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집 3(한국고전번역원 한국문집번역총서)(양장본 Hardcover)
조선 전기의 학자 구봉(龜峯)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의 문집이다. 송익필은 이이(李珥)나 성혼(成渾)이 우러러볼 정도로 학문이 높았으며, 제갈량(諸葛亮)에 비견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과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뉜 붕당의 폐해로 인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한 채 각지를 떠돌며 곤궁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신분의 한계를 뛰어 넘어 평생 동안 사상적으로는 성리학을 연구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예학을 창도하여 이론과 실천의 조화를 꾀하였고, 문학적으로는 이산해, 최경창, 백광훈, 최립, 이순인, 윤탁연, 하응림과 더불어 팔문장(八文章)으로 칭송되었다. 이 책을 통해 송익필 연구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며, 더 나아가 16세기 정치와 사상 및 예학과 문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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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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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예문답禮問答
계함의 물음에 대한 답 答季涵問|호원의 물음에 대한 답 答浩原問|김희원에게 답한 편지 答金希元|숙헌이 서모를 대하는 예에 대해 논하여 성호원에게 보낸 편지 與浩原論叔獻待庶母禮|숙헌의 물음에 답한 편지 答叔獻問|숙헌에게 답한 편지 答叔獻書|숙헌에게 거듭해서 답한 편지 重答叔獻書|호원에게 답한 편지 答浩原書
제7권
가례주설1家禮註說一
서 序|사당 祠堂|심의 深衣|거가잡의 居家雜儀|관례 冠禮|혼례 昏禮
제8권
가례주설2家禮註說二
상례 喪禮|거상잡의 居喪雜儀
제9권
가례주설3家禮註說三
제례 祭禮
제10권
부록附錄
신원소 을축년 伸?疏 乙丑|행장 行狀|병술소 丙戌疏|정해소 丁亥疏|갑자신원소 甲子伸?疏|묘갈문 墓碣文|묘표음기 墓表陰記|제문 경자년 祭文 庚子|제문 계묘년 祭文 癸卯|포증해 주기를 요청하는 서장 경오년 6월 15일 請褒贈狀 庚午六月十五日|신미년 12월 12일의 경연설 辛未十二月十二日筵說|예조의 복달 신미년 12월 15일 禮曹覆達 辛未十二月十五日|이조 정사의 망단자 임신년 1월 11일 吏曹政事望 壬申正月十一日|시집후서 1 詩集後序|시집후서 2|시집후서 3|운장의 시에 차운하다 次雲長韻|송구봉의 〈현승편〉 뒤에 쓰다 書宋龜峯玄繩編後|장계곡이 〈현승편〉에 대해 논박한 것에 대해 변론하는 글 張谿谷駁玄繩編辨
《구봉집》의 지 龜峯集識|김상성(金相聖)ㆍ477
저자
저자
1534(중종29)~1599(선조32).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아버지는 판관(判官) 송사련(宋祀連)이고 어머니는 연일 정씨(延日鄭氏)이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이름나 젊은 나이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할머니가 노비 출신이었던 관계로 금고(禁錮)를 당해 더 이상 과거를 보지 못하고 고양(高陽)의 구봉산(龜峰山) 아래로 옮겨가 살았다. 21세 때 이이(李珥), 성혼(成渾), 정철(鄭澈)을 만나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면서 지냈다. 1586년(선조19) 동인들로부터 '서인의 모주(謀主)'라는 무함을 받아 노비 신세로 전락하게 되자 성과 이름을 바꾼 채 도망쳐 숨어살았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이 일어난 뒤 정철의 도움으로 천인 신분에서 벗어났으나, 정철이 실각한 뒤에는 다시 도피 생활을 하다가 자수하여 평안도 희천(熙川)으로 유배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에 석방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았으며, 1596년 충청남도 당진(唐津)의 마양촌(馬羊村)에 우거하면서 학문을 강론하다가 1599년 66세를 일기로 졸하였다. 그 뒤 1625년(인조3) 천적(賤籍)을 씻었으며, 1751년(영조27) 지평(持平)에 추증되었다. 송익필은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적 제약과 동인과 서인이 대립하는 붕당의 폐해로 인해, 자신의 경륜을 펴지 못한 채 도망자 신세로 떠돌다가 일생을 마쳤다. 그런 가운데서도 송익필은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여 성리학(性理學)과 예학(禮學) 분야에 큰 업적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큰 성취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송익필은 이이ㆍ성혼과 함께 '파주삼현(坡州三賢)'으로, 최경창(崔慶昌)ㆍ백광홍(白光弘) 등과 함께 '팔문장(八文章)'으로, 김시습(金時習)ㆍ남효온(南孝溫)과 함께 '산림삼걸(山林三傑)'로 칭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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