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2062143","title":"여진족과 임진왜란(온샘 인문학 총서 8)(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임진왜란 연구에서 여진족은 간과되고 아예 소외되어 왔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일본뿐만 아니라 북방 여진족과의 관계에서 재조명했다.\u003cbr\u003e\n기존 연구는 왜란 초기의 연전연패의 처참한 상황과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조선 위정자들의 당파싸움, 태평성대에 젖어 전혀 대비 없이 안주했다는 등 자기반성을 전재로 한 임진왜란관이 팽배했다. 임진왜란 전야의 조선은 “文만 있는 비정상적인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조선 내부에서 문제를 찾는 자기반성적인 ‘징비록적 왜란관’은 자칫 자학사관으로 임진왜란을 바라보게 만들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임진왜란 전 1580년대 조선은 평화의 시대가 아닌 북방 여진족에 의한 혼란의 시대였다.\u003cbr\u003e\n1583년 1월 니탕개는 3만의 騎兵으로 6진 지역을 유린(니탕개의 난)했으며, 1587년에는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 등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다. 이 시기 동북방은 準戰時상황이었다. 1580년대 동북방의 소란은 조선 장수들을 성장시키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들은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하게 된다. 왜란의 宣武공신 18명 중에 11명이 武科출신이며 그 중 6명이 니탕개의 난에서 활약한 장수들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임진왜란시기 조선에선 일본만이 아니라 북방 여진족의 위협 또한 상존하고 있었다. 앞뒤로 적을 마주하고 있다는 ‘腹背受敵’의 위기의식이 항존해 있었고, 일본군과 대적하던 남방의 조선군 정예를 북방으로 차출하기도 하는 상황이, 즉 왜란기임에도 ‘南倭’보다 ‘北虜’가 더 위급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63692724476,"sku":"9791192062143","price":44.9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2062143.jpg?v=1776044650","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2062143","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