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0841788","title":"조선서화가인보(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印章의 歷史가 시작되는 첫부분은 하늘이 帝王에게 황금인을 전해주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설이나 신화가 있었던 사실보다 있을 수 있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전개되는 古代人의 상상력이라면 황금인장의 전설 역시 마찬가지로 동양인의 인장에 대한 관념을 이야기화한 것아라 생각이 된다. 즉 그들은 하늘이 전해준 인장이란 하늘이 그 국가와 제왕을 제가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즉 인장을 하늘의 재가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인장은 인간의 역사보다도 국가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통일을 이룩하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였던 秦시대부터 인장이 쓰였다고 보는 일반적인 견해는 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이 견해에 따른다면 중국에서는 BC 300년경에 벌써 인장이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되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중기부터 쓰여 졌다고 하니까 우리보다는 약 1∼200년 앞서 사용된 셈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우리나라에서 인장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三國史記」로서 그곳에는 국왕이 바뀔 때마다 명당에서 국새인수식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高麗史」 百官志를 보면 印符郞이란 벼슬이 있어、王府의 인장을 맡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기록속에서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삼국 및 고려기에서의 인장 혹은 국새는 중국에서와 똑같이 왕조의 운명을 상징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인장에 대한 인식은 고려중기에 이르면 왕가만이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널리 퍼져, 高級官印 이외에도 개인들의 家印, 名人들 의 私印이 많이 있었으며, 인장 재료로서도 木製나 銅製 石製등이 있었고 12,3세기에 이르러 고도로 발달된\u003cbr\u003e\n청자기술과 함께 청자 인장까지 대두하였다. 이렇게 상류충의 애호속에서 화엄적 요소를 더하여가던 인장은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대두한 文人階層의 출현과 더불어 그것의 字刻美와 詩韻을 추구하게 되었다. 특히 書面家들에게서 이 점은 두드러진 현상을 보였다. 書面의 作者를 명시하는 서명구실을 하여오던 인장이 회화의 구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u003cbr\u003e\n은 일반적으로 11세기의 文人?의 출현으로부터라고 본다. 「面中有詩 詩中有面」라는 蘇東坡의 ?題가 암시하듯이 宋代에는 詩.書.?를 별도의 장르로 이해하기보다는 서로 상보적 관계에 있다고 보았으며, 그것의 보완적 기능이 조화를 이룰 적에 文人들이 추구하는 \u003cbr\u003e\n高孤한 書卷氣가 풍겨나온다고 보았거니와 이러한 문인들의 취향은 書?의 구성요소의 하나인 인장에도 藝術性의 계발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u003cbr\u003e\n그리하여 紙.筆.墨.現과 함께 文房五友로서 文士들의 귀중한 사랑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인장 하면 먼저 東洋?의 여백에 찍혀진 朱印을 떠올리는 것도 거기에 策刻藝術의 진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그 餘白과 조화를 이루어 東洋精神의 기저인 無의 思想을 잘\u003cbr\u003e\n드러내 주기 때문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금번에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힘에도 불구하고 歷代書固家들의 印을 모으려고 기도한 것은 이렇게 民族文化의 흐름 속에서 몸속에서 정기를 뿜고 있는 策刻藝術의 빛을 이어받고,  그것을 올바로 살려나가고자 함에서이다. 어찌 이 어려운 작업에 遺漏가 없을 수 있으랴만, 親刊의 諸印譜들을 底本으로 하고 本社 美術部에서 꾸준히 모은 印들을 보태어 이를 集成한 점만은 작은 意義를 지니리라 믿으며, 그것이 篠刻藝術의 앞날에 한 보탬이 된다 하면 더없는 영광이겠다. 諸賢의 ?正과 親達이 있어서 後日에 이 印集이 보다 完盤을 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一. 본서(本書)는 시대(時代)순으로 인보(印譜)를 배열하였다 그 방법이 전각예술(篆刻藝術)의 발전과정을 살피고, 독자의 예술양식으로 그 지위를 굳히고 있는 이에 대한 일반의 이해를 높일 수 있으리라는 의도에서였다. 또한 본서(本書)는 전각(篆刻)이 있었던 시간적 위치와 공간적 배경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개개(箇箇) 전각(篆刻)을 사용하였던 서화가(書畵家)의 략(略)전(傳)을 수록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二. 본서는 필창(筆?) 오세창이 편한 근역인수(槿域印)?) 자하(紫霞) 신위(申緯)와 심암(心庵) 조두순이 모아서 편한 보소당인존 원당인보 등을 저본으로 하고 성지학사에서 오랜 시일에 걸쳐 수집한 인장(印章)들을 보태어 편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三. 본서는 전각예술의 회화적 기능과 역할(役割)을 아는 보충적 방법으로서 서화사년표를 수록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四. 자호색인과 인명색인을 뒤에 붙였다. 년표순으로 배열된 전각을 찾아보는 데 편리를 돕기 위해서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五 , 본서에는 書名, 引用, 强調, 등을 모두 「 」안에 넣었다. 그것이 혼선을 빚지 않는다면 복잡한 부호를 사용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63247440124,"sku":"9791190841788","price":56.18,"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0841788.jpg?v=1776043080","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0841788","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