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2651477","title":"투명 물고기(시인수첩 시인선 107)","description":"보이지 않아서 더 선명한 사랑의 물리학\r\u003cbr\u003e\n권혁재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투명 물고기』(시인수첩 시인선 107)가 출간되었다. 4부의 69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자명함'이라는 역설적 명제를 시적 방법론으로 보여준다. 사랑·노동·소멸·AI 시대의 인간성이라는 네 축을 하나의 감각 위에 올려놓는 시집의 표제작 「투명 물고기」는 그 방법론의 정수다. \r\u003cbr\u003e\n \"내 사랑을 당신에게 보여줄 수 없을까 \/ 체온만 겨우 남은 당신 사랑 때문에 \/\/ 스쳐도 느끼지 못한 \/ 지느러미 흔적들 \/\/ 뒤에서 밀고 오는 그 파문의 힘으로 \/ 사랑의 맹세를 새길 수 있을까 \/\/ 지워도 훤히 보이는 \/ 유리 같은 손바닥에 \/\/ 당신이 울수록 떨어지는 물빛 비늘 \/ 사랑을 다 비워낸 당신의 \/\/ 드넓은 바다 같아서 \/ 손을 대도 닿지 않는 당신\" (「투명 물고기」) 투명하다는 것은 '없음'이 아니라 '완전히 노출된 있음'이다. 권혁재 시인은 그 투명성 안에 사랑의 존재 방식을 새긴다. 손을 대도 닿지 않지만 \"지워도 훤히 보이는 유리 같은 손바닥\", 이 불가능한 가시성이야말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미적 원리다. 사랑은 소유할 수 없지만 지울 수도 없다. 권혁재 시인은 그 불가능성을 시의 정확한 언어로 빚어낸다.\r\u003cbr\u003e\n 1부는 바다와 노동 현장을 배경으로 삶의 물때를 기록한다. 「바다노래방」의 막교대에 매인 그녀, 「진폐증」의 탄광 노동자, 「명예 사원증 수령한 날」 33년의 직장인이 동일한 무게로 시의 지평을 열며 「밥집에서」의 마지막 밥알 하나가 연대의 손짓을 건넨다. 2부는 풍경이 확장된다. 갯벌·포구·강이 사랑의 지리학이 되고, 「AI 아내들」은 AI가 18세기 열녀를 소환하는 현재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3부는 시인의 미학적 핵심부다. 표제작을 비롯해 「카페 흰 당나귀」, 「회화나무」, 「점안(点眼)」, 「탈고(?稿)」 등 시인의 문학관과 사랑론이 가장 고밀도로 응축된 작품들이 자리한다. 4부는 소멸과 기억의 영역이다. 「먼 길」은 떠난 할머니를 열꽃이라는 이미지로 완성하고, 「12월」은 소멸이 해마다 반복되어도 인간은 여전히 아프다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길 끝에서」의 종착지 선언이 그 뒤를 받으며, 시집은 하나의 원으로 닫힌다.\r\u003cbr\u003e\n\"다음 이후의 다음은 없다 \/\/ (중략) \/\/ 아침 출근길에 횡사를 한 사람들 \/\/ 저녁에 보자던 약속은 \/ 다음 이후의 약속이 되었다 \/\/누가 밥 한번 먹자고 하면 \/ 다음보다는 \/지금이라고 \/ 분명하게 대답할 때 \/ 다음다운 다음이 있다\" (「다음 이후의 다음은 없다」) 이 시는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일상 언어에서 삶의 유한성을 끌어낸다. \"저녁에 보자던 약속은 \/ 다음 이후의 약속이 되었다\" 시인은 여러 참사와 산업재해를 직접 거명하지 않는 대신 그 자리에 '횡사'라는 시어를 통해 독자의 기억과 연결한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태로움과 허망함을 각성하게 하는 시인의 힘, 이 시인의 언어가 가진 힘이다. \r\u003cbr\u003e\n이어 창작 행위 자체를 해부한 자기 메타시인 생선 비늘을 벗기는 행위로 원고 탈고를 비유한 이 시는 창작의 폭력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맨살을 드러낸 눈이 \/ 심해처럼 깊다\"(「탈고」). 시인에게 탈고는 바다를 지우는 마지막 제의(祭儀)다. 언어 예술에 대한 시인의 인식론적 성실성이 가장 압축된 형태로 빛나는 작품이다. 권혁재의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를 정확하게 가리킨다. '물빛 비늘', '민어의 울음소리', '유리 같은 손바닥'이 감각들은 사랑의 실체를 붙잡으려는 언어가 아니라,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온도를 재는 언어다. 투명하다는 것은 없음이 아니라 완전히 노출된 있음이듯,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이다. 그는 노동의 현장과 사랑의 언어에서 동일한 물리적 정확성을 요구한다. 막교대와 진폐, 해고와 택배 그 단어들이 사건의 증거이듯, 손을 대도 닿지 않는 당신과 지워도 훤히 보이는 손바닥은 그에게 투명한 증거다. 소유할 수 없지만 지울 수도 없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이 끝내 도달한 사랑의 물리학이다. \r\u003cbr\u003e\n그 물리학은 AI 시대의 젠더 정치학으로도 확장된다. 「AI 아내들」은 \"십팔 세기 열녀가 돌아왔다\"는 선언으로 시작해, 최신 기술이 복원하는 것이 편의가 아니라 봉건적 여성상임을 날카롭게 담아낸다. \"문명에 바랜 애교를 한 세기로 앞당겨 놓고 \/ 돈 버는 노비로 전락한 남정네를 \/ 전란에 출정하는 전사로 치켜세우는\" AI의 이면을 냉소적으로 포착하는 한편, 「AI의 애인」은 그 반대편을 조명한다. 늦은 야근 끝에 돌아오는 남자에게 건네는 \"수고했다\"는 한마디와 \"오빠!\"라는 호칭 등, AI가 충족시키는 것은 기능적 필요가 아니라 인정의 결핍이다. 이 두 편을 맞붙여 읽을 때 독자는 AI가 여성에게 가하는 압력과 AI에 기대는 인간의 공허가 하나의 구조 안에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인은 판단을 유예한 채 시 속의 AI 초상을 최소한의 언어로 완성한다.\r\u003cbr\u003e\n시인은 산문 「혁명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시의 힘」에서 존 스타이너의 '빚진 사랑' 개념을 자신의 시작(詩作) 원리로 명시한다. 시인의 이런 시편들은 사회의 주변부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온 이들 막교대 노동자, 진폐 광부, 해고 직원, 택배 기사, 외로운 술꾼에게 진 사랑의 부채를 시의 형식으로 돌려주는 헌정(獻呈)이다. 밥 한번 먹자는 말 한마디에서 하루 앞을 모르는 삶의 실체를 각성시키고, 생선 비늘을 벗기는 손끝에서 창작의 폭력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건져 올리는 시인. 권혁재 시인의 언어는 광장이 아니라 탁자 모서리의 밥알 한 톨에서 혁명을 시작한다. 그 혁명은 조용하고, 정확하고, 오래 남는다.","brand":"여우난골","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9006200619260,"sku":"9791192651477","price":13.48,"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2651477.jpg?v=1776722541","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2651477","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