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57945139","title":"신식 비문척독(동양고전신역 8)","description":"전통시대와 개화기, 한자문화의 가교 조남희\u003cbr\u003e\n척재?齋 조남희趙男熙(?~?)의 생몰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26년 3월 1일 경성京城 소재 동양서원東洋書院에서 발행했던 《신식비문척독》에 ‘보성고등보통학교원교유普成高等普通學校元敎諭’라고 소개한 것으로 보아 당시 보성고등학교 교사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는 1925년 8월, 교직을 그만두고 진명여학교 민대호閔大鎬와 함께 경영에 어려움을 겪던 동양서원을 인수받아 공동으로 경영하면서, 《신식비문척독》을 비롯한 《신식부인치가법新式婦人治家法》, 고소설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산양대전山陽大戰》 등을 출간하였다. 동양서원은 ‘동양서원소설구락부東洋書院小說俱樂部’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소설전집을 출판한 지명도 있는 출판사였다. 조남희는 월간 종합지 《개벽》 제48호〈경성京城의 인물백태人物百態〉에도 소개될 만큼 매우 왕성하게 활동했던 지식인으로 추정된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새중 소통의 시대적 변화를 주도  \u003cbr\u003e\n《신식 비문척독》이 발간된 1920년 당시 민가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된 방각본坊刻本을 비롯한 구활자본, 신활자본, 금속활자본 등 다양한 서식집이 발간되어 근대적 유통망 속에서 배급되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근대적 지식을 전달하는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신식비문척독》과 같은 서식집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집중적으로 발간되는데, 그중 가장 큰 요인은 관官에서 보급하는 서적의 양이 민간의 충족에 따라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렇게 출간된 서간문 자료집은 구한말부터 식민지 시대에 걸쳐 약 200여 종 가까이 발행될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기저에는 신분의 대변화를 이끈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있었다. 이때를 거치면서 신분 질서는 정립되어 갔지만, 상하·존비에 따라 달리 사용하는 서간문의 독특한 표현법은 여전히 존재하였고, 상류층의 글쓰기를 흉내냄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겉으로나마 돋보이려던 중하류층의 욕구도 한 몫을 차지하였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1920년대 서간문의 글쓰기를 망라하다\u003cbr\u003e\n본서는 편지를 주고받는 수신인과 발신인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상황을 망라하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과 받은 사람의 관계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되는 투식구套式句를 갈무리하였다. \u003cbr\u003e\n본서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었던 서간문 서식집과 다르게, 두주頭註에서 서간문에만 주로 쓰이는 독특한 용어들을 정리하고 있다. 예컨대, 기존 번역에서 보통 ‘구구하다’, ‘구구한 사람’ 등으로 해석하던 ‘구구區區’를 ‘간절한 모양이다〔懇切之貌〕’라고 명확히 주석을 달았다. 다른 책에서 정확히 의미를 제시하지 못하였던 ‘취백就白’이란 ‘다른 말은 각설하고 관계된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除却他說 惟就所關事而言也〕’라는 뜻임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죄송하다’는 뜻으로 쓰는 ‘주신主臣’, ‘알다’는 뜻으로 쓰이는 ‘圖’ 등의 의미를 제시함으로써 서간문을 연구하는 연구자뿐 아니라 서간문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87305083132,"sku":"9791157945139","price":28.09,"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57945139.jpg?v=1776382762","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57945139","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