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집 12(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
Regular price
$22.47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번암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채제공(蔡濟恭)의 시문집이다.
채제공은 이황(李滉), 정구(鄭逑), 허목(許穆), 이익(李瀷)을 이은 청남(淸南)의 영수로서, 노소론 당쟁의 와중에서 탕평을 표방한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이 인정되어 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해통공, 이조 전랑 통청권(通淸權) 혁파, 수원 성역(城役) 등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다.
다수의 시와 소차(疏箚), 수응문자(酬應文字) 들을 남겼다. 시의 경우 〈단구록(丹丘錄)〉, 〈망미록(望美錄)〉 등 9개의 시록(詩錄)과 그 외의 시들을 모아 자편(自編)해 놓았다. 정조가 1791년(정조15) 저자의 시문고(詩文稿)를 열람하고 시를 짓기까지 하였던 것을 보면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던 60대 후반에 그때까지의 시문들을 자편하는 작업을 하였던 것 같다. 이후 80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문도 그때그때 정리하고 편차하여 남긴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9권 27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정조가 1791년 저자 생전에 시문고를 보고서 지어준 〈어제어필서 번암시문고(御製御筆書樊巖詩文稿)〉, 1800년에 만든 어정범례(御定凡例)와 이에 대한 문인 이정운(李鼎運) 등의 부주(附奏)가 실려 있으니, 본집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알 수 있다. 권20~27은 소차 152편이다. 저자가 특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부분으로, 1748년 이후의 사직 상소 등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채제공 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됨은 물론 영·정조 시대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채제공은 이황(李滉), 정구(鄭逑), 허목(許穆), 이익(李瀷)을 이은 청남(淸南)의 영수로서, 노소론 당쟁의 와중에서 탕평을 표방한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이 인정되어 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해통공, 이조 전랑 통청권(通淸權) 혁파, 수원 성역(城役) 등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다.
다수의 시와 소차(疏箚), 수응문자(酬應文字) 들을 남겼다. 시의 경우 〈단구록(丹丘錄)〉, 〈망미록(望美錄)〉 등 9개의 시록(詩錄)과 그 외의 시들을 모아 자편(自編)해 놓았다. 정조가 1791년(정조15) 저자의 시문고(詩文稿)를 열람하고 시를 짓기까지 하였던 것을 보면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던 60대 후반에 그때까지의 시문들을 자편하는 작업을 하였던 것 같다. 이후 80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문도 그때그때 정리하고 편차하여 남긴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9권 27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정조가 1791년 저자 생전에 시문고를 보고서 지어준 〈어제어필서 번암시문고(御製御筆書樊巖詩文稿)〉, 1800년에 만든 어정범례(御定凡例)와 이에 대한 문인 이정운(李鼎運) 등의 부주(附奏)가 실려 있으니, 본집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알 수 있다. 권20~27은 소차 152편이다. 저자가 특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부분으로, 1748년 이후의 사직 상소 등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채제공 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됨은 물론 영·정조 시대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일러두기ㆍ4
번암집 제46권
신도비神道碑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증시 문정공 일송 심공 신도비명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贈諡文貞公一松沈公神道碑銘ㆍ13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동원 김공 신도비명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東園金公神道碑銘ㆍ38
정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의금부춘추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유공 신도비명 正憲大夫禮曹判書兼知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兪公神道碑銘ㆍ55
숭정대부 행 예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과암 이공 신도비명 崇政大夫行禮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果菴李公神道碑銘ㆍ70
증 자헌대부 이조 판서 행 가의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의금부춘추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백암 김공 신도비명 贈資憲大夫吏曹判書行嘉義大夫吏曹參判兼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栢巖金公神道碑銘ㆍ87
번암집 제47권
신도비神道碑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홍문관부제학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창석 선생 이공 신도비명 贈嘉善大夫吏曹參判行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蒼石先生李公神道碑銘ㆍ101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행 숭정대부 행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귀암 이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崇政大夫行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弘文館提學同知春秋館事歸巖李公神道碑銘ㆍ145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행 숭정대부 행 호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박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崇政大夫行戶曹判書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朴公神道碑銘ㆍ173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행 보국숭록대부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 부원수 김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行輔國崇祿大夫平安道兵馬水軍節度使兼寧邊大都護府使副元帥金公神道碑銘ㆍ189
번암집 제48권
신도비神道碑
수충익모광국 추충분의협책평난 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아성부원군 이공 신도비명 輸忠翼謨光國推忠奮義協策平難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鵝城府院君李公神道碑銘ㆍ211
숭록대부 행 의정부좌참찬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한평군 이공 신도비명 崇祿大夫行議政府左參贊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弘文館提學韓平君李公神道碑銘ㆍ243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청원부원군 행 가선대부 경기 관찰사 심 충장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靑原府院君行嘉善大夫京畿觀察使沈忠壯公神道碑銘ㆍ262
자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정공 신도비명 資憲大夫工曹判書兼知義禁府事鄭公神道碑銘ㆍ275
번암집 제49권
묘갈명墓碣銘
신당 정 선생 묘갈명 新堂鄭先生墓碣銘ㆍ291
숭록대부 행 지중추부사 치사 봉조하 이공 묘갈명 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致仕奉朝賀李公墓碣銘ㆍ304
사호 오공 묘갈명 沙湖吳公墓碣銘ㆍ312
가선대부 행 승정원 도승지 정공 묘갈명 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鄭公墓碣銘ㆍ318
증 사헌부 집의 행 호조 정랑 허공 묘갈명 贈司憲府執義行戶曹正郞許公墓碣銘ㆍ328
가선대부 삼도통제사 완은군 이공 묘갈명 嘉善大夫三道統制使完恩君李公墓碣銘ㆍ335
증 참판 엄공 묘갈명 贈參判嚴公墓碣銘ㆍ347
가의대부 한성부 좌윤 이공 묘갈명 嘉義大夫漢城府左尹李公墓碣銘ㆍ353
증 이조 참판 행 금천 군수 한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金川郡守韓公墓碣銘ㆍ364
통훈대부 행 공조 좌랑 심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工曹佐郞沈公墓碣銘ㆍ372
충신 이공 묘갈명 忠臣李公墓碣銘ㆍ379
통정대부 수 충청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공주목사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守忠淸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公州牧使李公墓碣銘ㆍ384
통훈대부 행 동복 현감 순천 진관 병마절제도위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同福縣監順天鎭管兵馬節制都尉李公墓碣銘ㆍ396
증 자헌대부 호조 판서 행 가선대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증시 무의 박공 묘갈명 贈資憲大夫戶曹判書行嘉善大夫慶尙左道兵馬節度使贈諡武毅朴公墓碣銘ㆍ400
번암집 제46권
신도비神道碑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세자부 증시 문정공 일송 심공 신도비명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世子傅贈諡文貞公一松沈公神道碑銘ㆍ13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감춘추관사 동원 김공 신도비명 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事監春秋館事東園金公神道碑銘ㆍ38
정헌대부 예조판서 겸 지의금부춘추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유공 신도비명 正憲大夫禮曹判書兼知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都摠管兪公神道碑銘ㆍ55
숭정대부 행 예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과암 이공 신도비명 崇政大夫行禮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果菴李公神道碑銘ㆍ70
증 자헌대부 이조 판서 행 가의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의금부춘추관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백암 김공 신도비명 贈資憲大夫吏曹判書行嘉義大夫吏曹參判兼同知經筵義禁府春秋館事五衛都摠府副摠管栢巖金公神道碑銘ㆍ87
번암집 제47권
신도비神道碑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홍문관부제학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창석 선생 이공 신도비명 贈嘉善大夫吏曹參判行通政大夫弘文館副提學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蒼石先生李公神道碑銘ㆍ101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행 숭정대부 행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동지춘추관사 귀암 이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崇政大夫行吏曹判書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弘文館提學同知春秋館事歸巖李公神道碑銘ㆍ145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행 숭정대부 행 호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 박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行崇政大夫行戶曹判書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朴公神道碑銘ㆍ173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행 보국숭록대부 평안도병마수군절도사 겸 영변대도호부사 부원수 김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行輔國崇祿大夫平安道兵馬水軍節度使兼寧邊大都護府使副元帥金公神道碑銘ㆍ189
번암집 제48권
신도비神道碑
수충익모광국 추충분의협책평난 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홍문관예문관춘추관관상감사 세자사 아성부원군 이공 신도비명 輸忠翼謨光國推忠奮義協策平難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鵝城府院君李公神道碑銘ㆍ211
숭록대부 행 의정부좌참찬 겸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한평군 이공 신도비명 崇祿大夫行議政府左參贊兼判義禁府事知經筵事弘文館提學韓平君李公神道碑銘ㆍ243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청원부원군 행 가선대부 경기 관찰사 심 충장공 신도비명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靑原府院君行嘉善大夫京畿觀察使沈忠壯公神道碑銘ㆍ262
자헌대부 공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정공 신도비명 資憲大夫工曹判書兼知義禁府事鄭公神道碑銘ㆍ275
번암집 제49권
묘갈명墓碣銘
신당 정 선생 묘갈명 新堂鄭先生墓碣銘ㆍ291
숭록대부 행 지중추부사 치사 봉조하 이공 묘갈명 崇祿大夫行知中樞府事致仕奉朝賀李公墓碣銘ㆍ304
사호 오공 묘갈명 沙湖吳公墓碣銘ㆍ312
가선대부 행 승정원 도승지 정공 묘갈명 嘉善大夫行承政院都承旨鄭公墓碣銘ㆍ318
증 사헌부 집의 행 호조 정랑 허공 묘갈명 贈司憲府執義行戶曹正郞許公墓碣銘ㆍ328
가선대부 삼도통제사 완은군 이공 묘갈명 嘉善大夫三道統制使完恩君李公墓碣銘ㆍ335
증 참판 엄공 묘갈명 贈參判嚴公墓碣銘ㆍ347
가의대부 한성부 좌윤 이공 묘갈명 嘉義大夫漢城府左尹李公墓碣銘ㆍ353
증 이조 참판 행 금천 군수 한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金川郡守韓公墓碣銘ㆍ364
통훈대부 행 공조 좌랑 심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工曹佐郞沈公墓碣銘ㆍ372
충신 이공 묘갈명 忠臣李公墓碣銘ㆍ379
통정대부 수 충청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 공주목사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守忠淸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巡察使公州牧使李公墓碣銘ㆍ384
통훈대부 행 동복 현감 순천 진관 병마절제도위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同福縣監順天鎭管兵馬節制都尉李公墓碣銘ㆍ396
증 자헌대부 호조 판서 행 가선대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증시 무의 박공 묘갈명 贈資憲大夫戶曹判書行嘉善大夫慶尙左道兵馬節度使贈諡武毅朴公墓碣銘ㆍ400
저자
저자
채제공
(蔡濟恭)
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 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11월 영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예문관 사관이 되었고, 이후 대사간, 한성 판윤, 병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 역적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에 대한 신원 주장으로 공격을 받자 사직하고,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788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금등(金?)〉을 정조와 함께 보관할 유일한 신하로 채택될 만큼 두 국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사후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신원되었다. 문장은 소차(疏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ㆍ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다.
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 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11월 영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예문관 사관이 되었고, 이후 대사간, 한성 판윤, 병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 역적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에 대한 신원 주장으로 공격을 받자 사직하고,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788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금등(金?)〉을 정조와 함께 보관할 유일한 신하로 채택될 만큼 두 국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사후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신원되었다. 문장은 소차(疏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ㆍ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