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캣
자유분방한 언어로 유쾌한 사유를 펼쳐온 정익진 시인의 새 시집 『스캣』. 기이하고도 유머러스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익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조작된 기억과 이미지, 언어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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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자유분방한 언어로 유쾌한 사유를 펼쳐온 정익진 시인의 새 시집 『스캣』(문예중앙시선 033)이 출간됐다.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자유로워지고 유쾌해지는 시"(김상미 시인), "보디빌더의 몸, 헬스클럽의 시"(김언 시인)라는 평을 들으며 기이하고도 유머러스한 시 세계를 구축해온 정익진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조작된 기억과 이미지, 언어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다.
정익진이 바라보는 세계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얼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재현되는 큐브의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신기루가 사라지고 난 뒤"나 "사자에게 물려 가기 직전"의 풍경이 겹쳐지고, "책 밖으로 천천히 지느러미를 저으며/지나가는 물고기들"과 같은 이질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해설을 쓴 조재룡 평론가는 "(정익진 시인은) 어떤 사실을 확인하러 모험의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후차적으로 주어질 저 미지가 뿜어내는 공포를 마다하지 않"는다며 "오로지 실현 불가능한 상태들을 이어 붙이는 작업에 의존해서만 현실을 재구성해"내고자 한다고 평한다. 정익진 시인이 그러한 구성적 작법으로 발생시킨 '어긋남의 나열'을 전체로 조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열리는 인식의 가능성을 엿보게 된다.
스캣, 말더듬이의 흥얼거림
골반과 골반이 함께 튀는군, 튄다, 튀어, 튀튜튀튜 튀밥밥……
날 더 튀겨 줘, 날 먹어 줘, 날, 날로 먹어,
한 번만 더 오우 오우달링 슈슈룹디들라
또 누군가의……
미쳐가는……관자놀이를 관통하는…… 비명,
늙은 아랍여인들의 혓바닥 굴리는 소리, 와할랴하르르랴랴?
―「스캣」 부분
시집 『스캣』을 펼치면 가장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이 바로 말줄임표이다. 이 '……'는 시집 전체를 지배하는 침묵인 동시에 음률이 되려는 하나의 흥얼거림이다. 표제작의 제목이기도 한 '스캣'은 재즈 보컬리스트가 가사 대신에 뜻 없는 말로 즉흥적인 프레이즈를 만들면서 부르는 창법을 뜻한다. "쉬쉬쉬괜찮아쉬쉬 브와브와브와예 오키프 깊이 더 깊이 안아줘, 사랑해…… 사랑해 푸르스름한 푸르디시린"과 같이 「스캣」의 저 말줄임표들은 기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되, 그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흩어지려는 언어들의 아우성을 돕는다. 한편 「청춘」과 같은 시에서는 "서점에서 최신 영화 잡지…… M을 뒤적이다/40년가량 잊고 있었던 그녀를 0.001초 만에 알아보았다/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녀가…… 얼마나 반가웠던지/아직 살아 있어 고맙다고 말할 뻔했다"라는 부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덧없이 흘러가버린 시간들에 대한 침묵의 관조로 활용된다. 이 침묵은 마침표와 같은 문장의 매듭이 아닌, 이어질 말을 호출한다는 점에서 순간의 침묵이며 곧 리듬이다. 한편 말줄임표는 낯선 이미지로 이루어진 문장들 사이에 놓인 비밀의 끈이 되기도 한다.
……더욱 독해진……
……불타는 안경이……
……폭설이었다……
……우산이 먹어버린……
― 「도마뱀」 부분
이 시에서 말줄임표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려져 나간 문장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원래 있었던 문장을 감추는 비밀의 기호가 되지만 동시에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며 해독을 가능케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즉 말줄임표는 암호인 동시에 열쇠가 되는 부호인 셈이다. 시인은 "(나의 시가) 정체불명의 소리이면 더욱 좋겠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어째서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조재룡 평론가는 답한다. "(시인이) 비현실적인 풍경들의 묘사를 통해, 현실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적 상태로 남겨놓거나, 과거의 어느 시점에 붙들려, 그때 차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자유롭게(다시 말해, 작위적으로) 표현해봄으로써, 현실을 여전히 당도해야 할 무엇, 확정되지 않은 무엇, 유보해야 할 무엇, 끊임없이 반추하고 성찰하고 추정해야만 비로소 다가갈 수 있는 불투명한 대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익진에게 세계는 확정된 사실들의 세계가 아니다. 무의식과도 같은 미지의 것들, 결코 확정되지 않을 의미들이 다만 '프리즘'에 분사되는 무지갯빛과 같이 펼쳐지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정익진 시인의 현실이 다만 조망하는 대상으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줄임표는 때로 말로 하기 어려운 현실의 장애를 더듬더듬 극복하려는 말더듬이의 의지가 되기도 한다. 시 「서론, 본론 그리고 평행봉」에서 시인은 이렇게 쓴다. "그러니까 본론은 피부를 탱탱하게 하고/생활에 탄력을 준단 말이지./팅팅, 탱탱, 사랑 주고, 눈물도 주고…… 이봐, 그렇다고/너무 쉽게 튕겨나가서는 안 돼." 이 말줄임표는 현실이 버겁더라도 이대로 끝내지는 않겠다는 결연한 간격이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두 날개를 펼쳐봐. 우선 멱살을 잡고 보는 거야./힘들겠지만 해보는 거야. 힘들지 않으면 그게/사는 거야? 하나둘, 하나둘, 두 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려./중심을 잡고 세상과 수평을 유지하는 거야."라는 구절은 읽는 이에게 묵직한 한 방을 선사한다.
책속으로 추가
팅, 탱, 경쾌하게 오가는 셔틀콕 소리에
겨드랑이 속 접어두었던 날개가 움찔한다.
끼리끼리 한 조를 이루어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팅, 탱…… 어, 어라, 이 친구,
그것도 하나 못 받아쳐? 물 좋은 시절 다 지나갔군.
그러니까 본론은 피부를 탱탱하게 하고
생활에 탄력을 준단 말이지.
팅탱, 팅탱, 사랑 주고, 눈물도 주고…… 이봐, 그렇다고
너무 쉽게 튕겨나서는 안 돼.
누군가와 이별을 할 때까지 훌라후프를 돌려보는 거야.
자, 돌려봐. 더 세게, 그렇지 계속해서, 힘내, 더, 더,
봐, 헬리콥터처럼 떠오르잖아.
너도 가끔씩은 뜨고 싶을 때가 있잖아.
결론은 평행봉이야. 겨드랑이 속으로 오그라드는
두 날개를 펼쳐봐. 우선 멱살을 잡고 보는 거야.
힘들겠지만 해보는 거야. 힘들지 않으면 그게
사는 거야? 하나둘, 하나둘, 두 다리를 힘차게 들어 올려.
중심을 잡고 세상과 수평을 유지하는 거야.
마음 뿌듯해지는군.
우, 이 근육 좀 봐. 탱탱하지.
― 「서론, 본론 그리고 평행봉」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한 토막은 변기의 극장 속으로…… 한 토막은 지붕 위의 날개 위에서
또 다른 한 토막은 내 새끼손가락에서
꼼지락거린다, 꼼질꼼질
실내악 연주가 끝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흩어져버린 발자국들과 함께
앞뒤가 토막나버린 구절들;
……파아노를 메고……
……향수도 없이……
……접시 위에 떨어진 그 여자의……
……꼬리를……쓰러져……
……더욱 독해진……
……불타는 안경이……
……폭설이었다……
……우산이 먹어버린……
……곤충에 매달려……
……물속으로……에서……
나머지 구절은 다 죽거나 우물에 빠지거나,
발가락에서 다시 꿈틀거린다
변기 속에서 두 개의 머리가 떠오른다
침대 위에서 몸통이 지그재그 기어 다니고
내 혓바닥에서 깃발을 흔들어대는 꼬리
한 토막은 절망에 두고
한 토막은 남부민동에서…… 또 다른
한 토막은 습관처럼…… 돌고, 돌아
아미타는 관세음을 낳고 관세음은 석가를 낳고
석가는…… 지장을 낳고…… 낳고
―「도마뱀」
얼굴 하나가 꿈속에 잠겨 있는
그 시각, 다른 얼굴 몇몇은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깨어난다.
그들 얼굴이 여름의
빨랫줄에서 말라가는 동안
다른 얼굴은 바다 깊은 곳에서
생각에 잠긴다.
우리들 얼굴 속의 또 다른 얼굴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햇볕 때문에 더욱 침울했던 얼굴들,
얼굴은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얼굴에서 총알이 발사된다.
얼굴에서 수류탄이 날아온다.
얼굴 속에 가득한 무관심이
다른 얼굴들에 칼자국을 낸다.
길바닥에 떨어진 탄피와
유리 파편, 그리고 살과 뼈들
바람이 불고 마른 얼굴 껍데기가 굴러간다.
바닷물이 빠지고 퉁퉁 불은
얼굴들이 눈을 뜬다.
― 「얼굴의 반격」
손바닥
혓바닥
발바닥
허벅지가 각각 아홉 개
아홉 개는 아홉 개의 시간을 가지고
여섯 개는 여섯 개의 심장
여기에는 '여기에'가 아홉 개 있지요
네 개는 아홉 개지요, 여기가 거긴지 알 수 있겠어요?
다섯 개는 아홉 개지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어요
나와 당신의 뼈를 합하면 몇 개 일까요?
위로 가도, 앞으로, 뒤로 가도 아홉 개지요
세 발자국, 네 발자국 절벽에서 떨어지면 너는 날아오르죠
여섯 발자국에서, 영혼은 빠져나가죠
한 발자국 남았어요
돌 하나 세워두고 부서질 때까지 쳐다보세요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손바닥으로 비틀고
혓바닥에 녹음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며
허벅지가 터지도록
발바닥이 닳도록
―「큐브」
목차
목차
마지막 장면
개 조심
철거 지역
외식업계
거울
합창단
비트겐슈타인
거인
푸줏간
핸드 프린팅
좌석 배치도
낙엽
오전의 탄력으로 펼쳐진 오후
오공본드
두상
캠프파이어
여행가방
청춘
두터운, 툭 까진
Q&A
서론, 본론 그리고 평행봉
스캣
2부
도마뱀
찰리 브라운, 왈왈
구름 둥둥
수정된 문장
염소 흉내를 내다
사과의 기분
나는 커서,
가출
메두사
약속
북 카페
달콤함과 로맨틱을 제거한 빵
저울의 시간
훌라후프 생각
구름 과자
요트와 같은 기분이 들 때까지
천국으로 가는 계단
하, 허리가 없다
사과 고르기
after shave
적성검사
축, 개업
투어 가이드
3부
훼손
111번 체조
식빵
큐브
프리즘
세 개의 섬
얼굴의 반격
꿈과 해석
얼룩들
이명
생각보다 긴 치마
이런 분위기
접속사의 체조
선인장과 함께, 더웠던 시절
첼로가 뱉어낸 不和
목젖의 이유
해설·어떤 작위의 세계_조재룡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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