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집 13(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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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채제공(蔡濟恭)의 시문집이다.
채제공은 이황(李滉), 정구(鄭逑), 허목(許穆), 이익(李瀷)을 이은 청남(淸南)의 영수로서, 노소론 당쟁의 와중에서 탕평을 표방한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이 인정되어 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해통공, 이조 전랑 통청권(通淸權) 혁파, 수원 성역(城役) 등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다.
다수의 시와 소차(疏箚), 수응문자(酬應文字) 들을 남겼다. 시의 경우 〈단구록(丹丘錄)〉, 〈망미록(望美錄)〉 등 9개의 시록(詩錄)과 그 외의 시들을 모아 자편(自編)해 놓았다. 정조가 1791년(정조15) 저자의 시문고(詩文稿)를 열람하고 시를 짓기까지 하였던 것을 보면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던 60대 후반에 그때까지의 시문들을 자편하는 작업을 하였던 것 같다. 이후 80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문도 그때그때 정리하고 편차하여 남긴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9권 27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정조가 1791년 저자 생전에 시문고를 보고서 지어준 〈어제어필서 번암시문고(御製御筆書樊巖詩文稿)〉, 1800년에 만든 어정범례(御定凡例)와 이에 대한 문인 이정운(李鼎運) 등의 부주(附奏)가 실려 있으니, 본집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알 수 있다. 권20~27은 소차 152편이다. 저자가 특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부분으로, 1748년 이후의 사직 상소 등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채제공 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됨은 물론 영·정조 시대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채제공은 이황(李滉), 정구(鄭逑), 허목(許穆), 이익(李瀷)을 이은 청남(淸南)의 영수로서, 노소론 당쟁의 와중에서 탕평을 표방한 영조와 정조의 신임을 받았다. 특히 사도세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이 인정되어 정조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오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해통공, 이조 전랑 통청권(通淸權) 혁파, 수원 성역(城役) 등 개혁 정책을 실행하였다.
다수의 시와 소차(疏箚), 수응문자(酬應文字) 들을 남겼다. 시의 경우 〈단구록(丹丘錄)〉, 〈망미록(望美錄)〉 등 9개의 시록(詩錄)과 그 외의 시들을 모아 자편(自編)해 놓았다. 정조가 1791년(정조15) 저자의 시문고(詩文稿)를 열람하고 시를 짓기까지 하였던 것을 보면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던 60대 후반에 그때까지의 시문들을 자편하는 작업을 하였던 것 같다. 이후 80세에 졸할 때까지의 시문도 그때그때 정리하고 편차하여 남긴 것으로 보인다.
본집은 59권 27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정조가 1791년 저자 생전에 시문고를 보고서 지어준 〈어제어필서 번암시문고(御製御筆書樊巖詩文稿)〉, 1800년에 만든 어정범례(御定凡例)와 이에 대한 문인 이정운(李鼎運) 등의 부주(附奏)가 실려 있으니, 본집에 대한 정조의 관심을 알 수 있다. 권20~27은 소차 152편이다. 저자가 특히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부분으로, 1748년 이후의 사직 상소 등이 연도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채제공 개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척됨은 물론 영·정조 시대 전반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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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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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일러두기ㆍ4
번암집 제50권
묘갈명墓碣銘
통정대부 수 황해도 관찰사 정공 묘갈명 通政大夫守黃海道觀察使鄭公墓碣銘ㆍ11
통훈대부 행 홍문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편수관 제산 김공 묘갈명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秋館編修官霽山金公墓碣銘ㆍ30
구사당 김공 묘갈명 九思堂金公墓碣銘ㆍ49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구호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龜湖李公墓碣銘ㆍ60
증 이조 참판 행 호조 좌랑 이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戶曹佐郞李公墓碣銘ㆍ75
찰방 이공 묘갈명 察訪李公墓碣銘ㆍ81
가의대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노공 묘갈명 嘉義大夫慶尙左道兵馬節度使盧公墓碣銘ㆍ87
외조고 증 이조 판서 행 형조 정랑 이공 묘갈명 外祖考贈吏曹判書行刑曹正郞李公墓碣銘ㆍ103
번암집 제51권
묘갈명墓碣銘
성호 이 선생 묘갈명 星湖李先生墓碣銘ㆍ113
보국숭록대부 겸 호조 판서 판의금부사 완양부원군 이공 묘갈명 輔國崇祿大夫兼戶曹判書判義禁府事完陽府院君李公墓碣銘ㆍ128
정곡 조공 묘갈명 鼎谷曺公墓碣銘ㆍ135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지제교 명고 정공 묘갈명 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鳴?鄭公墓碣銘ㆍ146
남애 김공 묘갈명 南厓金公墓碣銘ㆍ159
통정대부 공조 참의 용와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工曹參議?窩柳公墓碣銘ㆍ164
통정대부 형조 참의 양파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刑曹參議陽坡柳公墓碣銘ㆍ173
증 호조 좌랑 권공 묘갈명 贈戶曹佐郞權公墓碣銘ㆍ180
통정대부 예조 참의 대산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禮曹參議大山李公墓碣銘ㆍ185
통훈대부 행 세자시강원 필선 심공 묘갈명 通訓大夫行世子侍講院弼善沈公墓碣銘ㆍ194
번암집 제52권
묘갈명墓碣銘
설월당 김공 묘갈명 雪月堂金公墓碣銘ㆍ205
예문관 검열 증 홍문관 수찬 근시재 김공 묘갈명 藝文館檢閱贈弘文館修撰近始齋金公墓碣銘ㆍ214
건원릉 참봉 김공 묘갈명 健元陵參奉金公墓碣銘ㆍ224
증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수 강원도 관찰사 경연당 이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通政大夫守江原道觀察使景淵堂李公墓碣銘ㆍ231
대군사부 쌍봉 정공 묘갈명 大君師傅雙峯鄭公墓碣銘ㆍ244
증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병조 참의 지제교 정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通政大夫兵曹參議知製敎丁公墓碣銘ㆍ250
오한 손공 묘갈명 ?漢孫公墓碣銘ㆍ257
증 지평 대은 권공 묘갈명 贈持平臺隱權公墓碣銘ㆍ264
충신 증 훈련원 정 손공 묘갈명 忠臣贈訓鍊院正孫公墓碣銘ㆍ270
영릉 참봉 만와 김공 묘갈명 英陵參奉晩窩金公墓碣銘ㆍ276
통훈대부 행 공조 좌랑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工曹佐郞李公墓碣銘ㆍ281
증 참판 양공 묘갈명 贈參判梁公墓碣銘ㆍ286
만취당 김공 묘갈명 晩翠堂金公墓碣銘ㆍ290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柳公墓碣銘ㆍ297
번암집 제53권
묘갈명墓碣銘
현감 남계 이공 묘갈명 縣監南溪李公墓碣銘ㆍ313
세마 권공 묘갈명 洗馬權公墓碣銘ㆍ321
통훈대부 행 온양 군수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溫陽郡守李公墓碣銘ㆍ326
통훈대부 행 사간원 정언 홍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司諫院正言洪公墓碣銘ㆍ334
죽봉 권공 묘갈명 竹峯權公墓碣銘ㆍ344
퇴곡 권공 묘갈명 退谷權公墓碣銘ㆍ347
사물재 권공 묘갈명 四勿齋權公墓碣銘ㆍ352
통훈대부 진주 목사 정공 묘갈명 通訓大夫晉州牧使丁公墓碣銘ㆍ358
가선대부 함경북도 병마수군절도사 우공 묘갈명 嘉善大夫咸鏡北道兵馬水軍節度使禹公墓碣銘ㆍ369
눌옹 이공 묘갈명 訥翁李公墓碣銘ㆍ382
선교랑 행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설서 이공 묘갈명 宣敎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世子侍講院說書李公墓碣銘ㆍ393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지제교 경정 이공 묘갈명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敬亭李公墓碣銘ㆍ404
번암집 제50권
묘갈명墓碣銘
통정대부 수 황해도 관찰사 정공 묘갈명 通政大夫守黃海道觀察使鄭公墓碣銘ㆍ11
통훈대부 행 홍문관교리 지제교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편수관 제산 김공 묘갈명通訓大夫行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秋館編修官霽山金公墓碣銘ㆍ30
구사당 김공 묘갈명 九思堂金公墓碣銘ㆍ49
통정대부 승정원동부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구호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承政院同副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龜湖李公墓碣銘ㆍ60
증 이조 참판 행 호조 좌랑 이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戶曹佐郞李公墓碣銘ㆍ75
찰방 이공 묘갈명 察訪李公墓碣銘ㆍ81
가의대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노공 묘갈명 嘉義大夫慶尙左道兵馬節度使盧公墓碣銘ㆍ87
외조고 증 이조 판서 행 형조 정랑 이공 묘갈명 外祖考贈吏曹判書行刑曹正郞李公墓碣銘ㆍ103
번암집 제51권
묘갈명墓碣銘
성호 이 선생 묘갈명 星湖李先生墓碣銘ㆍ113
보국숭록대부 겸 호조 판서 판의금부사 완양부원군 이공 묘갈명 輔國崇祿大夫兼戶曹判書判義禁府事完陽府院君李公墓碣銘ㆍ128
정곡 조공 묘갈명 鼎谷曺公墓碣銘ㆍ135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지제교 명고 정공 묘갈명 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鳴?鄭公墓碣銘ㆍ146
남애 김공 묘갈명 南厓金公墓碣銘ㆍ159
통정대부 공조 참의 용와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工曹參議?窩柳公墓碣銘ㆍ164
통정대부 형조 참의 양파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刑曹參議陽坡柳公墓碣銘ㆍ173
증 호조 좌랑 권공 묘갈명 贈戶曹佐郞權公墓碣銘ㆍ180
통정대부 예조 참의 대산 이공 묘갈명 通政大夫禮曹參議大山李公墓碣銘ㆍ185
통훈대부 행 세자시강원 필선 심공 묘갈명 通訓大夫行世子侍講院弼善沈公墓碣銘ㆍ194
번암집 제52권
묘갈명墓碣銘
설월당 김공 묘갈명 雪月堂金公墓碣銘ㆍ205
예문관 검열 증 홍문관 수찬 근시재 김공 묘갈명 藝文館檢閱贈弘文館修撰近始齋金公墓碣銘ㆍ214
건원릉 참봉 김공 묘갈명 健元陵參奉金公墓碣銘ㆍ224
증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수 강원도 관찰사 경연당 이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通政大夫守江原道觀察使景淵堂李公墓碣銘ㆍ231
대군사부 쌍봉 정공 묘갈명 大君師傅雙峯鄭公墓碣銘ㆍ244
증 이조 참판 행 통정대부 병조 참의 지제교 정공 묘갈명 贈吏曹參判行通政大夫兵曹參議知製敎丁公墓碣銘ㆍ250
오한 손공 묘갈명 ?漢孫公墓碣銘ㆍ257
증 지평 대은 권공 묘갈명 贈持平臺隱權公墓碣銘ㆍ264
충신 증 훈련원 정 손공 묘갈명 忠臣贈訓鍊院正孫公墓碣銘ㆍ270
영릉 참봉 만와 김공 묘갈명 英陵參奉晩窩金公墓碣銘ㆍ276
통훈대부 행 공조 좌랑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工曹佐郞李公墓碣銘ㆍ281
증 참판 양공 묘갈명 贈參判梁公墓碣銘ㆍ286
만취당 김공 묘갈명 晩翠堂金公墓碣銘ㆍ290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 유공 묘갈명 通政大夫司諫院大司諫柳公墓碣銘ㆍ297
번암집 제53권
묘갈명墓碣銘
현감 남계 이공 묘갈명 縣監南溪李公墓碣銘ㆍ313
세마 권공 묘갈명 洗馬權公墓碣銘ㆍ321
통훈대부 행 온양 군수 이공 묘갈명 通訓大夫行溫陽郡守李公墓碣銘ㆍ326
통훈대부 행 사간원 정언 홍공 묘갈명 通訓大夫行司諫院正言洪公墓碣銘ㆍ334
죽봉 권공 묘갈명 竹峯權公墓碣銘ㆍ344
퇴곡 권공 묘갈명 退谷權公墓碣銘ㆍ347
사물재 권공 묘갈명 四勿齋權公墓碣銘ㆍ352
통훈대부 진주 목사 정공 묘갈명 通訓大夫晉州牧使丁公墓碣銘ㆍ358
가선대부 함경북도 병마수군절도사 우공 묘갈명 嘉善大夫咸鏡北道兵馬水軍節度使禹公墓碣銘ㆍ369
눌옹 이공 묘갈명 訥翁李公墓碣銘ㆍ382
선교랑 행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 세자시강원설서 이공 묘갈명 宣敎郞行藝文館檢閱兼春秋館記事官世子侍講院說書李公墓碣銘ㆍ393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지제교 경정 이공 묘갈명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知製敎敬亭李公墓碣銘ㆍ404
저자
저자
채제공
(蔡濟恭)
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 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11월 영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예문관 사관이 되었고, 이후 대사간, 한성 판윤, 병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 역적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에 대한 신원 주장으로 공격을 받자 사직하고,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788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금등(金?)〉을 정조와 함께 보관할 유일한 신하로 채택될 만큼 두 국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사후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신원되었다. 문장은 소차(疏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ㆍ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다.
1720년(숙종46)~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ㆍ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 문과 정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748년 11월 영조의 특명으로 시행한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예문관 사관이 되었고, 이후 대사간, 한성 판윤, 병조 판서, 예조 판서,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80년 역적 홍국영과의 친분, 사도세자에 대한 신원 주장으로 공격을 받자 사직하고, 명덕산(明德山)과 노량(鷺梁) 등지에서 은거하였다. 1788년 우의정이 되었으며 2년 후 좌의정으로 승진하면서 3년간 혼자 정승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후회하여 기록한 〈금등(金?)〉을 정조와 함께 보관할 유일한 신하로 채택될 만큼 두 국왕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며, 정조의 탕평책을 추진한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사후인 1801년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으로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1823년 영남만인소로 신원되었다. 문장은 소차(疏箚)에 능했고, 시풍은 위로는 이민구(李敏求)ㆍ허목(許穆), 아래로는 정약용(丁若鏞)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문집으로 《번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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