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86853696","title":"조선의 밀사 안용복","description":"독도 문제를 놓고 한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종래의 통설을 뒤집는 획기적인 연구서가 나왔다. 독도 연구의 ‘꽃’인 안용복 연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두 차례에 걸친 안용복의 도일(渡日)을 철저하게 의도된 것으로 파악했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번 다 조정의 일부 정파와 일정하게 연결 고리가 있었다. 특히 1696년 제2차 도일은 남구만(南九萬)?윤지완(尹趾完)이 이끄는 소론 정권의 비밀 명령을 받고 파견된 경우다. 그에 앞선 1693년의 제1차 도일의 경우, 겉으로는 ‘납치’로 포장되었지만 내면적으로는 ‘납치를 유도’하여 일본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은 납치될 경우를 예상하고 일본 막부에 올릴 서한 등을 사전에 준비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t제2차 도일 때 안용복은 여수 흥국사(興國寺)에 소속된 5명의 의승수군(義僧水軍)과 제휴하였다. 이것은 전라좌수영과의 연결 고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도일 이후 숙종과 남구만?윤지완 등은 시종 비밀을 유지하는 가운데 정쟁(政爭)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고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남구만과 윤지완이 주고받은 비밀 서한은 그들이 안용복 일행의 제2차 도일을 기획하였음을 시사하는 증거다.\u003cbr\u003e\n\u003cbr\u003e\n\t저자는 이 책에서 연구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측의 제2차 자료보다도 당시 일본에서 생산된 제1차 기본 자료를 분석하고 인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일 양국의 기본 자료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당시 양국은 ‘민간 외교’를 금하고 정부 대 정부 간의 외교만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그것이 아닐 경우 사실을 사실대로 적을 수 없었다. ‘비밀리에 파견한 사행(使行)’의 경우 역시 자칫하면 국가 차원의 문제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을 적당한 선에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근본적 한계성은 연구에 큰 난관이 되어 왔다. 저자는 기본 자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난관을 극복, 해소하려고 고심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t안용복의 2차에 걸친 도일은 목적하는 바가 같다. ‘제1차 도일’, ‘제2차 도일’이라고 일컫는 것은 당연하다. 사건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제1차 도일은 안용복과 박어둔이 납치를 유도하여 일본에 들어갔다는 점이 핵심이다. 제2차 도일은 제1차 도일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이른바 ‘죽도(竹島: 울릉도)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해 소론 정권에서 비밀리에 사행을 파견했다는 점이 그 골자다. ‘기획된 납치’, ‘밀사 외교’의 관점에서 두 사건을 이해하면 숱한 의문과 오해가 풀릴 것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0470177020,"sku":"9791186853696","price":16.85,"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86853696.jpg?v=1776400029","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86853696","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