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14)
유까딴 1847-1902
『마야 원주민의 전쟁과 평화』는 1847년에 발발하여 1902년까지 지속된 원주민과 백인의 사회 계급적이고 인종 대립적인 전쟁, 유까딴의 까쓰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가스따 전쟁의 결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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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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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까딴의 까스따 전쟁은 1847년에 발발하여 1901년까지, 약 54년간 계속되었다. 이는 약 7년간의 폭력적인 전쟁 기간(1847-1854)과 마야 사람들이 반도 북동쪽의 밀림으로 물러나서 47년 동안 살았던 기간(1854-1901)을 일컫는다. 까스따(Casta)는 계급을 의미하는데, 전쟁의 이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피지배와 지배, 원주민과 백인의 사회 계급적이고 인종 대립적인 전쟁이었다. 당시 유까딴에는 라디노(ladino)라고 부르는 스페인의 후예 끄리오요(Criollo)와 스페인과 마야원주민의 혼혈인 메스띠소(Mestizo), 그리고 마야(Maya) 원주민이 있었다. 이 모든 사회계급의 구성원이 뒤엉켜 싸운 이 전쟁은 '마야의 사회전쟁(Guerra Social Maya)'이라고도 부른다. 까스따 전쟁은 무엇보다 멕시코 역사상 가장 처절한 유혈 전쟁이었다는 것과 54년간 지속된 오랜 반란 기간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약 7년(1847-1854)간의 폭력적인 시기를 지나 1854년부터 1901년까지 47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아메리카 대륙에 유럽 사람들이 들어온 이후 유일하게 '원주민의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도시가 세워졌었다.
이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유까딴 주의 바야돌리드(Valladolid), 띠시민(Tizimin), 떼삐츠(Tepich), 띠호수꼬(Tihosuco) 및 낀따나로 주의 찬 산따 꾸르스(Chan Santa Cruz, 현재의 까릴요 뿌에르또)에 이르는 지역에는 아직도 싸움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다. 띠호수꼬와 떼삐츠의 주민들은 반란을 이끌었던 원주민 지도자들의 동상을 세우고, 전쟁의 박물관을 만들고, 사건의 과정을 재현하는 드라마를 공연하는 등 해마다 7년의 전쟁을 기억하는 행사를 연다. 까릴요 뿌에르또에는 찬 산따 꾸르스를 모시는 예배당이 그대로 있는데. 주변 마을에서 온 대표자들이 돌아가며 십자가를 지키고 있다. 마을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이끈 지도자들이 불의와 가난의 비참한 상황에 빠진 마야 사람들을 위해 싸웠다고 말한다.
까스따 전쟁이 원주민들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까스따 전쟁의 경과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전쟁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제1장 식민지 시대 마야 사회의 형편
1.1 스페인 사람들의 도착
1.2 식민시대의 시작
제2장 폭풍 전야
2.1 독립 직후의 사회 상황
2.2 노흐까깝의 반란
2.3 전쟁의 발발
제3장 원주민과 라디노의 대립
3.1 바야돌리드 습격
3.2 아이의 처형
3.3 떼삐츠의 공격
제4장 유까딴의 계급 전쟁
4.1 마야 사람들의 짧은 승리
4.2 친구와 적
4.3 협상(1848년)
4.4 마야 사람들의 패퇴(1848~1849)
제5장 십자가의 사람들
5.1 십자가의 강림(1850~1852)
5.2 찬 싼따 끄루스의 형성(1852~1855)
5.3 '말하는 십자가'의 나라(1855~1861)
5.4 끄루스옵과 유까딴의 전쟁
5.5 끄루스옵과 주위의 나라들
5.6 까스따 전쟁의 종결
제6장 까스따 전쟁을 돌아보며
참고문헌
일러두기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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