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지도(문예중앙시선 16)
홍일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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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자기 발견과 귀환의 서사!
홍일표 시인의 네 번째 시집『매혹의 지도』.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순수한 감각적 구성물로서의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이 사유한 흔적을 두루 보여주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상상적 질서에 따라 감각과 사유가 재배열된 결과를 구성적으로 보여주며, 상상적 명명의 순간들을 담아낸 심미적 기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 자기 기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섬세한 자기 확인 과정을 치러나가며 첨예하고도 풍부한 시적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가능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수국에 이르다’, ‘이면의 무늬’, ‘뱀 이야기’, ‘너무 질긴 저녁’, ‘혁띠와 뱀의 습성’, ‘달빛 사용 설명서’, ‘꽃 피는 발’, ‘물고기 발자국’, ‘418호’, ‘그림자 재고 정리’, ‘시계를 먹는 고양이’ 등의 시편을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홍일표 시인의 네 번째 시집『매혹의 지도』.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저자의 이번 시집은 순수한 감각적 구성물로서의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해 깊이 사유한 흔적을 두루 보여주는 시편들을 선보인다. 상상적 질서에 따라 감각과 사유가 재배열된 결과를 구성적으로 보여주며, 상상적 명명의 순간들을 담아낸 심미적 기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 자기 기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섬세한 자기 확인 과정을 치러나가며 첨예하고도 풍부한 시적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가능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수국에 이르다’, ‘이면의 무늬’, ‘뱀 이야기’, ‘너무 질긴 저녁’, ‘혁띠와 뱀의 습성’, ‘달빛 사용 설명서’, ‘꽃 피는 발’, ‘물고기 발자국’, ‘418호’, ‘그림자 재고 정리’, ‘시계를 먹는 고양이’ 등의 시편을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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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단 한 번도 감각하지 못한 대상과의 '만남'과 '젖음'
탄성계수 높은 서정성으로 삶에 대한 사유를 시 속에 녹여온 홍일표 시인이 5년 만에 『매혹의 지도』(문예중앙시선016)로 돌아왔다. 시인은 스스로 "나는 골동품 같은 구름이나 기러기를 버린 지 오래"(「안개 통신」)라고 말하며, 지난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2007)과 단절된 색다른 면모와 진화된 시세계를 이번 시집에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홍일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풍부해진 감각의 층과 깊은 상상적 미감에서 끌어올린 언어로 "대상과의 깊은 교유"(「시인의 말」)를 매혹적으로 펼쳐나가며, 한편으로 시와 시인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전개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눈 감지 못한 잉걸불 같은 눈으로 밤을 사냥하"(「불 켜진 고양이」)며 시와 시 쓰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홍일표 시인에게 시(詩)란, 대상에 대한 무한한 '홀림'이며, "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과 "안개의 미세한 떨림"(「매혹의 지도」)을 마음의 지도에 그려 넣는 것이다. 이 시집 전반에서 그러한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권혁웅 시인)지니, 실로 "매혹의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언어가 가닿지 못한,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
이번 시집에서 드러난 홍일표 시세계에 대해, 유성호 평론가는 "메시지 중심 코드에서 환유적 감각의 층을 풍부한 모호함으로 확산해내는 코드로 이월되고"(해설「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있다고 평한다. 즉 홍일표 시세계의 변화는 '감각'의 측면에 있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그 대상에서 촉발된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시 속에 부려놓는다. 그런 상상의 질서에 따라 감각과 사유를 재배열하는 마음의 기록이 홍일표의 시편들이다.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햇살들이 손수건만 한 경전을 펼쳐들기도 한다//땅속에서 캐낸 태양은 먹기 좋게 식어 있다/붉은 껍질만 잘 벗겨내면/달지 않은 수국 한 송이 꺼내/한 열흘 땅 위의 배고픈 그림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멀리서 온 바람이 수국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지나간다
―「수국에 이르다」 전문
실재가 아닌 끓어오르는 상상을 시편 곳곳에 부려놓으니, 그 언어에는 언어로써 다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절묘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논리적 해명보다는 상상적 점화(點火)를 욕망함으로써 채택된 시적 수사학"(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이며 "말의 머리를 비틀어 슬그머니 말을 넘어서는 당신의 수사학"(「뱀 이야기」)이다. 이를 권혁웅 시인은 "손으로 잡아챈 명료가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라고 말한다.
이번 시집에는 이른바 경구 형식의 '창조적 은유(creative metaphor)'가 많이 활용되었다. "귀는 허기진 동굴"('콘서트')이나 "별은 하늘에 고용된 일용직 악사"('검은 사막') 같은 간명한 비유로부터, '수평선'을 두고 "바다의 입을 꿰맨 바느질 자국"('나는 수평선이 불안하다')이라거나 '저수지'를 두고 "온종일 글썽이는 눈망울"이나 "밀봉되었던 물의 살가죽이 갈라지고/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저수지')이라고 한 비유에 이르기까지, 흡사 잠언(箴言)을 떠올리게 하는 단정하고도 단호한 은유가 많이 구사되었다.
―유성호, 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중에서
자기 기원과 시를 향한 무한한 탐색
"잠들지 못한 볼펜 끝에서/누군가의 검고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불 켜진 고양이)」온다고 한다면, 그 누군가의 울음소리는 분명 시인 자신일 것이다. 홍일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기 기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섬세한 자기 확인 과정"(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을 치러 나간다. 그래서 시편 곳곳에 시인은, 풍랑을 좇고 파도나 해일을 요리하는 고양이의 모습이나, "밤의 살을 뜯어 먹는"(「원시인」) 개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바위의 눈 속에서 나는 바위이고, 공기의 눈에 나는 물렁물렁한 공기"(「원시인」)이듯 시인은 스스로 자기 기원을 탐색하며, 때로는 바위와 공기처럼 순수한 물질이 되고자 욕망한다. 시인은 "내가 희미해질수록/나는 정직한 물질이 된다"(「원시인」)고 말한다. 바위와 공기처럼.
온종일 들리지 않는 그 여자의 노래 속에서 뒹굴다가/머뭇거리는 안개의 살을 만져보는데/손발이 없다 얼굴은 뭉개져 소리가 오가던 길도 지워져 있다//술잔 밖은 언제나 에로틱하거나 우아한 죽음을 지향한다/아주 단순하게 바람이 불고/비가 내리다가 자주 생각의 허리를 부러뜨려 잃어버린 바늘을 찾기도 한다/예민해진 가을숲에서 부러진 빗줄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만 리 밖에서 울며 걸어오던 비가 어제 죽은 허공의 등줄기를 적신다/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저곳/빈 동굴은 웅웅거리며 겨울바람의 붉은 마음을 여러 번 곱씹고 있다//접히고 구부러지고 다시 펴지는 사이/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이 남았다/나는 그것을 안개의 미세한 떨림과/그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남긴 한 획의 연민이라고 쓴다//저녁이 식은 해를 안고 불의 심장 속으로 들어간다
―「매혹의 지도」 전문
그렇다면 자기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말에서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이고, 단 한 번도 감각하지 못한 생의 숨결에 온몸이 젖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홍일표 시인에게 시는 대상과의 '만남'이며 '젖음'이다.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즉 "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이며 "안개의 미세한 떨림"이자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남긴 한 획의 연민"(「매혹의 지도」)이다. 여기서 시인의 시가 시작된다. 그렇게 "맨 처음 진흙과 같은 표정으로" "나무 그림자에 불을 질러/꽃 없는 봄을 완성하듯"(「그림자의 문장」) 시인은 그림자의 문장을 완성한다.
■ 추천사
매혹(魅惑)이란 도깨비에게 홀린다는 뜻이니 『매혹의 지도』란 이매망량의 출몰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겠다. 왜 시인은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시인의 말')이라 적었을까? 첫째, 어떤 감각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합한다. "토막 난 철삿줄"이 "숨이 멎을 때까지 버둥거렸을/끝이 뾰족한 한 생애"('모태')인 이유다. 그러니 이 지도는 축척이 자유로운 지도. 둘째, 언어가 가닿지 못하는 어떤 절묘가 있다. "말의 머리를 비틀어 슬그머니 말을 넘어서는 당신의 수사학"(?뱀 이야기?)이란 손으로 잡아챈 명료가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다. 그러니 이 지도의 요철은 신출귀몰의 결과. 셋째, 한 마음이 다른 마음 위에 누울 때 생기는 어떤 지극함이 있다. "꽃잎"이 나누어 가진 "태양의 마음"('비상구')처럼, 복리이자처럼 증식하는 이심전심이다. 그러니 이 지도의 등고선은 마음의 심산유곡.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져 있으니, 실로 매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권혁웅ㆍ시인
홍일표 시인의 『매혹의 지도』는 시선의 낭만주의와 청각의 고전주의가 함께 사는 집이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집을 인문주의자가 드나드는 '잡동사니'들의 감각창고(warehouse)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는 눈앞의 장면과 "이면의 무늬"를 포개어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발생 순서를 역전시킨다. 자명한 것들에 대한 데생 대신 스푸마토를 통해 가능한 것들을 시각장에 어른거리게 함으로써 그는 집요한 낭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시선의 낙법'에서 한껏 풀어낸 감각을, 사물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고요히 듣는 시간 속으로 환수함으로써 그는 감각의 봉두난발을 단속하는 고전주의자가 된다. 시각적 출가와 청각적 귀환의 매혹적 지도 안에, 떠밀며 달래는 그의 고요한 집이 있다.
―조강석ㆍ문학평론가
<책속으로 추가>
시멘트 바닥에 나뒹구는 붉은 지렁이
몸을 꼬아보고 뒤집어보고
어쩌다 잘못 든 길
내 몸속으로 고물고물 지렁이 몇 마리 들어온다
가만히 앉아서
빗줄기를 거두는 마른 밭처럼
지렁이와 빗줄기
물로 빚은 노래의 다른 형식인 것
흙의 품을 향하는 동질의 슬픔인 것
구부러지고 끊어지면서 먼 길 가야 하는
토막 난 철삿줄을 본다
숨이 멎을 때까지 많이 버둥거렸을
끝이 뾰족한 한 생애를 본다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붉은 기호
탯줄 잘린 자리를 찾아가는 알몸의 빗줄기 같은
―「모태」 전문
탄성계수 높은 서정성으로 삶에 대한 사유를 시 속에 녹여온 홍일표 시인이 5년 만에 『매혹의 지도』(문예중앙시선016)로 돌아왔다. 시인은 스스로 "나는 골동품 같은 구름이나 기러기를 버린 지 오래"(「안개 통신」)라고 말하며, 지난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2007)과 단절된 색다른 면모와 진화된 시세계를 이번 시집에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홍일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풍부해진 감각의 층과 깊은 상상적 미감에서 끌어올린 언어로 "대상과의 깊은 교유"(「시인의 말」)를 매혹적으로 펼쳐나가며, 한편으로 시와 시인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전개한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다양한 감각으로 그려내고, "눈 감지 못한 잉걸불 같은 눈으로 밤을 사냥하"(「불 켜진 고양이」)며 시와 시 쓰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홍일표 시인에게 시(詩)란, 대상에 대한 무한한 '홀림'이며, "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과 "안개의 미세한 떨림"(「매혹의 지도」)을 마음의 지도에 그려 넣는 것이다. 이 시집 전반에서 그러한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권혁웅 시인)지니, 실로 "매혹의 지도"가 아닐 수 없다.
언어가 가닿지 못한,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
이번 시집에서 드러난 홍일표 시세계에 대해, 유성호 평론가는 "메시지 중심 코드에서 환유적 감각의 층을 풍부한 모호함으로 확산해내는 코드로 이월되고"(해설「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있다고 평한다. 즉 홍일표 시세계의 변화는 '감각'의 측면에 있다. 시인은 눈앞에 보이는 대상과 그 대상에서 촉발된 상상 속 "이면의 무늬"를 시 속에 부려놓는다. 그런 상상의 질서에 따라 감각과 사유를 재배열하는 마음의 기록이 홍일표의 시편들이다.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햇살들이 손수건만 한 경전을 펼쳐들기도 한다//땅속에서 캐낸 태양은 먹기 좋게 식어 있다/붉은 껍질만 잘 벗겨내면/달지 않은 수국 한 송이 꺼내/한 열흘 땅 위의 배고픈 그림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멀리서 온 바람이 수국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지나간다
―「수국에 이르다」 전문
실재가 아닌 끓어오르는 상상을 시편 곳곳에 부려놓으니, 그 언어에는 언어로써 다 표현될 수 없는 어떤 절묘한 지점이 있다. 그것은 "논리적 해명보다는 상상적 점화(點火)를 욕망함으로써 채택된 시적 수사학"(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이며 "말의 머리를 비틀어 슬그머니 말을 넘어서는 당신의 수사학"(「뱀 이야기」)이다. 이를 권혁웅 시인은 "손으로 잡아챈 명료가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라고 말한다.
이번 시집에는 이른바 경구 형식의 '창조적 은유(creative metaphor)'가 많이 활용되었다. "귀는 허기진 동굴"('콘서트')이나 "별은 하늘에 고용된 일용직 악사"('검은 사막') 같은 간명한 비유로부터, '수평선'을 두고 "바다의 입을 꿰맨 바느질 자국"('나는 수평선이 불안하다')이라거나 '저수지'를 두고 "온종일 글썽이는 눈망울"이나 "밀봉되었던 물의 살가죽이 갈라지고/이따금 새들이 우편엽서처럼 날아오르는 곳"('저수지')이라고 한 비유에 이르기까지, 흡사 잠언(箴言)을 떠올리게 하는 단정하고도 단호한 은유가 많이 구사되었다.
―유성호, 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 중에서
자기 기원과 시를 향한 무한한 탐색
"잠들지 못한 볼펜 끝에서/누군가의 검고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흘러나"(「불 켜진 고양이)」온다고 한다면, 그 누군가의 울음소리는 분명 시인 자신일 것이다. 홍일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기 기원에 대한 탐색을 통해 섬세한 자기 확인 과정"(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을 치러 나간다. 그래서 시편 곳곳에 시인은, 풍랑을 좇고 파도나 해일을 요리하는 고양이의 모습이나, "밤의 살을 뜯어 먹는"(「원시인」) 개의 모습으로 투영되어 나타난다. "바위의 눈 속에서 나는 바위이고, 공기의 눈에 나는 물렁물렁한 공기"(「원시인」)이듯 시인은 스스로 자기 기원을 탐색하며, 때로는 바위와 공기처럼 순수한 물질이 되고자 욕망한다. 시인은 "내가 희미해질수록/나는 정직한 물질이 된다"(「원시인」)고 말한다. 바위와 공기처럼.
온종일 들리지 않는 그 여자의 노래 속에서 뒹굴다가/머뭇거리는 안개의 살을 만져보는데/손발이 없다 얼굴은 뭉개져 소리가 오가던 길도 지워져 있다//술잔 밖은 언제나 에로틱하거나 우아한 죽음을 지향한다/아주 단순하게 바람이 불고/비가 내리다가 자주 생각의 허리를 부러뜨려 잃어버린 바늘을 찾기도 한다/예민해진 가을숲에서 부러진 빗줄기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만 리 밖에서 울며 걸어오던 비가 어제 죽은 허공의 등줄기를 적신다/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저곳/빈 동굴은 웅웅거리며 겨울바람의 붉은 마음을 여러 번 곱씹고 있다//접히고 구부러지고 다시 펴지는 사이/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이 남았다/나는 그것을 안개의 미세한 떨림과/그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남긴 한 획의 연민이라고 쓴다//저녁이 식은 해를 안고 불의 심장 속으로 들어간다
―「매혹의 지도」 전문
그렇다면 자기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말에서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이고, 단 한 번도 감각하지 못한 생의 숨결에 온몸이 젖는 것"이라고 밝혔듯이, 홍일표 시인에게 시는 대상과의 '만남'이며 '젖음'이다.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즉 "마음의 뼈에 유리잔의 실금처럼 풀여치가 다녀간 흔적"이며 "안개의 미세한 떨림"이자 "여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남긴 한 획의 연민"(「매혹의 지도」)이다. 여기서 시인의 시가 시작된다. 그렇게 "맨 처음 진흙과 같은 표정으로" "나무 그림자에 불을 질러/꽃 없는 봄을 완성하듯"(「그림자의 문장」) 시인은 그림자의 문장을 완성한다.
■ 추천사
매혹(魅惑)이란 도깨비에게 홀린다는 뜻이니 『매혹의 지도』란 이매망량의 출몰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겠다. 왜 시인은 "대상과의 깊은 교유는 곧 귀신을 만나는 일"('시인의 말')이라 적었을까? 첫째, 어떤 감각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통합한다. "토막 난 철삿줄"이 "숨이 멎을 때까지 버둥거렸을/끝이 뾰족한 한 생애"('모태')인 이유다. 그러니 이 지도는 축척이 자유로운 지도. 둘째, 언어가 가닿지 못하는 어떤 절묘가 있다. "말의 머리를 비틀어 슬그머니 말을 넘어서는 당신의 수사학"(?뱀 이야기?)이란 손으로 잡아챈 명료가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신비다. 그러니 이 지도의 요철은 신출귀몰의 결과. 셋째, 한 마음이 다른 마음 위에 누울 때 생기는 어떤 지극함이 있다. "꽃잎"이 나누어 가진 "태양의 마음"('비상구')처럼, 복리이자처럼 증식하는 이심전심이다. 그러니 이 지도의 등고선은 마음의 심산유곡. 감각과 수사와 서정이 경계 없이 펼쳐져 있으니, 실로 매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권혁웅ㆍ시인
홍일표 시인의 『매혹의 지도』는 시선의 낭만주의와 청각의 고전주의가 함께 사는 집이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집을 인문주의자가 드나드는 '잡동사니'들의 감각창고(warehouse)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는 눈앞의 장면과 "이면의 무늬"를 포개어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발생 순서를 역전시킨다. 자명한 것들에 대한 데생 대신 스푸마토를 통해 가능한 것들을 시각장에 어른거리게 함으로써 그는 집요한 낭만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시선의 낙법'에서 한껏 풀어낸 감각을, 사물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고요히 듣는 시간 속으로 환수함으로써 그는 감각의 봉두난발을 단속하는 고전주의자가 된다. 시각적 출가와 청각적 귀환의 매혹적 지도 안에, 떠밀며 달래는 그의 고요한 집이 있다.
―조강석ㆍ문학평론가
<책속으로 추가>
시멘트 바닥에 나뒹구는 붉은 지렁이
몸을 꼬아보고 뒤집어보고
어쩌다 잘못 든 길
내 몸속으로 고물고물 지렁이 몇 마리 들어온다
가만히 앉아서
빗줄기를 거두는 마른 밭처럼
지렁이와 빗줄기
물로 빚은 노래의 다른 형식인 것
흙의 품을 향하는 동질의 슬픔인 것
구부러지고 끊어지면서 먼 길 가야 하는
토막 난 철삿줄을 본다
숨이 멎을 때까지 많이 버둥거렸을
끝이 뾰족한 한 생애를 본다
그냥 돌아서지 못하고 다시 들여다보는
붉은 기호
탯줄 잘린 자리를 찾아가는 알몸의 빗줄기 같은
―「모태」 전문
목차
목차
1부
수국에 이르다
저녁의 표정
무언극
이면의 무늬
모태
비상구
정전
원시인
뱀 이야기
너무 질긴 저녁
달항아리와 까마귀
눈사람
불 켜진 고양이
풍향계
안개 통신
매혹의 지도
2부
콘서트
역광
나는 수평선이 불안하다
비디오
모란 날다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
의자氏의 하루
역사의 방법
혁띠와 뱀의 습성
텍스트
그림자 미술관
달빛 사용 설명서
위독한 연애
힐끗,
우주선
거미들
3부
독거
실종
나무 요리
무거운 병
없는 손
무거운 집
새의 행로
바퀴벌레 H씨의 행방
꽃 피는 발
늙은 남자의 휘파람
검은 사막
유령의 시간
회색의 눈
낙법
새의 기원
껌
물고기의 발자국
저수지
4부
시간의 영역
까마귀 전사
거울의 식성
418호
위험한 풍경
유리창
콜럼버스를 읽는 밤
누룽지와 박쥐
삐걱거림에 대하여
그림자 재고 정리
바퀴벌레를 읽다
나는 쥐구멍과 통화하고 싶다
시계를 먹는 고양이
명암의 방식
풍경의 질서
검은 숲
그림자의 문장
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ㆍ유성호
수국에 이르다
저녁의 표정
무언극
이면의 무늬
모태
비상구
정전
원시인
뱀 이야기
너무 질긴 저녁
달항아리와 까마귀
눈사람
불 켜진 고양이
풍향계
안개 통신
매혹의 지도
2부
콘서트
역광
나는 수평선이 불안하다
비디오
모란 날다
고양이와 냉장고의 연애
의자氏의 하루
역사의 방법
혁띠와 뱀의 습성
텍스트
그림자 미술관
달빛 사용 설명서
위독한 연애
힐끗,
우주선
거미들
3부
독거
실종
나무 요리
무거운 병
없는 손
무거운 집
새의 행로
바퀴벌레 H씨의 행방
꽃 피는 발
늙은 남자의 휘파람
검은 사막
유령의 시간
회색의 눈
낙법
새의 기원
껌
물고기의 발자국
저수지
4부
시간의 영역
까마귀 전사
거울의 식성
418호
위험한 풍경
유리창
콜럼버스를 읽는 밤
누룽지와 박쥐
삐걱거림에 대하여
그림자 재고 정리
바퀴벌레를 읽다
나는 쥐구멍과 통화하고 싶다
시계를 먹는 고양이
명암의 방식
풍경의 질서
검은 숲
그림자의 문장
해설 전회와 진화와 귀환의 감각ㆍ유성호
저자
저자
홍일표
저자 홍일표는 1958년 출생하여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 『살바도르 달리풍의 낮달』(2007),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2012), 산문집 『조선시대 인물 기행』(2005)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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