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5502691","title":"해군의 아버지 손원일(국군열전)","description":"선구자(先驅者)는 먼저(先) 세상을 보고 앞서 가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손원일이라는 인물은 단연 선구자다. 선구자였던 손원일 제독은 언제나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18~19세기는 서양열강(西洋列强)들이 앞다투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서양열강들이 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해술(航海術)이 있었다. 유럽의 변방이었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섬나라 영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항해술 덕분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가 약소국을 침략하고, 그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하기 위해서는 항해술이 필수였다. 해군 함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약소국을 점령한 후, 그 지역에서 총독(總督)으로 통치했다. 육군과 공군 장성을 장군이라고 하지만, 유독 해군 장성을 제독(提督)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곧 선진국이었던 것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서양열강의 야욕 앞에 아시아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바다 너머에서 건너온 서양열강들에게 아시아 국가들은 차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예외였던 나라가 단 하나 있었다. 일본이었다. 일본은 개항(開港)을 요구해온 미국에게 순순히 문호(門戶)를 개방했다. 그리고 국력을 신장시킨 후, 서양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웃나라들을 침략했다. 참으로 고약한 나라라고 아니할 수 없겠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일본에게 첫 번째로 당한 나라가 대한제국(大韓帝國)이었다. 그리고 그 망국(亡國)의 땅에서 손원일은 설움을 감수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17세의 소년 손원일이 상해에 처음 발을 딛던 1926년 당시의 상해는 서양열강의 해군 함정들과 상선들이 모여드는 국제 항구였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그곳에서 열강 해군의 위용을 목격한 손원일은 장차 조국이 광복되면 자신의 손으로 해군을 창설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게 된다.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소년 손원일은 꿰뚫고 있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그런 면에서 손원일은 선구자였다. 대한민국 해군 역사의 첫걸음은 손원일이 중앙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했던 그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혹자(或者)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손원일이 없었더라도 대한민국 해군은 창설되었을 것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만약 손원일이 없었다면, 해군의 출발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며, 출범을 했다 하더라도 지금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손원일은 미치광이였다. 그는 한평생을 오롯이 한 가지 목표에 매진했다. 그래서 손원일은 미치광이다. 미치광이처럼 오직 해군을 위해 살았기에, 사람들은 그를 ‘해군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손원일이라는 30대 중반의 청년이 해군을 건설하겠다고 동분서주할 때 그의 주변에는 그보다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손원일 주변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손원일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추대하고 따랐다. 그가 미치광이처럼 한길로 나갔기 때문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영웅들이 추앙받는 이유는 하나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홀로 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홀로 걷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손원일은 희대의 영웅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광복 후, 국군을 만든 수많은 영웅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손원일이다. 독립운동가 손정도를 아버지로 둔 손원일은 성골(聖骨)이나 진골(眞骨)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육두품(六頭品)은 되는 인물이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하지만 손원일은 일본군계와 만주군계까지 서슴없이 품에 안았다. 그 이유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라 없는 백성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6·25전쟁 중, 육군총참모장은 만주군 출신의 정일권이었고, 공군총참모장은 일본군 출신의 김정렬이었다. 그때 손원일은 정일권과 김정렬에게 “우리 의형제를 맺고, 나라를 위해 죽을힘을 다하자.”고 제안한다. 이유는 단 하나, 구국(救國)이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그것은 손원일이 해방병단 시절부터 도별담(道別談)을 금지했던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손원일은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면서 패거리를 짓는 자들이야말로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원일은 한 마디로 가슴이 넓은 인물인 것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인물. 오로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해군의 초석을 쌓은 인물. 국군현대화의 기반을 다진 인물. 이런 면에서 볼 때 손원일 제독은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조선을 구해낸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에 필적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국군 장병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라고 권할만한 책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61837662460,"sku":"9791195502691","price":14.61,"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5502691.jpg?v=1776021846","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5502691","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