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5597772","title":"태평양전쟁과 고고학","description":"동북아시아부터 남태평양에 이르기까지\u003cbr\u003e\n\u003cbr\u003e\n태평양전쟁기의 고고학 연구사를 재조명하다\u003cbr\u003e\n한국에서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해 근대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고학자들에 의해서였다. 일찌감치 일제는 1900년대부터 식민 지배를 위해 한반도에 대한 고고학ㆍ인류학 조사를 시작하였고 이를 위해 191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설립, 그 산하에 고적조사위원회를 설치해 본격화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의 발생으로 예산이 삭감되자 조선총독부 중심의 조사가 침체기를 맞기도 하였다. 예산 삭감으로 인해 조선총독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전국적으로 도굴이 만연하자 심각성을 깨달은 일부 일본고고학자들은 1931년 반민반관 단체인 조선고적연구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1930년대 유적조사는 조선고적연구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고도(古都)인 경북 경주와 고령, 충남 부여와 공주, 평양 등지를 중심으로 초대형 무덤 등 중요 유적 수백 건의 발굴이 진행됐다. 신라 금관의 경우 총 5점이 발굴됐는데, 이 중 3점이 일제강점기 발굴된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에서 출토되었다. 일본이 제국주의 기치 아래 침략전쟁을 하는 동안 중국 및 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등의 여러 나라에서 벌인 고고학 활동은 국가정책과 강하게 밀착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의 분격적인 시작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의 기간 동안 고고학 유적조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하며 메이지시대부터 추구해온 부국강병이라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 이념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고고학계 역시 그러한 대내외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부분의 고고학 연구는 일본열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일본 밖의 여러 나라 소위 ‘외지’에서 이루어진 고고학 연구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왜 제국주의를 표방하던 그들이 일본 ‘내지’의 역사만 강조할까?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국경선 안에 거주하며,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인들이, 일본의 제국역사를 일본 ‘내지’의 역사로 축소함으로 태평양전쟁의 책임과 역사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수단이다. 이 책에서는 ‘공백의 시간’처럼 다루어지는 소위 ‘15년 전쟁(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열도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진 일본 고고학계의 활동과 그 과정을 소상히 보여줌으로써 격동의 시대를 겪은 일본 고고학계의 전모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한국 고고학사 태동을 살펴볼 수 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3033584892,"sku":"9791195597772","price":16.85,"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5597772.jpg?v=1776412653","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5597772","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