도 전역으로 항쟁이 확산되었다. 대구 10월 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쌓였던 친일 경찰을 향한 분노가 미군정의 과도한 식량 공출정책에 따른 식량난과 겹쳐져 폭발한 항쟁은 경북 22개 군으로 확산되었다가 10월 6일경 대부분 진압되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상황이 일단락된 후 사건 관련자뿐 아니라 사건과 무관한 민간인 상당수가 재판 없이 불법적으로 학살되었다. 특히 경찰은 자신들이 항쟁의 피해자라는 생각에 주민들에게 사적으로 보복하기도 했다. 1948년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도 상당수 민간인이 항쟁 관련자라는 이유로 학살되었다. 피해자 유족들은 경찰서에 남은 신상정보로 인해 연좌제 피해를 입기도 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6875494652,"sku":"9791156121459","price":22.47,"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56121459.jpg?v=1776380798","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56121459","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