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89766238","title":"호수의 두길 도학과 창의","description":"\u003cp\u003e호수湖 정세아鄭世雅(1535~1612) 선생은 그렇지 않았다. 남들은 한 길을 가기에도 힘들어하나, 호수 선생은 두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두 길은 도학 道學과 창의倡義이다. ‘도학’이란 실천적 차원의 성리학이고, ‘창의’란 의병을 일으키는 행위이다. 호수 선생이 도학의 길과 창의의 길을 동시에 가지는 않았다. 애초에는 도학의 길을 걷다가 나중에 창의의 길을 걸었고, 되돌아 와서 다시 도학의 길을 걸었다. 도학의 길을 걷다가 새롭게 창의의 길로 들어서면 도학의 길로 되돌아오기가 어려울 터인데, 호수 선생은 사명감을 가지고 되돌아와서 원래 가던 도학의 길을 걸었다. 어느 길이든 간에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왜 이토록 힘든 길을 걸었을까? 기이할 뿐 아니라 비범하기까지 하다. 세간에서는 호수 선생의 두 길 중 한쪽 길만을 바라보곤 한다. 한쪽 길이란 바로 창의의 길이다. 호수 선생은 창의의 길을 훌륭하게 걸었다. 당시행정 구역상 영천에서 제일 먼저 기병했고 900여 의병을 보름 만에 모았다고 하니, 만인의 칭송을 받을 만하다. 창의의 길이 빛나기는 해도, 그 기간은 불과 3년 안팎이다. 78세의 일생에서 3년 정도를 제외하고 나면, 75년 정도가 된다. 호수 선생이 75년 중의 대부분을 도학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에서 창의의 길만을 주목하는 까닭은 호수 선생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호수 선생이 향촌에 내려간 줄은 알아도, 호수 선생이 향촌에서 도학에 매진한 줄은 모른다. 세간에서 호수 선생을 도학과 연관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세간에서는 왜 호수 선생이 도학에 매진한 줄을 모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창의만 보고 도학은 보지 못한다. 창의는 시끌벅적하고 수양은 조용한 바이니, 시끌벅적한 창의에 한눈을 파느라고 조용한 도학을 놓쳤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호수 선생의 은거 기간이 도학 연마 기간임을 알지 못한다. 호수 선생은 천도天道를 구현하기 위해 향촌에 은거했고 마침내 도학적 이상향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은거생활을 걷어내면 도학생활이 보일 터인데도, 사람들은 은거생활이 무욕無欲을 지향한다고만 여길 뿐이고 은거생활의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한다. 두 인식이 매우 비정상적이다. 호수 선생의 진면목을 파악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이렇게 볼 수 있다.\u003c\/p\u003e","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62468446460,"sku":"9791189766238","price":22.47,"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89766238.jpg?v=1776041206","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89766238","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