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6430870","title":"병자호란전후 류림장군의 장략과 김화대첩(양장본 HardCover)","description":"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u003cbr\u003e\n\u003cbr\u003e\n그러나 그 속에 류림의 김화대첩이 있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u003cbr\u003e\n류림(선조14~인조21년)은 10여 세에 부모와 형들을 임진왜란 중에 잃어 고아로 자랐다. 23세에 무과 급제하여 훈련도감의 교관으로 7년간 복무하면서 임진왜란 중 평양성 탈환에 큰공을 세운 명나라 남방병의 병법과 전술을 터득하고 가르치면서 명실상부한 무장으로 성장하였다.\u003cbr\u003e\n\u003cbr\u003e\n인조 초의 이괄난을 위시하여 정묘, 병자호란을 몸소 겪었던 류림은 남한산성의 행궁과 객관을 건립하여 병자호란에 인조의 피난처를 마련하였고, 철기병을 앞세운 청군의 내침에 대비하여 영변 약산에 철옹산성을 쌓아 청의 좌익군 수만 명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평안병사로 부임하여 축조한 안주성은 10만 대군을 거느린 청 태종도 감히 공격할 여지가 없자 항복을 권유하는 문서만 남기고 물러났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남한산성이 완전히 포위되자 평안감사 홍명구와 함께 근왕병을 이끌고 남하하다가 김화에서 함경도 와이객을 토벌하러 올라가던 청군 6,000명과 조우하여 관아 앞에 포진한 홍명구 군은 초전에 전몰되었으나 류림의 군사는 잣나무가 무성한 산기슭에 포진하여 수천 명의 청군을 몰살시킨 병자호란 초유의 대첩을 거두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군사를 이끌고 남한산성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인조가 항복한 직후였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청 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명나라를 침공할 때 군사를 지원토록 다짐하였다. 따라서 류림은 우방국인 명의 가도를 공략할 때 조선군 대장으로 출정해야하였고, 명의 금주성 전투에도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길에 오르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였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3986773244,"sku":"9791196430870","price":28.09,"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6430870.jpg?v=1776430848","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6430870","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