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book-9791196948290","title":"신주사기 9: 효경본기 효무본기","description":"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오랜 연구 끝에 펴낸 《사기》 완역본이다. 본문뿐 아니라 대표주석서 3권까지 함께 번역한 기념비적인 책이다. 새로운 관점의 주석까지 추가하여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볼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총 40여 권이 출간될 예정이다.\u003cbr\u003e\n\u003cbr\u003e\n효경제는 인자한 군주였지만 조조(晁錯)의 삭번책으로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했다가 7국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본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효경제의 아들 효무제 본기다. 그가 바로 사마천을 궁형에 처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무제는 제후들의 권력을 약화시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흉노·고조선·대원국 등을 정벌해 한나라 강역을 크게 확장시킨 중흥군주였다. 그러나 사마천은 무제를 아주 박하게 기술했다. 사마천은 “무제는 즉위 초에 더욱 공경하게 귀신의 제사를 받들었다.”라고 무제를 영생불사를 꿈꾸는 방사(方士) 군주처럼 그렸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무제의 가장 큰 우선정책이 ‘해중(海中)의 신선’을 찾는 것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한고조도 크게 곤욕을 겪었던 흉노를 정벌했으나 정작 〈효무본기〉에는 이에 대한 사항이 별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조선 정벌에 대해 “이듬해 조선을 정벌했다”라고 한마디로 묘사하고, 대원국(大宛國) 정벌에 대해서도, “이해에 서쪽 대원국을 정벌했다”라고 한 마디로 정리했으며, 나아가 “건장궁(建章宮)을 지었는데 헤아려보니 문이 1천 개이고 방이 1만 개였다”라고, 진시황 못지않게 거대한 역사(役使)를 좋아하는 군주로 묘사했다. \u003cbr\u003e\n\u003cbr\u003e\n무제에 대한 이런 박한 기술은 그가 당한 궁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마천은 황제로 시작해 삼대와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로 이어지는 하화족의 민족사를 서술하려는 자신에게 궁형을 가한 무제를 좋게 평가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가 아무리 중립성을 강조해도 역사 서술에 절대적 객관이나 중립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사례이다.","brand":"My Store","offers":[{"title":"Default Title","offer_id":48993652113660,"sku":"9791196948290","price":20.22,"currency_code":"USD","in_stock":true}],"thumbnail_url":"\/\/cdn.shopify.com\/s\/files\/1\/0730\/4681\/9068\/files\/9791196948290.jpg?v=1776430477","url":"https:\/\/bookstore12.com\/products\/book-9791196948290","provider":"Bookstore 12","version":"1.0","type":"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