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75010628","title":"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걷는사람 시인선 153)","description":"걷는사람 시인선 153\u003cbr\u003e\n정익진 시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출간\u003cbr\u003e\n\u003cbr\u003e\n\"우연과 우연의 만남 속에서\u003cbr\u003e\n우리는 우연히 빛날 뿐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밀려난 육체의 움직임으로\u003cbr\u003e\n삶의 숭고함을 다시 쓰기\u003cbr\u003e\n정익진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이 걷는사람 시인선 153번으로 출간되었다. 1997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구멍의 크기』 『윗몸일으키기』 『낙타 코끼리 얼룩말』 『스캣』 등 개성 뚜렷한 시집들을 펴내 온 시인은 이번 신작에서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간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소외되고 밀려난 몸들의 숨 가쁜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몸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리듬을 획득해 가는지를 끝까지 따라간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의 1부와 2부는 도심 일상의 안락함 이면에 도사린 균열과 노동의 가혹한 풍경을 비춘다. 아파트 외벽 공사 중 추락한 인부의 비극을 다룬 「03동 주민 회보」에서 시인은 \"우리는 균열을 보지 못했다\"라는 서늘한 한 줄로 타인의 고통을 방치해 온 우리의 무감각을 일깨운다. 시인은 존재의 근거를 관념이 아닌 외부의 압박에 맞서는 육체의 움직임에서 찾는다. 표제작 「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은 감정 노동의 링 위에 선 간호사들을 파수꾼에 빗대며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육체적 고통을 시의 중심으로 불러낸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헤드기어를 쓴다.\u003cbr\u003e\n마우스피스를 문다.\u003cbr\u003e\n거친 언변이 튀어 나가지 않게.\u003cbr\u003e\n표정이 무너지지 않게.\u003cbr\u003e\n\u003cbr\u003e\n(중략)\u003cbr\u003e\n\u003cbr\u003e\n형광등이 깨진 탕비실, 유리 조각 위에 서서\u003cbr\u003e\n문을 닫고 비로소 흐느낀다.\u003cbr\u003e\n규칙적으로 흐느낄 시간이 필요했다.\u003cbr\u003e\n-「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시집의 중후반부에서는 20세기 모더니즘 예술의 문법을 시적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며 사유의 영토를 넓힌다. 피카소, 폴록, 칸딘스키 같은 거장들의 이름을 경유해 \"난 따라만 하지 설명하지 않아\"(「파블로 따따라하기」)라고 선언하는 화자는 해석 과잉의 시대를 거부하고 예술 본연의 형태를 되찾으려 한다. 염선옥 문학평론가는 정익진의 시 세계를 타인의 삶과 고통을 온전히 대변하거나 재현할 수 없다는 도덕적 자각 위에서 피어나는 윤리적 세계로 읽는다. 자본의 언어가 지배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시인이 포착한 쫓기는 몸들의 서사는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고유한 안무를 획득하며 삶의 숭고한 리듬을 빚어 낸다. 시집의 결말부에 이르러 시인은 \"우리도 산책자가 되어\/바람도, 구름도 참 좋은 이 길을 걸어요\"(「키세스, 키세스」)라는 말을 건네며, 저마다의 이유로 고립된 사람들을 타자와의 연대가 기다리는 지평선 너머로 이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작품 속으로\u003cbr\u003e\n\u003cbr\u003e\n헤드기어를 쓴다.\u003cbr\u003e\n마우스피스를 문다.\u003cbr\u003e\n거친 언변이 튀어 나가지 않게.\u003cbr\u003e\n표정이 무너지지 않게.\u003cbr\u003e\n\u003cbr\u003e\n환자의 볼이 쏙 들어가 절망이 고이면\u003cbr\u003e\n난해한 경로를 뒤져서라도 특효약을 구해 오고\u003cbr\u003e\n면식도 없는 신에게 다급히 전령을 띄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중략)\u003cbr\u003e\n\u003cbr\u003e\n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비로소 가드를 내린다.\u003cbr\u003e\n헤드기어를 벗고 마우스피스도 뺀다.\u003cbr\u003e\n화장을 고친다.\u003cbr\u003e\n형광등이 깨진 탕비실, 유리 조각 위에 서서\u003cbr\u003e\n문을 닫고 비로소 흐느낀다.\u003cbr\u003e\n규칙적으로 흐느낄 시간이 필요했다.\u003cbr\u003e\n-「헤드기어를 쓴 간호사들」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1학년, 나는 활자가 싫었다. 목덜미에 '성공'이라는 글자가 찍힌 채로 피를 빨리며 살았다. 그때부터 나는 폐기된 것들을 그렸다. 으깨어진 양배추, 파도에 구르는 공룡알의 잔해. 사람을 그리지 못했다. 구름을 보며 친구들의 태아를 떠올렸다. 내가 그린 사람은 늘 괴물에 가까웠고, 누구를 닮아 불쾌했다. 늑대의 귀를 그렸다. 상처받지 않으면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u003cbr\u003e\n\u003cbr\u003e\n2학년이다. 선율은 실핏줄을 타고 들어왔다. 술집에서 주운 더블 베이스 하나. 뒤뚱뒤뚱, 팅팅거리는 소리가 나의 기본 리듬이 되었다. 우리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마일수'라고 부르며 웃었다. 재즈를 사랑할수록 건물들은 푸르러졌고, 이유 없이 목이 죄어 올 때도 있었지만 공기는 달콤했다. 이마로 벽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u003cbr\u003e\n\u003cbr\u003e\n3학년, 눈 밑에서 미세한 해충들이 꿈틀거렸다. 결핍과 욕망은 좀처럼 낫지 않는 병이었다. 타로 카드를 펼칠 때마다 '전 재산을 몰수당한 자'가 나왔다. 우리는 기적을 원했지만 기적은 불평등했다. 패를 돌려라, 타, 타, 타.\u003cbr\u003e\n\u003cbr\u003e\n4학년. 겨울나무의 빈 가지가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그것을 그리지 않았다. 베이스도 치지 않았다. 타로도 펼치지 않았다. 다만 오랜 시간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u003cbr\u003e\n-「그림 동아리, 재즈 밴드 그리고 타로」 전문\u003cbr\u003e\n춤사위의 완성은\u003cbr\u003e\n아무 장식 없는 담백한 몸짓일지 모릅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나는, 당신의 바로크\u003cbr\u003e\n당신은, 나의 로코코\u003cbr\u003e\n\u003cbr\u003e\n카페를 나섭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잎사귀와\u003cbr\u003e\n꽃잎의 향기에 눈꺼풀이 떨립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조르주 데 키리코풍의 적막이 흐르는 거리,\u003cbr\u003e\n대학의 담벼락 위로\u003cbr\u003e\n산발한 장미의 피 흘림 앞에 발길을 멈춥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차량의 미등이 하나둘 켜지는\u003cbr\u003e\n초저녁의 적요가 나를 감쌉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사람들이 벗어 놓은 시간을 밟고 지나가면,\u003cbr\u003e\n석양이 카펫처럼 깔린 서쪽 하늘,\u003cbr\u003e\n붉게 물든 아르데코풍의 구름이 퍼져 가고 있습니다.\u003cbr\u003e\n-「당신의 바로크, 나의 로코코」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꿈을 빼앗긴 채 맞이한 이 겨울,\u003cbr\u003e\n은박 담요 속에서 불빛을 나누던 당신들,\u003cbr\u003e\n그 눈동자 속에서 나는 계절이 옮겨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손바닥에는 아직 불씨 하나 숨 쉬고 있습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눈 내리는 광화문 광장,\u003cbr\u003e\n함박눈을 맞으며 일렁이던 은빛 고깔의 물결.\u003cbr\u003e\n당신들은 그 안에서 서로의 이름을 묻습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키세스 시위대'라 불리던 당신들,\u003cbr\u003e\n그날의 열기는 이마에 뿔이 여러 개 돋은\u003cbr\u003e\n우리의 가슴속에 식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심장 속에서 작은 북소리가 울립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키세스, 키세스.\u003cbr\u003e\n이 길을 지나, 오늘은 따뜻한 밥을 먹으러 갈까요.\u003cbr\u003e\n-「키세스, 키세스」 부분\u003cbr\u003e\n\u003cbr\u003e\n시인의 말\u003cbr\u003e\n뚜렷한 형태가 드러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u003cbr\u003e\n그래서 눈을 크게 뜨지 않는다.\u003cbr\u003e\n\u003cbr\u003e\n떨어져 나간 일부인 것들이\u003cbr\u003e\n굴러가고 접히고 다른 일부인 것들 속으로\u003cbr\u003e\n스며듦을 선호한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폐석처럼 남은 것들\u003cbr\u003e\n이해되지 않는 동작\u003cbr\u003e\n\u003cbr\u003e\n문장을 쓰다 잘려 나간 지점에서\u003cbr\u003e\n흐르는 피가 시라면\u003cbr\u003e\n2026년 여름\u003cbr\u003e\n정익진","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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