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69095839","title":"자유의 역설","description":"인류학과 역사학, 문학, 성서에서 길어올린 사회학 연구\u003cbr\u003e\n올랜도 패터슨은 막스 베버 이후 사회학 분야에서 마지막 거장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쓴 『자유의 역설』은 지적 역사 서술의 틀을 넘어 유럽 스스로 어떻게 '자유'의 개념을 탄생시켰는가를 치밀한 질문과 논증으로 펼친다. 그리스 비극은 그의 글에서 새롭게 발굴되고, 바울의 서신은 가장 힘 있는 사회학 텍스트가 되며, 인류학 연구들은 경험의 자료로서 제 몫을 다한다. \u003cbr\u003e\n'자유'에 관해 가장 중요한 학자와 사상가들의 논의가 이 책에서 대거 검토되는데, 이를 확장하거나 비판하는 가운데 저자가 구축하는 '자유의 역설'에는 그의 모국 자메이카의 노예 사회가 어른거리고 있기도 하다. \u003cbr\u003e\n1983년에 착수해 1990년까지 8년간 쓴 이 책은 수많은 층위의 담론을 담고 있지만,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자유 개념의 창안자가 아니라 고대 노예들에게서 자유가 생겨났다는 주장은 학계의 논의를 뒤흔들 만큼 파격적이다. 자유는 노예제의 일상적인 광경에 대한 '부정(투쟁)' 속에서 생겨났다.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였던 노예들은 그리스 비극과 이후 기독교의 구속(구원) 개념 속에서 해답을 찾으며 지적 긴장을 만들어냈다. \u003cbr\u003e\n이 책은 고전 그리스에서 로마의 스토아학파, 그리고 초기 기독교의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을 통해 '자유'가 어떻게 체계적인 발전을 이루는가를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중세는 자유의 암흑기가 아니었고, 오히려 자유의 화음이 널리 울려 퍼진 시기다. \u003cbr\u003e\n이 책의 가장 차별화되고 고유한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자유의 감수성이 특히 '여성적인' 과정임을 밝혔다. 이는 노예의 대다수가 여성인 데서 생겨난 역설로 그들이 해방을 가장 강렬하게 원했다. 여성들은 자기 자신 및 '중요한 타인'에게 진실되기를 바랐고, 이로써 개인적 자유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둘째, 이것은 저자가 최초로 시도한 바로, 고대 그리스 이전의 선진 문명들에서 자유가 중심 가치로 부상하지 못한 이유를 해명하고자 비그리스권 사회의 노예제 경험들을 검토한다. 거기서 우리는 자유를 꽃피우는 데 실패한 비그리스 세계들을 목격하게 된다. 이 책은 \"접근 방식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앞으로 \"사회학 연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심오하고 권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u003cbr\u003e\n역사사회학자인 저자는 사회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자유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구체적인 역사 맥락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 역시 영국의 식민지이자 가장 잔혹한 노예제를 가졌던 자메이카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싹텄다고 할 수 있다. \u003cbr\u003e\n자유가 어떻게 창안됐고 지고한 가치로 부상했는지를 해명하려는 중요한 시도가 그간 몇 차례 있었지만,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해명되지 않았다. 왜 유독 서구에서만 자유가 창발했고, 서구 문명의 핵심 위상으로 유지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연구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자유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특성은 바로 연속성\"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이 목표로 삼는 것 하나는 자유에 대한 현대적 개념이나 강렬한 몰두가 고대 세계에 이미 확립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 없이 연속된 패턴으로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전근대적 자유를 무시한 채 자유의 본질과 역사를 이해하려 한다면, 그건 예수나 바울을 모른 채 기독교를 이해하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시도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플라톤에서 예수와 바울까지 \u003cbr\u003e\n자유의 삼화음과 불협화음의 역사사회학적 탐색 \u003cbr\u003e\n\u003cbr\u003e\n\"자유는 노예와 비노예 모두에게 지독히 비인간적인 조건이었던 상황을 부정하고자 하는 노예의 절박한 갈망 속에서 사회적 가치로서 그 여정을 시작했다.\" 저자의 기본 논지를 담고 있는 이 문장은 그동안 자유의 기원이 된 노예제의 장기적 중요성이 과소평가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는 결코 원초적이고 노예적인 근원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다. \u003cbr\u003e\n따라서 자유는 서구 문화의 가장 중요한 공헌일 텐데, 즉 자유를 위해 비옥한 토양을 마련한 곳은 오직 그리스뿐이었다. 반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동양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자유보다 명예, 영광, 권력 추구와 같은 가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했다. 따라서 저자는 왜 어떤 문화는 자유를 중시한 반면, 다른 문화들은 그렇지 않았는지를 설명하려 시도한다. \u003cbr\u003e\n그는 이 책에서 자유의 '삼화음'을 주창한다. 자유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며, 세 가지 음으로 이루어진 화음이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나타난 자유는 수 세기에 걸쳐 이 음들 중 특별히 어떤 한 음이 소리를 높이도록 했고, 이렇게 다른 두 음을 누르고 하나가 솟아오르면 긴장이 생기곤 했다. 삼화음의 첫 번째는 '개인적 자유'다. 영미권의 정치 전통과 가장 명확하게 연결된 개념이며, 말하자면 국가의 강압으로부터의 자유다. 두 번째는 '시민적' 자유로, 이는 \"성인 구성원이 공동체의 생활과 통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주권적' 자유로, 타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이다. 사실상 노예 소유주들의 권리를 반영한 것으로, 이 철학은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대응하면서 확장됐고 문화적 제국주의와 그리스인의 우월성을 은근히 드러내기도 한다. \u003cbr\u003e\n고대 아테네 거주자들은 자유의 삼화음을 모두 찬미했지만, 각 집단이 음에 부여한 위계는 저마다 달랐다. 시민이나 노동자 계층 남성들은 무엇보다 시민적 자유를 가장 소중히 여겼던 반면, 귀족 엘리트들은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주권적 자유를 중시했다. 반면 해방민과 거류외국인들이 핵심으로 꼽은 음은 개인적 자유였다. 그리고 가장 주목해야 할 아테네 여성들은 개인적 자유를 정교하게 다듬고 격상시킨 주역으로 활약한다. \u003cbr\u003e\n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 '왜 우리는 자유를 그토록 중요히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깊이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본능이라 여겨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유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비서구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점을 곧바로 알 수 있다.\u003cbr\u003e\n이 책은 로마 시대, 초기 기독교 시대, 중세 유럽을 거쳐 자유의 삼화음을 추적해나간다. 대부분의 사람은 로마가 어느 정도까지 노예가 지배적이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언제나 제국의 위대함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영광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 대다수의 로마인은 노예, 전前 노예 혹은 노예의 후손이었다. 도시의 사업들은 바로 이들이 운영했고, 해방 노예들은 로마 사회에서 백인대장 계급을 장악했으며, 제국의 관료 조직도 그들에 의해 운영됐다. 저자는 이 로마 사회에서 바로 기독교가 기원했는데, 초기 기독교인 중 정말 중요한 사람들은 해방 노예였고, 이들이 자유라는 이상을 그토록 소중히 여겼다고 말한다. 이 책이 고대 그리스를 지나 바울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u003cbr\u003e\n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 이 종교는 노예제와 자유의 경험을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이상, 즉 영적 자유를 표현하는 은유로 활용했다. 그들이 사용한 '구속redemption'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누군가를 노예 상태에서 사서 해방시키는 것을 뜻한다. '자유로워지다'라는 사상을 핵심 신조로 삼은 기독교는 이로써 유일하게 위대한 종교가 되었다(이는 스토아주의나 영지주의,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독교의 창시자는 바울과 로마 교회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u003cbr\u003e\n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획기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바울과 초기 교회의 사상이 영적 해방으로 옮겨가면서 '노예에서 자유로'라는 은유를 강력하게 활용한 것을 이 연구는 포착했다. 즉 「갈라디아서」는 개인의 영적 자유를, 「로마서」는 신께 굴복함으로써만 얻게 되는 궁극적인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는 인식을 얻었다. 유럽은 곧 기독교 세계가 되었고, 기독교 세계는 오직 하나의 목표, 즉 구속과 자유에 끊임없이 집중했다. \u003cbr\u003e\n저자는 기존의 근대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학자들과 달리 중세 문명에 이미 자유의 정신문화가 울려 퍼져 있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중세 말에 텍스트는 거의 완전히 편집되었고, 근대 역사는 여기에 긴 주석을 단 것일 뿐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패터슨의 논지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양가감정이다. 모든 선한 것은 선한 것으로만 오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의 것과 함께 온다. 즉 우리가 목숨 걸고 지키려는 선善 속에는 종종 우리가 가장 혐오하는 악惡도 내재되어 있다. 자유는 서구 문명의 천재성과 모든 위대함의 씨앗이지만, 동시에 탐욕과 소외, 사회적 불의의 근원이기도 하다. 선과 악은 상호 의존적이며, 그것이 바로 삶이고 역사다.\u003cbr\u003e\n저자는 전작 『노예제와 사회적 죽음』을 쓰면서 노예제의 역사를 쓰는 것이 곧 자유의 역사를 쓰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8년에 걸친 연구 끝에 『자유의 역설』을 내놓았다. 학계는 이 책이 \"사회과학과 역사의 경계를 허문 거대한 지적 성취\"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99퍼센트의 사회과학자가 좁은 주제에 매몰될 때, 올랜도 패터슨은 베버처럼 여러 세기와 여러 대륙을 넘나들며 거대 담론을 펼쳐 '르네상스적 학문'의 모범을 보였다는 것이다.","brand":"Bookstore 12","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50924037865724,"sku":"9791169095839","price":55.06,"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69095839.jpg?v=178600891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69095839","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