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57074051","title":"군대 해산과 한국주차군의 독립운동 탄압(한반도주둔일본군 사료총서 2)","description":"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의병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1년간의 \u003cbr\u003e\n\u003cbr\u003e\n일본군 전투보고서 「전투상보」를 번역, 수록하다\u003cbr\u003e\n근대 격변기 열강의 각축 사이에서 한국의 자주적 변혁은 제약되었고, 국권은 강탈되었다. 근대 한국의 국권상실 과정은 감성적 민족주의 차원을 넘어 냉철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실증적 고찰이 이뤄져야 한다. 약육강식이 엄존하던 격변기의 현실과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성찰하는 것은 침핍(侵逼)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자, 동북아 평화를 위한 역사 정립의 길이기 때문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그중에서도 운요호사건 이래 한국강점의 선봉에 섰던 일본군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공사관수비대에서 시작해 한국주차대·한국주차군·조선주차군·조선군·제17방면군 등으로 변모한 일본군은 의병탄압 및 독립운동 억압에 앞장섰으며, 강점 이후에는 식민지 민중의 삶을 통제하고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주역이었다. 나아가 간도침략,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시기에는 일본의 대륙침략의 선봉에서 활동한 주체였다. 요컨대 일제의 한국강점과 식민지배, 대륙침략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주둔 일본군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이렇듯 〈한반도주둔일본군 사료총서〉는 군사지배에 기반을 둔 일본제국주의의 전면(全面)을 드러내기 위해 일본군의 역할과 실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책은 그 두번째 권으로, 수록된 사료는 일본군의 전투보고서 「전투상보(戰?詳報)」이다. 이 책에서 번역하여 소개하는 『각지의 전투상보(各地ニ於ケル戰?祥報)』(이하 「전투상보」)는 1907년 8월 제1호를 시작으로 1908년 7월 제25호까지 순차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들 사료는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 자료인 ‘육군성(陸軍省) 대일기(大日記)’ 중 『밀대일기(密大日記)』와 『조선사건(朝鮮事件)』 자료 안에 포함되어 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전투상보」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의병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1년간이다. 「전투상보」 작성이 시작된 1907년 8월은 헤이그특사를 파견했다는 빌미로 광무 황제가 강제 퇴위를 당하고 이어 정미조약으로 인해 통감부가 내정간섭권을 대폭 강화하던 시기였다. 한편,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하자 이에 항거하려는 군인들이 의병진에 가세하면서 대일항전이 확대되는 시기였다. 해산 군인의 항전은 서울의 시위대로부터 시작되어 원주·강화·홍주·진주 진위대로 확대되었고, 이들은 각기 의병에 가담하여 전력을 강화시켰다. 「전투상보」는 후기의병전쟁이 고조되던 시기부터 소위 ‘남한대토벌’이 진행되는 사이에 일본군과 의병 간의 전투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7069284604,"sku":"9791157074051","price":29.21,"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57074051.jpg?v=177638168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57074051","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