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56224501","title":"계백장군 삼영과 최후 결전지","description":"황산전투사(黃山戰鬪史)와 그 유적은 국내외학자와 연구기관에 의해 1세기 동안(1913~2019) 연구되어온 백제사의 중요 역사임에도 무정립, 무관심, 무대책의 역사로 방치되고 있다. 그 원인은 기존학설이 정립되지 않은 데에 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저자는 황산전투 현장중심으로 기존학설을 검증하면서 결국 「계백장군 최후결전지의 고찰」(논문1)과 이를 보완하는 「탄현과 개태사협곡 포진무산 소고」(논문2)를 탈고하였다. 그 내용은 신라의 50.000 대군이 진군한\u003cbr\u003e\n\u003cbr\u003e\n1. 탄현(炭峴) \u003cbr\u003e\n\u003cbr\u003e\n2. 황산으로 진군한 진격로\u003cbr\u003e\n\u003cbr\u003e\n3. 계백삼영을 향하여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진군한 삼도(三道)\u003cbr\u003e\n\u003cbr\u003e\n4. 험준한 지형에 먼저 포진하고 신라군을 기다린 삼영(三營)\u003cbr\u003e\n\u003cbr\u003e\n5. 기존학설이 황산 벌판에서 전투하였다고 본 오류에 대하여 검증하면서 \u003cbr\u003e\n\u003cbr\u003e\n계백 삼영[천왕산성(청동리산성), 북산성(황산성), 산직리산성] 전투설을 비정하였으며  \u003cbr\u003e\n\u003cbr\u003e\n6. 문헌과 기존학설의 검증, 현장 지형지세와 관창 우물터, 지명유래 등 현장실사에 근거하여 계백의 지휘영(中營)으로 비정되는 천왕산성 매봉토성 아래 산소골 일대에서 모든 상황에 부합되는 계백장군과 신라군의 최후결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백제의 패망은 김유신에 의해 회유된 백제 좌평임자와 충상, 상영 등의 반역에 의하여 의자왕을 기망하여 무력화시킨 결과이며 이들이 나당(羅唐)의 침공에 대비하여 고구려, 왜(倭)와의 연합 교섭을 차단 공작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았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탄현의 포진무산(布陣霧散)은 이들의 공작의 결과이며 계백과 함께 황산전투에 출전한 좌평 충상, 상영 등의 반대로 계백은 황산벌 제1의 요새지(要塞地)인 개태사협곡(開泰寺峽谷)에 포진하지 못하였고 백제 5.000 군사를 계백 삼영에 분산 배치토록 함으로써 전투력을 감소시켰다. 저자는 개태사협곡이 황산벌의 탄현이었다고 주장한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7318190332,"sku":"9791156224501","price":22.47,"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56224501.jpg?v=1776382818","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56224501","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