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시경 선생 전기(양장본 Hardcover)
이 책은 주시경의 일생을 분명하면서도 요령있게 들려주고 있다. 말미에는 그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적이연보를 덧붙였다. 이 책이 다시 빛을 보게 된 올해는 마침 주시경 선생 탄생 140주기이다. 이 책의 출간을 통해, 말과 글을 빼앗긴 어둠의 시대에 우리 말과 글의 체계와 법을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치신 선생의 높은 뜻을 되새기고, 그가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한글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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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우리의 언어생활이 세종 임금의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덕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문자를 만들어낸 위대한 업적은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과 글의 체계를 찾고 법을 세운 이는 단연 한힌샘 주 시경周時經(1876-1914)이다. 그는 한글을 과학적으로 개척한 원조였으며,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맞춤법'의 뼈대는 모두 그의 연구에서 비롯되어 체계화되었다. '한글'이라는 말 역시 1908년 주 시경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국어연구학회'의 우리 말 명칭 '배달말글·음'이 '한글모'로 바뀐 데에서 연원한다.
이 책은 주 시경의 제자 김 윤경金允經(1894-1969)이 1960년에 한글학회에서 펴낸 같은 제목의 소책자를 되펴낸 것이다. 스물두 쪽짜리 전기傳記, 그것도 비매품으로 오십육 년 전에 발간되었던 이 책에 다시 주목한 이유는, 짧지만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선각자 주 시경의 일생을 가장 핵심적으로, 그리고 가장 진솔한 언어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국어학자 김 정수는 발문에서 이 책을 되박아 펴내는 일은 "한겨레말의 머뭇하는 말본을 찔러 일으키는 작은 침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 문화의 위인 주 시경을 기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말본을 혁신하고 한겨레말의 특질을 밝히는 데 결코 적지 않게 이바지"할 것이라 쓰고 있다.
가장 학구적이고 진취적이었던 서른아홉 해의 삶
강화도조약이 체결되던 1876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 직후인 1914년에 별세하기까지, 주 시경은 서른아홉 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참으로 굵직한 획을 그은 시대의 위인이었다. 학문에 대한 열정은, 열아홉 살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신학문을 접하면서 시작되었다. 배재학당 지지학地誌學 교사였던 서 재필徐載弼로부터 총애를 받으면서 『독립신문獨立新聞』의 회계 겸 교보원이 되었는데, 서 재필은 국문과 영문으로 발행한 이 신문의 사장 겸 주필이었고, 주 시경은 부책임자로서 국문판의 편집과 제작을 담당하면서, 사실상 모든 실무를 주관했다.
주 시경은 배재학당 만국지지과 및 보통과를 졸업하고, 이후 여러 학교에서 근대 학문을 두루 접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뿐 아니라 항해술, 측량술, 의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독학으로 식물학, 기계학, 종교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토록 박학博學이었던 그는 여러 학교와 강습소, 외국인 연구소 등에서 교사로 일했으며, 인쇄 직공으로, 간호원으로, 학교 사무원으로, 협성회 간부로, 『협성회보』 기자로, 독립신문사의 회계·교보원·총무로, 독립협회의 간부로, 국문동식회와 만민공동회의 조직자 겸 지도자로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분주한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주 시경의 일생을 분명하면서도 요령있게 들려주고 있다. 말미에는 그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적이年譜를 덧붙였다.
주 시경이 일으킨 '우리 말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말 문법(말본)을 최초로 일으킨 이는 주 시경이었다. 이는 세 갈래로 나뉘어 '분석주의'(조사와 어미 등 허사虛辭를 독립적인 낱말로 세우자는 주장), '절충주의'(조사까지만 낱말로 인정하자는 주장), '종합주의'(조사와 어미 등 모든 허사虛辭의 독립성을 부정하는 주장)로 갈라졌으며, 오늘날의 대세는 절충주의이다. 사실, 주 시경은 열일곱 살 때부터 독학으로 우리 말을 연구하기 시작해, 모든 형태소를 철저히 분해하는 분석주의 말본의 시조가 되었고, 그의 제자 김 윤경은 언어의 유형이 종합적인 것에서 분석적인 것으로 발전한다는 일반언어학적인 원리, 그리고 우리 말이 유독 분석적인 언어라는 특질 등을 들어 분석주의의 이론적인 근거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주 시경의 수제자 최 현배의 생각은 달랐다. 이 책의 발문에서 국어학자 김 정수는 이렇게 말한다. "최 현배는 주 시경의 수제자이면서도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말본 체계를 따라 풀이씨(용언)의 구성 요소인 씨끝(어미)을 분리하지 않는 절충주의자가 되었고, '우리 말본'이라는 충실한 체계를 세운 공로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비롯한 말글 규범을 마련하는 1930년대의 학계를 주도했고, 잇달아 광복 직후의 말글 정책을 주관하는 문교부 교과서 편수관의 자격으로 국어 교육의 틀을 잡으면서, 절충주의 말본이 오늘날 국어 교육과 연구의 대세를 휘감은 것이다." 이로 인해서 오늘 우리 말의 체계가 많은 문제를 낳고 있으며, 따라서 "절충주의 말본의 잘못을 고치고 모자름을 채우기 위해서는 주 시경이 일으키고 김 두봉과 김 윤경이 계승한 것으로 끝난 분석주의 말본을 되살리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이 다시 빛을 보게 된 올해는 마침 주 시경 선생 탄생 140주기이다. 이 책의 출간을 통해, 말과 글을 빼앗긴 어둠의 시대에 우리 말과 글의 체계와 법을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치신 선생의 높은 뜻을 되새기고,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의 한글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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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경의 『주 시경 선생 전기』를 열화당에서 되펴내는 일-김 정수
주 시경 해적이年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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