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계집 4(한국 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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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집》 번역의 의의
창계는 17세기 후반 우리나라 명현(名賢)의 한 사람으로 당시 조야(朝野)의 청의(淸議)를 대표하였고, 그의 사상과 이론은 성리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27권 14책의 많은 논저를 남겼다. 이 시기 일반 학자들의 문집에 비하여 양적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집의 내용이다.
이 책은 한 구도자로서 경전(經典)의 연구와 심신 수양에 관해서 진지한 본의탐구와 엄숙한 자기성찰로 일관하였고 나아가 우국(憂國)의 충정에서 탁월하고도 간독(懇篤)한 경세적(經世的)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꽉 차 있다.
이러한 창계의 정신 유산이 오늘날 세상에 보급되지 못하고 오직 몇몇 사람들의 보장(寶藏)으로만 이어져 전해 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이번에 《창계집》을 고전번역총서의 하나로 출판함으로써 학계의 연구자와 일반인들에게 창계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창계는 17세기 후반 우리나라 명현(名賢)의 한 사람으로 당시 조야(朝野)의 청의(淸議)를 대표하였고, 그의 사상과 이론은 성리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그는 27권 14책의 많은 논저를 남겼다. 이 시기 일반 학자들의 문집에 비하여 양적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집의 내용이다.
이 책은 한 구도자로서 경전(經典)의 연구와 심신 수양에 관해서 진지한 본의탐구와 엄숙한 자기성찰로 일관하였고 나아가 우국(憂國)의 충정에서 탁월하고도 간독(懇篤)한 경세적(經世的)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꽉 차 있다.
이러한 창계의 정신 유산이 오늘날 세상에 보급되지 못하고 오직 몇몇 사람들의 보장(寶藏)으로만 이어져 전해 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이번에 《창계집》을 고전번역총서의 하나로 출판함으로써 학계의 연구자와 일반인들에게 창계의 사상과 철학을 연구하고 계승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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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도자(求道者)로서의 삶을 추구한 창계의 생애
창계(滄溪) 임영(林泳)은 1649년(인조27) 서울 외가에서 태어나 1696년(숙종22)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15, 6세에 이미 문사(文辭)가 성취되어 유창한 한문 문장을 자유로이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장지학(詞章之學)에 만족하지 않고 경학(經學)을 바탕으로 철리(哲理)를 체득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17세에 부친의 친구인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을 서울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학문의 방향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관재의 권유로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1세에 부친을 따라 함흥(咸興) 관아에 가 있으면서, 당시 감사로 있던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과 치열하게 경사를 토론하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창계는 학문 면에서나 정사 면에서 박세채·남구만과 평생 남다른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창계는 18세 때인 1666년(현종7) 생원시에서 장원하였고 23세엔 문과에 합격하였지만, 그의 뜻은 부귀영달에 있지 않고 오로지 학문의 세계에 침잠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이 대립하는 알력으로 중앙 정계가 매우 불안정하였는데, 예송문제(禮訟問題)로 서인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서인의 가계에 속한 창계는 자연 출사할 여건이 좋지 못하여 31세까지 강원도 통천(通川),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 가에 우거하면서 경(經)을 연마하고 도(道)를 체득하며 세월을 보냈다.
32세인 1680년(숙종6)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창계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병조?간원?홍문관 등의 자리에 계속 발령이 난 것이다. 창계는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경연(經筵)에 나아가 여러 차례 학문의 도와 시정의 득실을 논하였다. 그러나 35세에서 38세에 이르는 동안 연이어 부모상을 당한 후에는 벼슬길에 더욱 뜻이 없어, 여러 직임의 교지가 내렸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리고 40세에 고향인 나주(羅州)의 회진(會津)에 정착하였다.
서인 당국자들은 창계를 계속 조정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이조 참의, 전라도 관찰사 등을 제수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일시 물러나자 창계는 전원에서의 생활이 굳어지는 듯하더니 1694년 '갑술경화(甲戌更化)'로 조정이 재차 번복되어, 다시 여러 직임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창계는 오랜 지병으로 관직에 나갈 형편이 못 되었다. 창계는 숙종의 각별한 총애와 조정 동료들의 융숭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결국 자기의 힘으로 국사를 바로잡아 볼 수 없었고, 병은 날로 깊어져 마침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실록》에는 창계에 대해 "사화(詞華)를 싫어하고 정학(正學)에 뜻을 두어, 경전을 크게 궁구하였고, 경연에서의 강설(講說)이 정박(精博)하여 왕의 학문적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우리 조선의 선배 명류들이 대체로 문을 통해 도에 들어갔는데, 그 타고난 성품의 순후함이나 지취(志趣)의 심원함이나 학식의 평실(平實)함이나 언의(言議)의 공정함에 있어서 임영은 실로 일인자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창계(滄溪) 임영(林泳)은 1649년(인조27) 서울 외가에서 태어나 1696년(숙종22)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15, 6세에 이미 문사(文辭)가 성취되어 유창한 한문 문장을 자유로이 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장지학(詞章之學)에 만족하지 않고 경학(經學)을 바탕으로 철리(哲理)를 체득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17세에 부친의 친구인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을 서울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학문의 방향을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관재의 권유로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1세에 부친을 따라 함흥(咸興) 관아에 가 있으면서, 당시 감사로 있던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과 치열하게 경사를 토론하기도 하였다. 이로부터 창계는 학문 면에서나 정사 면에서 박세채·남구만과 평생 남다른 사이로 지내게 되었다.
창계는 18세 때인 1666년(현종7) 생원시에서 장원하였고 23세엔 문과에 합격하였지만, 그의 뜻은 부귀영달에 있지 않고 오로지 학문의 세계에 침잠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 남인(南人)과 서인(西人)이 대립하는 알력으로 중앙 정계가 매우 불안정하였는데, 예송문제(禮訟問題)로 서인이 궁지에 몰려 있었다. 서인의 가계에 속한 창계는 자연 출사할 여건이 좋지 못하여 31세까지 강원도 통천(通川), 부여(扶餘) 백마강(白馬江) 가에 우거하면서 경(經)을 연마하고 도(道)를 체득하며 세월을 보냈다.
32세인 1680년(숙종6)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창계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병조?간원?홍문관 등의 자리에 계속 발령이 난 것이다. 창계는 처음에는 사양하다가 경연(經筵)에 나아가 여러 차례 학문의 도와 시정의 득실을 논하였다. 그러나 35세에서 38세에 이르는 동안 연이어 부모상을 당한 후에는 벼슬길에 더욱 뜻이 없어, 여러 직임의 교지가 내렸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그리고 40세에 고향인 나주(羅州)의 회진(會津)에 정착하였다.
서인 당국자들은 창계를 계속 조정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이조 참의, 전라도 관찰사 등을 제수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서인이 일시 물러나자 창계는 전원에서의 생활이 굳어지는 듯하더니 1694년 '갑술경화(甲戌更化)'로 조정이 재차 번복되어, 다시 여러 직임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때 이미 창계는 오랜 지병으로 관직에 나갈 형편이 못 되었다. 창계는 숙종의 각별한 총애와 조정 동료들의 융숭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결국 자기의 힘으로 국사를 바로잡아 볼 수 없었고, 병은 날로 깊어져 마침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실록》에는 창계에 대해 "사화(詞華)를 싫어하고 정학(正學)에 뜻을 두어, 경전을 크게 궁구하였고, 경연에서의 강설(講說)이 정박(精博)하여 왕의 학문적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우리 조선의 선배 명류들이 대체로 문을 통해 도에 들어갔는데, 그 타고난 성품의 순후함이나 지취(志趣)의 심원함이나 학식의 평실(平實)함이나 언의(言議)의 공정함에 있어서 임영은 실로 일인자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목차
목차
일러두기ㆍ4
창계집 제11권
서書
최여화 석정 께 답함 무오년 答崔汝和 錫鼎 戊午ㆍ15
최여화께 답함 신유년 答崔汝和 辛酉ㆍ18
최여화께 답함 갑자년 答崔汝和 甲子ㆍ22
최여화께 답함 을축년 答崔汝和 乙丑ㆍ25
최여화께 드림 병인년 與崔汝和 丙寅ㆍ28
최여화께 드림 정묘년 與崔汝和 丁卯ㆍ32
최여화께 답함 임신년 答崔汝和 壬申ㆍ36
별지 別紙ㆍ39
최여화께 답함 갑술년 答崔汝和 甲戌ㆍ41
신공헌 완 께 드림 임술년 與申公獻 琓 壬戌ㆍ43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45
신공헌께 답함 계해년 答申公獻 癸亥ㆍ47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49
신공헌께 답함 갑자년 答申公獻 甲子ㆍ51
신공헌께 답함 을축년 答申公獻 乙丑ㆍ56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58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61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63
신공헌께 답함 병인년 答申公獻 丙寅ㆍ66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68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70
신공헌께 답함 정묘년 答申公獻 丁卯ㆍ71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73
신공헌께 드림 무진년 與申公獻 戊辰ㆍ76
오관지 도일 께 답함 계해년 答吳貫之 道一 癸亥ㆍ77
오관지께 답함 을축년 答吳貫之 乙丑ㆍ80
오관지께 답함 무진년 答吳貫之 戊辰ㆍ83
오관지께 드림 기사년 與吳貫之 己巳ㆍ85
오관지께 드림 임신년 與吳貫之 壬申ㆍ96
오관지께 답함 계유년 答吳貫之 癸酉ㆍ99
창계집 제12권
서書
김중화 창협 께 드림 경신년 與金仲和 昌協 庚申ㆍ111
김중화께 답함 을축년 答金仲和 乙丑ㆍ113
김중화께 답함 정묘년 答金仲和 丁卯ㆍ117
김중화께 답함 答金仲和ㆍ123
김중화께 답함 무진년 答金仲和 戊辰ㆍ127
김중화께 드림 기사년 與金仲和 己巳ㆍ129
김중화께 답함 경오년 答金仲和 庚午ㆍ132
김중화께 답함 임신년 答金仲和 壬申ㆍ136
이동보 희조 께 답함 경술년 答李同甫 喜朝 庚戌ㆍ14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43
이동보께 답함 신해년 答李同甫 辛亥ㆍ14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48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5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52
이동보께 답함 임자년 答李同甫 壬子ㆍ156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59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63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5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8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72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74
이동보께 답함 계축년 答李同甫 癸丑ㆍ176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80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83
이동보께 답함 갑인년 答李同甫 甲寅ㆍ185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8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7
이동보께 답함 을묘년 答李同甫 乙卯ㆍ198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3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5
이동보께 답함 병진년 答李同甫 丙辰ㆍ207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1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14
이동보께 답함 무오년 答李同甫 戊午ㆍ216
창계집 제13권
서書
이동보께 답한 별지 答李同甫別紙ㆍ22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2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2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2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3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33
이동보께 드림 기미년 與李同甫 己未ㆍ241
이동보께 답함 경신년 答李同甫 庚申ㆍ24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4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4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5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52
이동보께 드림 신유년 與李同甫 辛酉ㆍ254
이동보께 드림 임술년 與李同甫 壬戌ㆍ256
이동보께 답함 계해년 答李同甫 癸亥ㆍ26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62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7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74
이동보께 답함 갑자년 答李同甫 甲子ㆍ277
별지 別紙ㆍ279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82
이동보께 답함 을축년 答李同甫 乙丑ㆍ284
이동보께 답함 병인년 答李同甫 丙寅ㆍ28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89
이동보께 드림 정묘년 與李同甫 丁卯ㆍ292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99
이동보께 답함 무진년 答李同甫 戊辰ㆍ303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30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307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31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312
이동보께 드림 기사년 與李同甫 己巳ㆍ316
이동보께 답함 경오년 答李同甫 庚午ㆍ318
이동보께 드림 임신년 與李同甫 壬申ㆍ323
이동보께 답함 계유년 答李同甫 癸酉ㆍ330
창계집 제14권
서書
박대숙 심 께 답함 경신년 答朴大叔 ㆍ 庚申ㆍ335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38
박대숙께 답함 계해년 答朴大叔 癸亥ㆍ340
박대숙께 드림 與朴大叔ㆍ343
박대숙께 답함 갑자년 答朴大叔 甲子ㆍ346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50
박대숙께 드림 병인년 與朴大叔 丙寅ㆍ354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57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61
별지 別紙ㆍ364
박대숙께 답함 정묘년 答朴大叔 丁卯ㆍ367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71
별지 別紙ㆍ375
박대숙께 답함 계유년 答朴大叔 癸酉ㆍ380
이군보 세필 께 답함 병인년 答李君輔 世弼 丙寅ㆍ387
이군보께 답함 答李君輔ㆍ389
이군보께 답한 별지 정묘년 答李君輔別紙 丁卯ㆍ392
남자문 학명 께 답함 신해년 答南子聞 鶴鳴 辛亥ㆍ396
남자문께 답한 별지 答南子聞別紙ㆍ397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03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4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6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8
남자문께 답함 갑인년 答南子聞 甲寅ㆍ410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2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3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5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6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7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9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21
남자문께 답함 계해년 答南子聞 癸亥ㆍ425
남자문께 답함 을축년 答南子聞 乙丑ㆍ428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0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3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5
남자문께 드림 무진년 與南子聞 戊辰ㆍ436
이백길 사명 께 답함 경신년 答李伯吉 師命 庚申ㆍ438
이백길께 드림 정묘년 與李伯吉 丁卯ㆍ442
이백길께 드림 무진년 與李伯吉 戊辰ㆍ445
창계집 제11권
서書
최여화 석정 께 답함 무오년 答崔汝和 錫鼎 戊午ㆍ15
최여화께 답함 신유년 答崔汝和 辛酉ㆍ18
최여화께 답함 갑자년 答崔汝和 甲子ㆍ22
최여화께 답함 을축년 答崔汝和 乙丑ㆍ25
최여화께 드림 병인년 與崔汝和 丙寅ㆍ28
최여화께 드림 정묘년 與崔汝和 丁卯ㆍ32
최여화께 답함 임신년 答崔汝和 壬申ㆍ36
별지 別紙ㆍ39
최여화께 답함 갑술년 答崔汝和 甲戌ㆍ41
신공헌 완 께 드림 임술년 與申公獻 琓 壬戌ㆍ43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45
신공헌께 답함 계해년 答申公獻 癸亥ㆍ47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49
신공헌께 답함 갑자년 答申公獻 甲子ㆍ51
신공헌께 답함 을축년 答申公獻 乙丑ㆍ56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58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61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63
신공헌께 답함 병인년 答申公獻 丙寅ㆍ66
신공헌께 드림 與申公獻ㆍ68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70
신공헌께 답함 정묘년 答申公獻 丁卯ㆍ71
신공헌께 답함 答申公獻ㆍ73
신공헌께 드림 무진년 與申公獻 戊辰ㆍ76
오관지 도일 께 답함 계해년 答吳貫之 道一 癸亥ㆍ77
오관지께 답함 을축년 答吳貫之 乙丑ㆍ80
오관지께 답함 무진년 答吳貫之 戊辰ㆍ83
오관지께 드림 기사년 與吳貫之 己巳ㆍ85
오관지께 드림 임신년 與吳貫之 壬申ㆍ96
오관지께 답함 계유년 答吳貫之 癸酉ㆍ99
창계집 제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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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화 창협 께 드림 경신년 與金仲和 昌協 庚申ㆍ111
김중화께 답함 을축년 答金仲和 乙丑ㆍ113
김중화께 답함 정묘년 答金仲和 丁卯ㆍ117
김중화께 답함 答金仲和ㆍ123
김중화께 답함 무진년 答金仲和 戊辰ㆍ127
김중화께 드림 기사년 與金仲和 己巳ㆍ129
김중화께 답함 경오년 答金仲和 庚午ㆍ132
김중화께 답함 임신년 答金仲和 壬申ㆍ136
이동보 희조 께 답함 경술년 答李同甫 喜朝 庚戌ㆍ14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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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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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52
이동보께 답함 임자년 答李同甫 壬子ㆍ156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59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63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5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68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72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74
이동보께 답함 계축년 答李同甫 癸丑ㆍ176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80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83
이동보께 답함 갑인년 答李同甫 甲寅ㆍ185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18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197
이동보께 답함 을묘년 答李同甫 乙卯ㆍ198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3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05
이동보께 답함 병진년 答李同甫 丙辰ㆍ207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1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14
이동보께 답함 무오년 答李同甫 戊午ㆍ216
창계집 제13권
서書
이동보께 답한 별지 答李同甫別紙ㆍ221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2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2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2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3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33
이동보께 드림 기미년 與李同甫 己未ㆍ241
이동보께 답함 경신년 答李同甫 庚申ㆍ24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4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49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251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52
이동보께 드림 신유년 與李同甫 辛酉ㆍ254
이동보께 드림 임술년 與李同甫 壬戌ㆍ256
이동보께 답함 계해년 答李同甫 癸亥ㆍ26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62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7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74
이동보께 답함 갑자년 答李同甫 甲子ㆍ277
별지 別紙ㆍ279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82
이동보께 답함 을축년 答李同甫 乙丑ㆍ284
이동보께 답함 병인년 答李同甫 丙寅ㆍ287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89
이동보께 드림 정묘년 與李同甫 丁卯ㆍ292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299
이동보께 답함 무진년 答李同甫 戊辰ㆍ303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305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307
이동보께 드림 與李同甫ㆍ310
이동보께 답함 答李同甫ㆍ312
이동보께 드림 기사년 與李同甫 己巳ㆍ316
이동보께 답함 경오년 答李同甫 庚午ㆍ318
이동보께 드림 임신년 與李同甫 壬申ㆍ323
이동보께 답함 계유년 答李同甫 癸酉ㆍ330
창계집 제14권
서書
박대숙 심 께 답함 경신년 答朴大叔 ㆍ 庚申ㆍ335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38
박대숙께 답함 계해년 答朴大叔 癸亥ㆍ340
박대숙께 드림 與朴大叔ㆍ343
박대숙께 답함 갑자년 答朴大叔 甲子ㆍ346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50
박대숙께 드림 병인년 與朴大叔 丙寅ㆍ354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57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61
별지 別紙ㆍ364
박대숙께 답함 정묘년 答朴大叔 丁卯ㆍ367
박대숙께 답함 答朴大叔ㆍ371
별지 別紙ㆍ375
박대숙께 답함 계유년 答朴大叔 癸酉ㆍ380
이군보 세필 께 답함 병인년 答李君輔 世弼 丙寅ㆍ387
이군보께 답함 答李君輔ㆍ389
이군보께 답한 별지 정묘년 答李君輔別紙 丁卯ㆍ392
남자문 학명 께 답함 신해년 答南子聞 鶴鳴 辛亥ㆍ396
남자문께 답한 별지 答南子聞別紙ㆍ397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03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4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6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08
남자문께 답함 갑인년 答南子聞 甲寅ㆍ410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2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3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5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6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17
남자문께 답함 答南子聞ㆍ419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21
남자문께 답함 계해년 答南子聞 癸亥ㆍ425
남자문께 답함 을축년 答南子聞 乙丑ㆍ428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0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3
남자문께 드림 與南子聞ㆍ435
남자문께 드림 무진년 與南子聞 戊辰ㆍ436
이백길 사명 께 답함 경신년 答李伯吉 師命 庚申ㆍ438
이백길께 드림 정묘년 與李伯吉 丁卯ㆍ442
이백길께 드림 무진년 與李伯吉 戊辰ㆍ445
저자
저자
임영
1649년(인조27)∼1696년(숙종22).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덕함(德涵), 호는 창계(滄溪)이다. 이단상(李端相), 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1666년(현종7)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1671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호당(湖堂)에 선발되어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후 이조 정랑, 홍문관 부제학, 사헌부 대사헌, 전라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고 공조 참판에까지 이르렀다.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였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 기호학파의 일원이지만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학설을 절충하여 독자적인 이기심성설(理氣心性說)을 전개하였다. 나주의 창계서원(滄溪書院), 함평의 수산사(水山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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