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오집 1(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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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오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종수(金鍾秀)의 시문집이다.
김종수는 노론 청명당(淸明黨)의 영수이다. 정조의 세손 시절 세손 사부로서 정조에게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으며 임오화변 이후 노론 벽파의 당론에 반하여 세손인 정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정조 즉위 후 중용되어 외척세력을 견제하였으며, 탕평 정국 속에서는 남인 채제공(蔡濟恭)과 대립하면서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 나갔다.
다수의 시문은 저자의 사후 정조의 묘정에서 출향되고 관직을 추탈 당하는 정치적인 역경을 겪으며 간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10년경 두 편의 발문(跋文)이 지어졌을 때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原集) 7권 연보(年譜) 2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신응조(申應朝)가 1879년(고종16)에 지은 서문과 총목이 있고, 다시 권별로 목록이 달려 있다. 권1은 연대순으로 편차된 시 107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차(疏箚)로, 노론 벽파(僻派)로서의 역정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세자시강원 관료로서 춘궁 시절의 정조에게 진강한 내용을 담은 강의(講義)와, 입지(立志), 진학(進學), 극기(克己) 등 18칙으로 나누어 권면한 내용을 담은 경연고사(經筵故事)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서(書),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雜著)가, 권5는 제문(祭文), 애사(哀辭)가, 권6~7은 비(碑), 묘갈(墓碣), 묘표(墓表), 묘지(墓誌), 행장(行狀), 시장(諡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김윤식(金允植)이 1910년에 지은 발문과 이재곤(李載?)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연보(年譜)는 2권으로 편차하였는데, 권1은 저자가 65세가 되는 1792년까지의 행력이, 권2는 좌의정이 된 1793년부터 사망 후 정려(旌閭)된 사실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김종수는 노론 청명당(淸明黨)의 영수이다. 정조의 세손 시절 세손 사부로서 정조에게 학문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으며 임오화변 이후 노론 벽파의 당론에 반하여 세손인 정조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정조 즉위 후 중용되어 외척세력을 견제하였으며, 탕평 정국 속에서는 남인 채제공(蔡濟恭)과 대립하면서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해 나갔다.
다수의 시문은 저자의 사후 정조의 묘정에서 출향되고 관직을 추탈 당하는 정치적인 역경을 겪으며 간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10년경 두 편의 발문(跋文)이 지어졌을 때 문집이 간행되었다.
본집은 원집(原集) 7권 연보(年譜) 2권 합 2책으로 되어 있다. 맨 앞에 신응조(申應朝)가 1879년(고종16)에 지은 서문과 총목이 있고, 다시 권별로 목록이 달려 있다. 권1은 연대순으로 편차된 시 107제(題)가 수록되어 있다. 권2는 소차(疏箚)로, 노론 벽파(僻派)로서의 역정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세자시강원 관료로서 춘궁 시절의 정조에게 진강한 내용을 담은 강의(講義)와, 입지(立志), 진학(進學), 극기(克己) 등 18칙으로 나누어 권면한 내용을 담은 경연고사(經筵故事)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4는 서(書), 서(序), 기(記), 제발(題跋), 잡저(雜著)가, 권5는 제문(祭文), 애사(哀辭)가, 권6~7은 비(碑), 묘갈(墓碣), 묘표(墓表), 묘지(墓誌), 행장(行狀), 시장(諡狀)이 수록되어 있다. 그 뒤에는 김윤식(金允植)이 1910년에 지은 발문과 이재곤(李載?)이 지은 발문이 실려 있다. 연보(年譜)는 2권으로 편차하였는데, 권1은 저자가 65세가 되는 1792년까지의 행력이, 권2는 좌의정이 된 1793년부터 사망 후 정려(旌閭)된 사실까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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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목차
목차
일러두기ㆍ4
해제 몽오 김종수의 생애와 《몽오집》에 대하여|홍기은ㆍ17
몽오집 서 夢梧集序|신응조 申應朝ㆍ42
몽오집 제1권
시詩
새벽에 경안촌을 출발하다 曉發慶安村ㆍ49
섣달 그믐날 除夕ㆍ50
동유 東遊ㆍ51
안음으로 부임하는 자직 형을 보내며 送子直兄之任安陰ㆍ72
성묘 정축년 省墓 丁丑ㆍ73
매화가 피지 않아 梅花不開ㆍ74
두 번째 其二ㆍ74
세 번째 其三ㆍ74
섣달 그믐날 밤에 除夜ㆍ76
이윤지가 병중에 김정례 이안 와 수십 편을 수창하고 그 시권을 보내서 화답시를 청하기에 그중 한 편에 차운하여 보내다 胤之病中與金正禮 履安 酬唱數十篇送示其詩卷求和次其一?却寄ㆍ77
강계 부사 정한규에 대한 만사 무인년 鄭江界 漢奎 挽 戊寅ㆍ78
5월 2일 윤지와 자직 형과 심원 이유수 과 대수 정존겸 와 백우와 이사회 명환 와 함께 손가장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이지출곽소진사'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五月二日同胤之直兄深遠 李惟秀 大受 鄭存謙 伯愚及李士晦 明煥 遊孫家莊水石以已知出郭少塵事分?ㆍ79
6월 17일에 백씨, 원령, 윤지, 자목숙 윤면동, 백우, 중회, 김중척 상무 어른, 김원박 무택 과 북영에서 연꽃을 감상하고 함께 시를 짓다 六月十七日同伯氏元靈胤之子穆叔 尹冕東 伯愚仲晦及金丈仲陟 相戊 金元博 茂澤 賞荷北營共賦ㆍ81
또 '치재영풍한로지옥호'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又以?在迎風寒露之玉壺分?ㆍ82
세검정. 백씨와 자직 형과 백우와 함께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지었는데, 양 자를 얻었다 洗劍亭同伯氏直兄伯愚得?字ㆍ83
병석에서 감회가 일어. 백우가 영남으로 갈 때 그 전별연에서 백우 형제, 자직 형, 대수와 운자를 나누어 정하였던 '난분차야중'의 운자를 썼다 病中有懷伯愚嶺行用其餞席與伯愚昆季直兄大受所分難分此夜中?ㆍ84
윤지의 장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구술로 짓다 觀胤之葬歸路口占ㆍ85
강서로 가는 도중에 江西途中ㆍ86
중양절에 백씨께 보내다 九日奉寄伯氏ㆍ88
도중에 새벽에 출발하다 途中曉發ㆍ89
이숙의 시에 차운하다 次李叔ㆍ90
자목숙에게 보내다 簡子穆叔ㆍ91
심원에게 차운하여 보내다 次寄深遠ㆍ92
이숙의 집에서 운을 뽑아 함께 짓다 李叔第拈?共賦ㆍ93
백씨의 시에 차운하다 次伯氏ㆍ94
동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낙화유사백일정 명구유연청춘심'을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園賞花以落花遊絲白日靜鳴鳩乳燕靑春深分?ㆍ95
또 '산척여애 우애미소 유풍자남 익피신묘'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又以山滌餘靄宇曖微?有風自南翼彼新苗分?ㆍ96
소동원의 작은 모임. '산하고연원촌 천변독수고원'을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小?園小會以山下孤煙遠村天邊獨樹高原分?ㆍ97
즉흥시 卽事ㆍ98
여관의 가을밤 旅館秋夜ㆍ99
제석. 헌릉의 재사에서 감회를 쓰다 除夕獻陵齋舍書感ㆍ100
인서가 두포에서 찾아왔는데 밤에 비가 내리기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서 함께 시를 짓다 寅瑞自荳浦來訪夜雨拈唐人?共賦ㆍ101
김계윤 상숙 이 아들 낳은 것을 축하하다 賀金季潤 相肅 生子ㆍ102
연경으로 사신 가는 학사 홍유직 억 을 전별하며 別洪幼直 檍 學士使燕ㆍ104
온양 군수 심사희에 대한 만사 沈溫陽 士希 挽ㆍ105
백수사군가를 귀양 간 자형에게 보내다 白水使君歌奉寄?兄謫居ㆍ106
매화 梅花ㆍ109
1월 10일에 큰 눈이 내려 이웃들을 모아서 연구를 짓고 이어 배율을 짓다 병술년 正月十日大雪會隣里聯句仍成排律 丙戌ㆍ110
학탄에 있는 이 판서의 정자에서 운자를 불러 함께 짓다 鶴灘李判書亭子呼韻共賦ㆍ112
병술년 중동에 홍형 자직, 이심원, 김백우와 두포에 있는 조인서의 집에 모였다.……심원과 백우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丙戌中冬與洪兄子直李深遠金伯愚會于趙寅瑞荳浦第……深遠伯愚還京云ㆍ113
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서 함께 시를 짓다 又拈唐人?共賦ㆍ115
술회 述懷ㆍ116
자형이 두포시의 운자를 써서 과거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였기에 곧바로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 ?兄用荳浦?賀登第輒復次寄ㆍ118
자형이 생 자 운을 얻어서 여러 편을 지었는데, 자술한 것도 있고 부탁한 것도 있기에 곧바로 다시 화답하여 보내다 ?兄以所得生字?成累篇有自述者有見屬者輒復和寄ㆍ119
부제학 김시찬에 대한 만사 종숙부를 대신하여 짓다.○정해년 金副提學 時粲 挽 代從叔父作○丁亥ㆍ120
두 번째 其二ㆍ120
세 번째 其三ㆍ121
소소행. 두포의 조 장원, 호서의 이 안찰사, 장성의 홍 사군, 석천의 김 학사에게 보내다 少小行寄荳浦趙壯元湖西李按使長城洪使君石泉金學士ㆍ122
정월 대보름 밤에 달이 뜨지 않아 이웃들을 모아 작은 술자리를 열고 운자를 뽑아 함께 시를 짓다 기축년 上元夜無月會隣里小飮拈?共賦 己丑ㆍ125
백우와 현지가 수창한 시권의 시에 차운하다 次伯愚與玄之酬唱詩卷?ㆍ126
곡우일에 계윤이 찾아왔기에 고원정에 올라가서 작은 술자리를 열고 다시 후동서암으로 가서 운자를 불러 함께 시를 짓다 穀雨日季潤來過上高遠亭小飮轉往後?書菴呼?共賦ㆍ127
4월 29일 강을 유람한 일을 기록하다 記四月二十九日江遊ㆍ128
광호의 정자. 심원, 백우, 윤백상 시동 과 운자를 뽑아 함께 시를 지었는데, 수청초부 또한 이르렀다 廣湖亭子與深遠伯愚尹伯常 蓍東 拈?共賦水靑樵夫亦至ㆍ130
두 번째 其二ㆍ131
대수가 뽑은 가 자에 이어서 차운하다 續次大受歌字ㆍ132
정릉의 재실에서 수청초부를 만나 뇌연장의 시에 차운하여 주다 靖陵齋室遇水靑樵夫次雷淵丈?以贈ㆍ133
진주 목사 조도원 덕수 이 시내 북쪽으로 찾아와 술빚을 갚기에 고기를 구워 작은 모임을 하였다 晉牧趙道源 德洙 過溪北贈酒債?肉小集ㆍ134
남한산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청휘각에 걸린 시판(詩板)의 시에 차운하다 南漢歸路次淸暉閣板上?ㆍ136
헌재 윤도경 심위 에게 보내다 簡獻齋尹道經 心緯ㆍ137
이치숙의 환범헌에서 인서와 모여 함께 삼연의 시에 차운하다 李治叔換凡軒會寅瑞共次三淵?ㆍ138
이치숙이 술을 가지고 왔기에 운자를 불러 시를 짓다 李治叔携酒來呼?ㆍ139
이치숙이 술을 가지고 왔기에 가낭선의 시에서 운자를 뽑아 짓다 李治叔携酒至拈賈浪仙?ㆍ140
영광 군수 서령 낙보 명천 가 초산서원 시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 靈光使君徐令樂甫 命天 寄示所次楚山書院板上?却復次寄ㆍ141
두 번째 其二ㆍ141
이치숙 형제들과 숲속의 단에서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또 두기 시의 운자를 뽑아 시를 짓다 同李治叔伯季小飮林下壇又拈杜機?ㆍ143
이치숙과 밤늦도록 당시(唐詩)에 차운하다 同李治叔刻燭次唐人?ㆍ144
숲속의 정자에서 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 시를 짓다 林下亭又拈唐人?ㆍ145
자양동에서 매화를 보며 당시(唐詩)에 차운하다 紫陽洞看梅次唐人?ㆍ146
남쪽으로 유배 가는 도중에 南遷途中ㆍ147
두 번째 其二ㆍ147
기장 유배지에서 봄을 보내며 이백의 시에 차운하다 機張謫中送春次李白ㆍ148
백씨가 보내온 시에 삼가 차운하다 謹次伯氏寄示?ㆍ149
두 번째 其二ㆍ149
세 번째 其三ㆍ150
구술로 짓다 口占ㆍ151
남 자 운에 화답하여 올리다 和上南字?ㆍ152
두 번째 其二ㆍ152
세 번째 其三ㆍ152
백씨가 보내온 영연 시에 첩운하다 疊伯氏寄嶺沿?ㆍ153
위리안치되던 날 읊다 ?棘日賦ㆍ154
8월 4일 八月四日ㆍ155
밤 夜ㆍ156
인척 민재의 조부가 신임사화 때 우리 조부를 따라 서쪽 변방으로 갔다가 을사년에 임금이 바뀌고서야 비로소 모시고 돌아왔다.……지금을 생각하고 옛일에 느낀 바가 있어 절구 한 수를 지어서 그에게 준다 閔戚 在 之祖父辛壬士禍從我王考于西塞至乙巳改紀始陪還……撫今感古遂成一絶以贈之ㆍ157
이웃 사람이 와서 섬 안에 점을 잘 치는 사람이 있으니 점을 한번 쳐 보라고 하였는데, 내가 죄가 무거워서 감히 점을 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隣人來言島中有善推命者願一問之余謝以罪重不敢ㆍ158
우연히 짓다 偶成ㆍ159
섬 안의 계절을 기록하다 紀島中時候ㆍ160
제야에 보주와 함께 소제가 섬에 귀양 갔을 때 지은 제야 시에 차운하다 除夜同堡主次蘇齊謫島時除夜?ㆍ162
생일날 아침 生朝ㆍ163
종숙부가 사면되어 돌아간 뒤 백씨와 수창한 시에 차운하다 次從叔父宥還後與伯氏酬唱?ㆍ164
종숙부가 사면되어 돌아갈 때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從叔父宥還時?ㆍ165
중양절에 오봉에 유람 갔다가 다음 날 백운산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구술로 짓다 重陽遊五峯翌日入白雲途中口呼ㆍ166
두 번째 其二ㆍ166
남쪽 섬의 의객 노형원에게 써서 주다 書贈南島義客 盧亨源ㆍ167
소산 숙부께 차운하여 올리다 次呈蘇山叔父ㆍ168
두 번째 其二ㆍ168
영종대왕 만장 병신년 英宗大王輓章 丙申ㆍ169
두 번째 其二ㆍ169
세 번째 其三ㆍ170
네 번째 其四ㆍ171
다섯 번째 其五ㆍ172
여섯 번째 其六ㆍ172
일곱 번째 其七ㆍ173
판서 황경원의 부인에 대한 만사 黃判書 景源 夫人挽ㆍ175
내가 서쪽으로 나갈 때에 성상께서 노모를 잘 봉양하라고 누차 말씀하셨는데, 감영에 도착한 지 5일째가 바로 노모의 생신이었다.……율시 한 수를 읊고 제공들에게 함께 화답하기를 청하여 그 일을 성대하게 하였다 賤臣之西出也聖敎屢及於榮養老母上營第五日卽老人生朝也……吟成一律屬諸公同和以張大其事云ㆍ176
자모산성 기해년 慈母山城 己亥ㆍ178
13일 밤에 애련지에서 뱃놀이하다 十三夜汎舟愛蓮池ㆍ179
대전의 춘첩자 신축년 大殿春帖子 辛丑ㆍ180
규장각의 단오첩 奎章閣端午帖ㆍ181
두 번째 其二ㆍ181
규장각의 단오첩 임인년 奎章閣端午帖 壬寅ㆍ182
양사가 합계하여 극률로 논죄했다는 말을 듣고 聞兩司合啓論以極律ㆍ183
9월 15일 새벽에 베갯머리에서 구술로 짓다 九月十五日曉枕口占ㆍ184
걸해소를 봉하여 올리고 나서 구두로 시를 짓고 고정 숙부께 올려 화답을 청하다 封上乞骸疏口占上古亭叔父要和ㆍ185
서윤 서명민에 대한 만사 徐庶尹 命敏 挽ㆍ186
학성군 이유에게 궤장을 하사하는 잔치에 특별히 어제시 두 편을 내리셨고, 왕명을 받들어 화답시를 지어 올렸는데, 학성군이 선대왕과 동갑이기 때문이었다 갑진년 鶴城君 楡 賜?杖宴特降御製詩二篇承命?進以鶴城是先大王同甲也 甲辰ㆍ187
10월 19일 밤 꿈에 백우를 만났는데, 평소처럼 건강한 모습이었다.……꿈을 깨고 나서 서글픔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앞뒤 구를 지어 붙여서 편을 완성하였다 十月十九日夜夢遇伯愚神色陽陽如平生……覺來不堪愴然遂足上下句以成篇ㆍ189
직학 정자상 지검 에 대한 만사 을사년 鄭直學子尙 志儉 挽 乙巳ㆍ190
동궁이 개강하던 날 기쁨을 표한 임금의 시에 화답하여 올리다 ?進東宮開講日御製志喜?ㆍ191
능행하던 날 홍화문 밖에서 유진하며 구두로 지어서 전 진사 파총 김양화에게 보여 주고 화답을 요구하다 기유년 陵幸日留陣弘化門外口占視前進士把摠金養和要和 己酉ㆍ192
두 번째 其二ㆍ192
세 번째 其三ㆍ193
판서 서유경에 대한 만사 徐判書 有慶 挽ㆍ194
현륭원에 이장할 때의 만장 기유년 顯隆園遷奉輓章 己酉ㆍ195
두 번째 其二ㆍ196
세 번째 其三ㆍ197
네 번째 其四ㆍ197
임자년 12월 3일 규장각 관원이 만장봉의 청룡동 안으로 어필을 가지고 와서 전해 주기에 두 손으로 받들어 읽어 보니 임금이 지은 칠언절구 한 편이었다.……삼가 하교를 받들어 화답하여 올리다 임자년 壬子十二月三日閣官來宣御筆于萬丈峯之靑龍洞中雙擎奉玩乃御製七言絶句一篇也……謹奉敎?進 壬子ㆍ199
판서 심풍지에 대한 만사 계축년 沈判書 ?之 挽 癸丑ㆍ200
이건지에게 화답하다 和李健之ㆍ202
평해에 찬배되다 갑인년 竄平海 甲寅ㆍ204
두 번째 其二ㆍ204
유배지에서 인척 민재(閔在)를 그리워하며 謫中悼念閔戚ㆍ205
금강산에 유람 갈 때 임금이 지은 전별시에 화답하여 올리다 金剛之行?進御製?行?ㆍ206
해제 몽오 김종수의 생애와 《몽오집》에 대하여|홍기은ㆍ17
몽오집 서 夢梧集序|신응조 申應朝ㆍ42
몽오집 제1권
시詩
새벽에 경안촌을 출발하다 曉發慶安村ㆍ49
섣달 그믐날 除夕ㆍ50
동유 東遊ㆍ51
안음으로 부임하는 자직 형을 보내며 送子直兄之任安陰ㆍ72
성묘 정축년 省墓 丁丑ㆍ73
매화가 피지 않아 梅花不開ㆍ74
두 번째 其二ㆍ74
세 번째 其三ㆍ74
섣달 그믐날 밤에 除夜ㆍ76
이윤지가 병중에 김정례 이안 와 수십 편을 수창하고 그 시권을 보내서 화답시를 청하기에 그중 한 편에 차운하여 보내다 胤之病中與金正禮 履安 酬唱數十篇送示其詩卷求和次其一?却寄ㆍ77
강계 부사 정한규에 대한 만사 무인년 鄭江界 漢奎 挽 戊寅ㆍ78
5월 2일 윤지와 자직 형과 심원 이유수 과 대수 정존겸 와 백우와 이사회 명환 와 함께 손가장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이지출곽소진사'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五月二日同胤之直兄深遠 李惟秀 大受 鄭存謙 伯愚及李士晦 明煥 遊孫家莊水石以已知出郭少塵事分?ㆍ79
6월 17일에 백씨, 원령, 윤지, 자목숙 윤면동, 백우, 중회, 김중척 상무 어른, 김원박 무택 과 북영에서 연꽃을 감상하고 함께 시를 짓다 六月十七日同伯氏元靈胤之子穆叔 尹冕東 伯愚仲晦及金丈仲陟 相戊 金元博 茂澤 賞荷北營共賦ㆍ81
또 '치재영풍한로지옥호'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又以?在迎風寒露之玉壺分?ㆍ82
세검정. 백씨와 자직 형과 백우와 함께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지었는데, 양 자를 얻었다 洗劍亭同伯氏直兄伯愚得?字ㆍ83
병석에서 감회가 일어. 백우가 영남으로 갈 때 그 전별연에서 백우 형제, 자직 형, 대수와 운자를 나누어 정하였던 '난분차야중'의 운자를 썼다 病中有懷伯愚嶺行用其餞席與伯愚昆季直兄大受所分難分此夜中?ㆍ84
윤지의 장례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구술로 짓다 觀胤之葬歸路口占ㆍ85
강서로 가는 도중에 江西途中ㆍ86
중양절에 백씨께 보내다 九日奉寄伯氏ㆍ88
도중에 새벽에 출발하다 途中曉發ㆍ89
이숙의 시에 차운하다 次李叔ㆍ90
자목숙에게 보내다 簡子穆叔ㆍ91
심원에게 차운하여 보내다 次寄深遠ㆍ92
이숙의 집에서 운을 뽑아 함께 짓다 李叔第拈?共賦ㆍ93
백씨의 시에 차운하다 次伯氏ㆍ94
동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낙화유사백일정 명구유연청춘심'을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園賞花以落花遊絲白日靜鳴鳩乳燕靑春深分?ㆍ95
또 '산척여애 우애미소 유풍자남 익피신묘'를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又以山滌餘靄宇曖微?有風自南翼彼新苗分?ㆍ96
소동원의 작은 모임. '산하고연원촌 천변독수고원'을 가지고 운자를 나누어 시를 짓다 小?園小會以山下孤煙遠村天邊獨樹高原分?ㆍ97
즉흥시 卽事ㆍ98
여관의 가을밤 旅館秋夜ㆍ99
제석. 헌릉의 재사에서 감회를 쓰다 除夕獻陵齋舍書感ㆍ100
인서가 두포에서 찾아왔는데 밤에 비가 내리기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서 함께 시를 짓다 寅瑞自荳浦來訪夜雨拈唐人?共賦ㆍ101
김계윤 상숙 이 아들 낳은 것을 축하하다 賀金季潤 相肅 生子ㆍ102
연경으로 사신 가는 학사 홍유직 억 을 전별하며 別洪幼直 檍 學士使燕ㆍ104
온양 군수 심사희에 대한 만사 沈溫陽 士希 挽ㆍ105
백수사군가를 귀양 간 자형에게 보내다 白水使君歌奉寄?兄謫居ㆍ106
매화 梅花ㆍ109
1월 10일에 큰 눈이 내려 이웃들을 모아서 연구를 짓고 이어 배율을 짓다 병술년 正月十日大雪會隣里聯句仍成排律 丙戌ㆍ110
학탄에 있는 이 판서의 정자에서 운자를 불러 함께 짓다 鶴灘李判書亭子呼韻共賦ㆍ112
병술년 중동에 홍형 자직, 이심원, 김백우와 두포에 있는 조인서의 집에 모였다.……심원과 백우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丙戌中冬與洪兄子直李深遠金伯愚會于趙寅瑞荳浦第……深遠伯愚還京云ㆍ113
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서 함께 시를 짓다 又拈唐人?共賦ㆍ115
술회 述懷ㆍ116
자형이 두포시의 운자를 써서 과거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였기에 곧바로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 ?兄用荳浦?賀登第輒復次寄ㆍ118
자형이 생 자 운을 얻어서 여러 편을 지었는데, 자술한 것도 있고 부탁한 것도 있기에 곧바로 다시 화답하여 보내다 ?兄以所得生字?成累篇有自述者有見屬者輒復和寄ㆍ119
부제학 김시찬에 대한 만사 종숙부를 대신하여 짓다.○정해년 金副提學 時粲 挽 代從叔父作○丁亥ㆍ120
두 번째 其二ㆍ120
세 번째 其三ㆍ121
소소행. 두포의 조 장원, 호서의 이 안찰사, 장성의 홍 사군, 석천의 김 학사에게 보내다 少小行寄荳浦趙壯元湖西李按使長城洪使君石泉金學士ㆍ122
정월 대보름 밤에 달이 뜨지 않아 이웃들을 모아 작은 술자리를 열고 운자를 뽑아 함께 시를 짓다 기축년 上元夜無月會隣里小飮拈?共賦 己丑ㆍ125
백우와 현지가 수창한 시권의 시에 차운하다 次伯愚與玄之酬唱詩卷?ㆍ126
곡우일에 계윤이 찾아왔기에 고원정에 올라가서 작은 술자리를 열고 다시 후동서암으로 가서 운자를 불러 함께 시를 짓다 穀雨日季潤來過上高遠亭小飮轉往後?書菴呼?共賦ㆍ127
4월 29일 강을 유람한 일을 기록하다 記四月二十九日江遊ㆍ128
광호의 정자. 심원, 백우, 윤백상 시동 과 운자를 뽑아 함께 시를 지었는데, 수청초부 또한 이르렀다 廣湖亭子與深遠伯愚尹伯常 蓍東 拈?共賦水靑樵夫亦至ㆍ130
두 번째 其二ㆍ131
대수가 뽑은 가 자에 이어서 차운하다 續次大受歌字ㆍ132
정릉의 재실에서 수청초부를 만나 뇌연장의 시에 차운하여 주다 靖陵齋室遇水靑樵夫次雷淵丈?以贈ㆍ133
진주 목사 조도원 덕수 이 시내 북쪽으로 찾아와 술빚을 갚기에 고기를 구워 작은 모임을 하였다 晉牧趙道源 德洙 過溪北贈酒債?肉小集ㆍ134
남한산성에서 돌아오는 길에 청휘각에 걸린 시판(詩板)의 시에 차운하다 南漢歸路次淸暉閣板上?ㆍ136
헌재 윤도경 심위 에게 보내다 簡獻齋尹道經 心緯ㆍ137
이치숙의 환범헌에서 인서와 모여 함께 삼연의 시에 차운하다 李治叔換凡軒會寅瑞共次三淵?ㆍ138
이치숙이 술을 가지고 왔기에 운자를 불러 시를 짓다 李治叔携酒來呼?ㆍ139
이치숙이 술을 가지고 왔기에 가낭선의 시에서 운자를 뽑아 짓다 李治叔携酒至拈賈浪仙?ㆍ140
영광 군수 서령 낙보 명천 가 초산서원 시판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를 보내왔기에 다시 차운하여 보내다 靈光使君徐令樂甫 命天 寄示所次楚山書院板上?却復次寄ㆍ141
두 번째 其二ㆍ141
이치숙 형제들과 숲속의 단에서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고 또 두기 시의 운자를 뽑아 시를 짓다 同李治叔伯季小飮林下壇又拈杜機?ㆍ143
이치숙과 밤늦도록 당시(唐詩)에 차운하다 同李治叔刻燭次唐人?ㆍ144
숲속의 정자에서 또 당시(唐詩)의 운자를 뽑아 시를 짓다 林下亭又拈唐人?ㆍ145
자양동에서 매화를 보며 당시(唐詩)에 차운하다 紫陽洞看梅次唐人?ㆍ146
남쪽으로 유배 가는 도중에 南遷途中ㆍ147
두 번째 其二ㆍ147
기장 유배지에서 봄을 보내며 이백의 시에 차운하다 機張謫中送春次李白ㆍ148
백씨가 보내온 시에 삼가 차운하다 謹次伯氏寄示?ㆍ149
두 번째 其二ㆍ149
세 번째 其三ㆍ150
구술로 짓다 口占ㆍ151
남 자 운에 화답하여 올리다 和上南字?ㆍ152
두 번째 其二ㆍ152
세 번째 其三ㆍ152
백씨가 보내온 영연 시에 첩운하다 疊伯氏寄嶺沿?ㆍ153
위리안치되던 날 읊다 ?棘日賦ㆍ154
8월 4일 八月四日ㆍ155
밤 夜ㆍ156
인척 민재의 조부가 신임사화 때 우리 조부를 따라 서쪽 변방으로 갔다가 을사년에 임금이 바뀌고서야 비로소 모시고 돌아왔다.……지금을 생각하고 옛일에 느낀 바가 있어 절구 한 수를 지어서 그에게 준다 閔戚 在 之祖父辛壬士禍從我王考于西塞至乙巳改紀始陪還……撫今感古遂成一絶以贈之ㆍ157
이웃 사람이 와서 섬 안에 점을 잘 치는 사람이 있으니 점을 한번 쳐 보라고 하였는데, 내가 죄가 무거워서 감히 점을 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隣人來言島中有善推命者願一問之余謝以罪重不敢ㆍ158
우연히 짓다 偶成ㆍ159
섬 안의 계절을 기록하다 紀島中時候ㆍ160
제야에 보주와 함께 소제가 섬에 귀양 갔을 때 지은 제야 시에 차운하다 除夜同堡主次蘇齊謫島時除夜?ㆍ162
생일날 아침 生朝ㆍ163
종숙부가 사면되어 돌아간 뒤 백씨와 수창한 시에 차운하다 次從叔父宥還後與伯氏酬唱?ㆍ164
종숙부가 사면되어 돌아갈 때 지은 시에 차운하다 次從叔父宥還時?ㆍ165
중양절에 오봉에 유람 갔다가 다음 날 백운산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구술로 짓다 重陽遊五峯翌日入白雲途中口呼ㆍ166
두 번째 其二ㆍ166
남쪽 섬의 의객 노형원에게 써서 주다 書贈南島義客 盧亨源ㆍ167
소산 숙부께 차운하여 올리다 次呈蘇山叔父ㆍ168
두 번째 其二ㆍ168
영종대왕 만장 병신년 英宗大王輓章 丙申ㆍ169
두 번째 其二ㆍ169
세 번째 其三ㆍ170
네 번째 其四ㆍ171
다섯 번째 其五ㆍ172
여섯 번째 其六ㆍ172
일곱 번째 其七ㆍ173
판서 황경원의 부인에 대한 만사 黃判書 景源 夫人挽ㆍ175
내가 서쪽으로 나갈 때에 성상께서 노모를 잘 봉양하라고 누차 말씀하셨는데, 감영에 도착한 지 5일째가 바로 노모의 생신이었다.……율시 한 수를 읊고 제공들에게 함께 화답하기를 청하여 그 일을 성대하게 하였다 賤臣之西出也聖敎屢及於榮養老母上營第五日卽老人生朝也……吟成一律屬諸公同和以張大其事云ㆍ176
자모산성 기해년 慈母山城 己亥ㆍ178
13일 밤에 애련지에서 뱃놀이하다 十三夜汎舟愛蓮池ㆍ179
대전의 춘첩자 신축년 大殿春帖子 辛丑ㆍ180
규장각의 단오첩 奎章閣端午帖ㆍ181
두 번째 其二ㆍ181
규장각의 단오첩 임인년 奎章閣端午帖 壬寅ㆍ182
양사가 합계하여 극률로 논죄했다는 말을 듣고 聞兩司合啓論以極律ㆍ183
9월 15일 새벽에 베갯머리에서 구술로 짓다 九月十五日曉枕口占ㆍ184
걸해소를 봉하여 올리고 나서 구두로 시를 짓고 고정 숙부께 올려 화답을 청하다 封上乞骸疏口占上古亭叔父要和ㆍ185
서윤 서명민에 대한 만사 徐庶尹 命敏 挽ㆍ186
학성군 이유에게 궤장을 하사하는 잔치에 특별히 어제시 두 편을 내리셨고, 왕명을 받들어 화답시를 지어 올렸는데, 학성군이 선대왕과 동갑이기 때문이었다 갑진년 鶴城君 楡 賜?杖宴特降御製詩二篇承命?進以鶴城是先大王同甲也 甲辰ㆍ187
10월 19일 밤 꿈에 백우를 만났는데, 평소처럼 건강한 모습이었다.……꿈을 깨고 나서 서글픔을 견딜 수 없어 마침내 앞뒤 구를 지어 붙여서 편을 완성하였다 十月十九日夜夢遇伯愚神色陽陽如平生……覺來不堪愴然遂足上下句以成篇ㆍ189
직학 정자상 지검 에 대한 만사 을사년 鄭直學子尙 志儉 挽 乙巳ㆍ190
동궁이 개강하던 날 기쁨을 표한 임금의 시에 화답하여 올리다 ?進東宮開講日御製志喜?ㆍ191
능행하던 날 홍화문 밖에서 유진하며 구두로 지어서 전 진사 파총 김양화에게 보여 주고 화답을 요구하다 기유년 陵幸日留陣弘化門外口占視前進士把摠金養和要和 己酉ㆍ192
두 번째 其二ㆍ192
세 번째 其三ㆍ193
판서 서유경에 대한 만사 徐判書 有慶 挽ㆍ194
현륭원에 이장할 때의 만장 기유년 顯隆園遷奉輓章 己酉ㆍ195
두 번째 其二ㆍ196
세 번째 其三ㆍ197
네 번째 其四ㆍ197
임자년 12월 3일 규장각 관원이 만장봉의 청룡동 안으로 어필을 가지고 와서 전해 주기에 두 손으로 받들어 읽어 보니 임금이 지은 칠언절구 한 편이었다.……삼가 하교를 받들어 화답하여 올리다 임자년 壬子十二月三日閣官來宣御筆于萬丈峯之靑龍洞中雙擎奉玩乃御製七言絶句一篇也……謹奉敎?進 壬子ㆍ199
판서 심풍지에 대한 만사 계축년 沈判書 ?之 挽 癸丑ㆍ200
이건지에게 화답하다 和李健之ㆍ202
평해에 찬배되다 갑인년 竄平海 甲寅ㆍ204
두 번째 其二ㆍ204
유배지에서 인척 민재(閔在)를 그리워하며 謫中悼念閔戚ㆍ205
금강산에 유람 갈 때 임금이 지은 전별시에 화답하여 올리다 金剛之行?進御製?行?ㆍ206
저자
저자
김종수
金鍾秀
1728년(영조4)∼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정부(定夫), 호는 몽오(夢梧)ㆍ솔옹(率翁)이며, 홍익필(洪益弼), 김상묵(金尙默), 이유수(李惟秀), 이윤영(李胤永), 이운영(李運永), 이인상(李麟祥), 신사보(申思輔) 등과 교유하였다. 1768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해 세손시강원 필선(世孫侍講院弼善)이 되었는데, 외척의 정치 간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리론이 정조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뒷날 정조의 지극한 신임을 받았다. 1772년 정존겸(鄭存謙)이 김종수 등을 성균관 대사성에 비의(備擬)한 일로 영조의 의심을 받아 관련 인물들이 모조리 귀양 가는 청명당(淸明黨) 사건으로 인하여 금갑도(金甲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종신 금고에 처해졌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영조가 죽고 나서 규장각 제학을 거쳐 1781년 대제학에 올랐고, 1789년 우의정이 되었다. 1793년 좌의정이 되었는데, 당시 영의정이던 남인의 영수 채제공(蔡濟恭)이 사도세자의 무함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다가 정조로부터 탕평에 대한 배신으로 지목되어 1794년 평해군(平海郡)에 유배되었고, 한 달 만에 남해현(南海縣)에 이배되었다. 그해에 12월 특별히 탕척되어 판중추부사에 부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99년 손자 김동선(金東善)의 임지인 포천 관아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1728년(영조4)∼1799년(정조23).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정부(定夫), 호는 몽오(夢梧)ㆍ솔옹(率翁)이며, 홍익필(洪益弼), 김상묵(金尙默), 이유수(李惟秀), 이윤영(李胤永), 이운영(李運永), 이인상(李麟祥), 신사보(申思輔) 등과 교유하였다. 1768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해 세손시강원 필선(世孫侍講院弼善)이 되었는데, 외척의 정치 간여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리론이 정조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뒷날 정조의 지극한 신임을 받았다. 1772년 정존겸(鄭存謙)이 김종수 등을 성균관 대사성에 비의(備擬)한 일로 영조의 의심을 받아 관련 인물들이 모조리 귀양 가는 청명당(淸明黨) 사건으로 인하여 금갑도(金甲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종신 금고에 처해졌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영조가 죽고 나서 규장각 제학을 거쳐 1781년 대제학에 올랐고, 1789년 우의정이 되었다. 1793년 좌의정이 되었는데, 당시 영의정이던 남인의 영수 채제공(蔡濟恭)이 사도세자의 무함을 씻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였다가 정조로부터 탕평에 대한 배신으로 지목되어 1794년 평해군(平海郡)에 유배되었고, 한 달 만에 남해현(南海縣)에 이배되었다. 그해에 12월 특별히 탕척되어 판중추부사에 부직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99년 손자 김동선(金東善)의 임지인 포천 관아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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