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2666037","title":"인도 그리고 인도음악(수정판)","description":"이 도서는 저자가 인도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 직접 연구할 자료, 참가한 축제 등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이다. 특히 “overnight concert.\"에 대한 글은 감동스럽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밤새워 화투놀이를 한다든지 술을 마셨다든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전통음악을 들으면서 밤을 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음악을 듣는다기보다 ‘밤샘음악회 구경’하기로 마음먹었다. 시간표를 보니 저녁 8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그야말로 밤을 새우는 음악회였다. 인도가 자랑하는 최고의 성악가 Bhimsen Joshi, 반수리의 Chaurasia 등 거물급 연주자들 이름이 보였다. 나는 8시에 시작을 한다고 하지만 좀 쉬었다가 늦은 시간 밤 9시에 현장으로 출발하였다. 도착하고 보니 정규 공연장은 아니고 공원에 천막을 친 임시 공연장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매표구에 와서 놀란 일은 놀랍게도 입장료가 100루피라는 거금이라는 점이었다. 간단한 점심 값이 10루피 정도이니 대강 어림잡아 우리나라의 7만원 쯤 되는 돈이다. 더 놀라운 일은 ‘sold out' 매진이라는 것이다. 아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늦게 온 죄로 비싼 암표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들어가 보니 좌석 반이 비어 있었다. ‘내가 인도 사람에게 또 한 번 속았군’하며 앉아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12시가 가까워지자 비었던 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그리고 빔셈죠시가 한방중의 라가(midnight raga) 바가쉬리(Bhageshiri)를 느린 알랍으로 시작하였다. 1000여명의 청중이 조용히 한음도 놓치지 않으려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빔셈조시의 연주는 장장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리고 환호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고 있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호텔로 다시 돌아오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해 보았다. 기악도 아닌 성악가가 무슨 힘으로 사람들을 한 시간 동안이나 청중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전통음악의 어떤 힘이 인도 사람을 저토록 휘어잡고 있는 것일까? 인도 음악을 공부해 보면 전통음악에서 떠나버린 한국 사람을 다시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밤샘음악회를 다녀온 후 나는 인도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더니 이게 빈말이 아니었다. 이제 더위도 참을만하고 인도 사람과 사귀어보니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인도 음악의 비밀을 캐려고 우선 악보를 구해 보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책을 얻어 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공책에는 몇 년간 공부했다는 것이 겨우 10여 쪽을 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수업을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인도에서는 7-8명이 그룹 지도를 받는다. 선생이 오면 한 사람씩 선생에게 나아가서 연주를 해 보이고 약간의 지도를 받고 잘 되면 다음 과제를 준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된 작품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토막토막을 배운다. 그리고 다양한 즉흥연주를 위한 짧은 악절을 배우고 있었다. 이 후에는 스스로 이 구절 저 구절을 모으거나 변형시켜서 음악을 완성시킨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인도음악의 선법인 라가도 고정된 것이 아니다. 한 옥타브를 22로 나누는 수르띠를 이용하여 수많은 라가를 만들어 낸다. 어떻게 라가가 많은지 라가 사전이 200여 쪽에 달한다. 라가는 계속 새로 만들어지고 인기가 없으면 사라진다. 인도음악의 장단인 딸라도 계속 만들어 진다. 물론 유행하는 딸라가 있기는 하다. 한 사람이 구사할 수 있는 딸라는 대개 20여종이 된다. 비나 연주가인 자얀띠(Jayanthi)는 15박 딸라를 잘 구사하여 인기가 높다. 15박은 여러 가지로 조합된다. 3+3+4+3+2 또는 3+3+3+4+2 등으로 자유로 조합할 수 있다. 이러한 리듬을 1분에 130박 이상의 속도라면 여간한 공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도 사람들은 이것을 즐긴다. 동일한 즉흥연주로 시작한 한국의 판소리나 산조는 어떤 상황일까? 옛 산조 선생은 매일 똑같은 음악을 연주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선생에게 똑같이 배운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소리꾼은 ‘사진소리 쟁이’라 하여 음악계를 빨리 떠나야만 하는 대상이었다. 선생은 학생에게 가르칠 만큼 가르치고 나서는 더 큰 선생을 찾아가라고 학생을 보냈다. 이렇게 몇 선생을 거치는 동안 기량이 늘어나면 이제 독공(獨工)이라는 단계가 있다. 혼자서 폭포나 토굴 속에서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냈을 때 이를 ‘득음’(得音)이라 하고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야 명창이 되는 것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요즘 선생은 제자를 붙들어 놓고 다른 사람에게 보내지 않는다. 제자가 선생을 떠나 다른 선생에게 배우려고 하면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사람은 우선 ‘의리없는 제자’가 되고 소위 ‘버릇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압력이 들어와 홀로 서기가 여간 버겁지 않다. 그래서 우리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이 고리를 끊어보려고 대학원에서 학기마다 다른 선생님께 배우도록 하는 강제 규정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끊을 수가 없기에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끊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u003cbr\u003e\n우리나라 유명 콩쿠르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정곡은 ‘김죽파가야고산조’였다. 한 참가자는 참으로 잘 탔다. 모두들 대상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채점표를 수합해 보니 한 심사자가 실격이라고 점수를 주지 않았다. ‘김죽파 산조가 지정곡이라면 그 산조를 충실히 타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참가자는 김죽파 산조에 없는 가락이 들어있었다’라는 것이 실격 판정을 한 근거였다.  \u003cbr\u003e\n이를 듣고 필자는 ‘이제 산조는 이 시대의 음악이 아니고 과거의 음악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선생의 선율을 충실히 보존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새로운 산조의 출현이 무척 어려워진다. 세상의 취향은 바뀌는데 음악이 굳어있으니 사람들은 음악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u003cbr\u003e\n원래 산조는 김창조가 약 100년 전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많은 유파가 탄생하였다. 이것은 김창조의 제자들이 각각 창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산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과 사회가 이러한 새로운 산조의 출현을 용인한 결과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2136528124,"sku":"9791192666037","price":30.34,"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2666037.jpg?v=177640868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2666037","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