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86853832","title":"판소리 명창 한시로 읊다(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판소리 3백년 역사를 장식한 역대 명창들의 삶과 예술을 한시로 기렸다. 주역(周易) 육십사괘의 숫자에 맞추어 64명을 선정하였다. 고수(鼓手)와 명인 약간 명을 포함하였다. 이 작업은 최치원, 이색, 신위(申緯), 이영민(李榮珉)으로 이어져 내려온 관극시(觀劇詩)의 전통을 오늘에 되살린 것이다. 한시의 르네상스를 기대하는 지은이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판소리의 역사와 전통음악의 미의식(美意識)을 탐구하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관극시란\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관극시는 판소리를 감상한 뒤 지은 한시를 말한다. 조선 순조 때의 유명한 시인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처음으로 붙인 말이다. 관극시의 전통은 오래 되었다. 판소리가 나오기 이전에도 전통 연희(演?)를 보고 느낌을 시로 옮긴 경우가 있었다. 신라 말기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은 당시의 가면극 오기(五伎)를 보고 그 모습을 다섯 수의 시로 남겼다. ‘향악잡영(鄕樂雜詠)’이 그것이다. 고려 시대의 학자 목은 이색(李穡)은 당시 세모(歲暮)에 대궐에서 역귀와 악귀를 쫓기 위해 행하던 ‘구나희(驅儺?)’를 보고 ‘구나행(驅儺行)’이라는 제목의 장편시를 남겼다. 이런 것들도 관극시의 전통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t 신위의 관극시는 12수이다. 관극시의 전범을 남겼다는 점에서 그 위상이 높다. 이후 신위의 후배 세대인 송만재(宋晩載)가 ‘관우희(觀優戱)’라는 제목의 절구 50수를 지어 관극시의 전통을 계승하였고, 1930년대 국악애호가인 이영민(李榮珉) 역시 판소리 명창 등 54명의 예인을 기리는 관극시를 발표하여 다시 그 뒤를 이었다. 하나의 장르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한 것은 아니지만 최치원으로부터 이영민에 이르기까지 단절되지 않고 내려 왔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전통연희, 판소리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사료로서도 그 기능이 적지 않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0784454908,"sku":"9791186853832","price":22.47,"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86853832.jpg?v=1776401930","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86853832","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