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THE HISTORY 세계사 인물 9)(반양장)
플라톤의 스승!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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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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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스승!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
"나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다. 단지 지혜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처럼 지혜가 있는 자는 지혜를 사랑하거나,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더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무식한 사람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찾게 마련입니다. 지혜가 없는 자가 지혜를 찾게 됩니다. 철학자는 지혜가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지혜가 없음을 깨닫고 지혜를 사랑하며 찾게 됩니다."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묻고 답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깨달아 그것을 익혀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문답법'으로 질문을 계속해서 그들이 가진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즉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질문했다.
위대한 대철학자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플라톤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영원한 스승과 제자로 알려진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정식으로 만난 것은 스무 살 정도가 되어서였으나, 사실은 플라톤이 출생하기 전부터 어른끼리는 많은 만남으로 친숙하게 지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도 플라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태어났던 당시는 소크라테스가 마흔두 살 되던 해였다. 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 전쟁은 플라톤이 스물세 살이 되던 기원전 404년에야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다. 이때 스파르타 점령군의 도움을 받아 망명하여 다른 나라에 가 있던 스파르타의 크리티아스가 돌아왔다. 그는 30인으로 구성된 독재 정부를 수립했지만, 스파르타의 국론이 분열되고, 다른 나라에 가 있던 민주파가 또다시 나라 안의 세력과 힘을 합쳐 내란을 일으켰다. 이리하여 단 며칠 만에 나라가 전복되고, 민주주의로 다시 돌아갔다.
이러한 혼란기에 소크라테스는 위험인물로 지목받아 처형되었으며, 이때 플라톤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으로 플라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라는 스승이 어떤 인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존경했다.
플라톤의 청년 시대는 전쟁과 혁명으로 뒤얽힌 시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갔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
"나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다. 단지 지혜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신처럼 지혜가 있는 자는 지혜를 사랑하거나, 그것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더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무식한 사람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무식하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찾게 마련입니다. 지혜가 없는 자가 지혜를 찾게 됩니다. 철학자는 지혜가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지혜가 없음을 깨닫고 지혜를 사랑하며 찾게 됩니다."
이와 같이 소크라테스는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묻고 답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모르는 것을 깨달아 그것을 익혀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을 만날 때마다 '문답법'으로 질문을 계속해서 그들이 가진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즉 사람들이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질문했다.
위대한 대철학자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플라톤을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영원한 스승과 제자로 알려진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정식으로 만난 것은 스무 살 정도가 되어서였으나, 사실은 플라톤이 출생하기 전부터 어른끼리는 많은 만남으로 친숙하게 지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것도 플라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태어났던 당시는 소크라테스가 마흔두 살 되던 해였다. 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때이기도 했다. 이 전쟁은 플라톤이 스물세 살이 되던 기원전 404년에야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다. 이때 스파르타 점령군의 도움을 받아 망명하여 다른 나라에 가 있던 스파르타의 크리티아스가 돌아왔다. 그는 30인으로 구성된 독재 정부를 수립했지만, 스파르타의 국론이 분열되고, 다른 나라에 가 있던 민주파가 또다시 나라 안의 세력과 힘을 합쳐 내란을 일으켰다. 이리하여 단 며칠 만에 나라가 전복되고, 민주주의로 다시 돌아갔다.
이러한 혼란기에 소크라테스는 위험인물로 지목받아 처형되었으며, 이때 플라톤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으로 플라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이에 따라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라는 스승이 어떤 인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존경했다.
플라톤의 청년 시대는 전쟁과 혁명으로 뒤얽힌 시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갔다.
목차
목차
석공의 아들
소문난 악처
너 자신을 알라
바구니에 담긴 소크라테스
법정에서의 변론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
소문난 악처
너 자신을 알라
바구니에 담긴 소크라테스
법정에서의 변론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
저자
저자
이효성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1986년 한국동화문학상을 수상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역임하엿다. 저서로는『달과 뱃사공』『인형 아가씨』『열두 대의 꿈마차』『태종 이방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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