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6538392","title":"기독교 다시 서기","description":"1세기 성서 저자들은 예수 사역과 가르침 즉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나라를 증언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2세기 신학자들은 그분의 사역과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를 증언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을 그리스 철학으로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나라가 실종되었고 이어서 삼위일체 신론이 약화되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와서 하나님나라 신학이 전개되었는데 한국 보수 신학계는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 실종으로 인해 기독교 신학이 성서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기독교 신학이 인류 보편 인식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합니다.\u003cbr\u003e\n그리고 그리스도인 믿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u003cbr\u003e\n성서가 기독교 신학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u003cbr\u003e\n\u003cbr\u003e\n4세기에 성서가 정립되고 5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기독교 신학이 확립되기까지 2-3세기에 다양한 신학 흐름이 있었습니다. 주요한 흐름 4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u003cbr\u003e\n1. 유대-기독교입니다.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지도자로 한 예루살렘 공동체는 에비온파(가난한사람들)로 불리기도 하는데 70년 예루살렘 멸망시 요단강 동편에 피신했다가 시리아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에게 ‘히브리인에 따른 복음’ ‘나사렛파 복음’ ‘에비온파 복음’이 있었는데 기독교 신학으로 유입되지 못했고 그 복음서들도 유실되었습니다.\u003cbr\u003e\n2. 영지주의입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도마복음 등 나그함마디 문서들은 4세기 성서가 정립될 때 이단 문서로 규정하여 땅에 파묻혔다가 1945-46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되었습니다.\u003cbr\u003e\n3. 변증가 이면서 이단 논박가인 이레나이우스(서기 202년경 사망)는 현재와 같은 4복음서 만을 진본으로 간주하고 바울과 요한 문서를 통해 기독교 정체성을 세움으로써 4세기 성서 정립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으로 자리하지 못했습니다.\u003cbr\u003e\n4. 신플라톤주의자 오리게네스(185-254)가 시도한 그리스 철학에 의한 기독교 신학 형성입니다. 최초 그리스도인들과 바울 그리고 신약 복음서 저자들에게 ‘복음’ 구성 요소였던 것은 거의 무시되었습니다. 바로 이 신학이 기독교가 예수와 성서를 제치고 플라톤 사상에 경되된 길을 가게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오리게네스 제자이고 기독교 신학을 정립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안내로 신플라톤주의 사상을 그대로 지닌 채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3418281212,"sku":"9791196538392","price":24.72,"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6538392.jpg?v=1776429774","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6538392","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