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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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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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너머의 세계, 자연이라는 협업자
조각과 미술사를 전공한 조안 조나스에게 퍼포먼스로의 전환은 단순한 매체 변화를 넘어 물리적 공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의미했다. 시기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듯 보이는 작업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지점이 바로 이 공간에 대한 탐구로, 그는 "그저 공간에 들어가 그 안을 둘러보곤" 하며 "그 안의 모호함과 환영"을 관객들이 어떻게 인식할지를 상상했다고 한다. 이때의 공간은 실내뿐 아니라 실외 역시 포함하는데, 2018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Studio International)』과의 인터뷰에서 조나스는 그에게 풍경이 "작업하고, 움직이고, 촬영하고, 기록하기에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존재하며 서서히 그의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와 더불어 전시와 책이 공통의 주제로 '자연'을 택한 이유는 조안 조나스를 장르적으로 국한하거나 초기 비디오 및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여성주의적 면모로 환원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시와 책의 제목인 '인간 너머의 세계'는 인간과 다른 동식물, 자연 현상을 모두 아우르는 생태적 개념으로, 첫번째 비디오 작업인 〈바람(Wind)〉(1968)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람'부터 중기 비디오 작업 〈화산 이야기(Volcano Saga)〉(1989)의 서사를 형성하는 아이슬란드의 자연 풍경, 그리고 후기 비디오 퍼포먼스 〈육지를 떠나서(Moving Off the Land)〉(2016-2020)와 비디오 조각 〈소리 만지기(To Touch Sound)〉(2024) 속 해양생물로 연결되는 조나스의 자연에 대한 탐구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를 기획한 경기문화재단 학예연구사 김윤서는 정지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언제나 행위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작업의 특성에 주목하며, 조나스가 몸과 공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퍼포먼스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창작의 적극적 요소이자 협업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설명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제목 '인간 너머의 세계'는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배움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계 없이 뻗어 나가는 조나스의 예술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조나스의 예술 전반에 흐르는 근본적인 태도는 "언제나 자연을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그 힘을 창작 행위에 개입시키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렇듯 조나스는 창작의 과정에서 공감과 친밀함의 대상으로서 자연과 협업하며 예술을 생태적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 책은 그 확장의 궤적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조나스의 시선을 함께 체험하도록 이끄는 한편, 그가 지속적으로 환기해 온 기후 위기와 공존의 문제의식에 대해 오늘의 우리가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을 마련한다.
중첩되는 세계의 목소리들
전시는 초기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 실험에 집중한 '실험: 급진적인 순간들'과 이후 다양한 나라로의 여행과 문학을 토대로 구축한 생태적 내러티브를 소개하는 '여행: 자연의 정령·동물 조력자', 그리고 초기작부터 반복 및 변주되어 온 시각적 요소를 2025년 최신작을 포함해 선보이는 '공생: 되살림과 변주'라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책은 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넘나드는 조나스의 작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순차적인 진행을 따르며, 전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작품과 주요 아카이브 자료들을 수록해 조나스의 작품 세계를 더 다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책은 크게 작품과 주요 자료, 다섯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졌다. 그중 작품 부분에서는 발표 연도에 따라 배치한다는 큰 틀 안에서, 동명의 작업이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로 확장되곤 하는 조안 조나스의 작업적 특성을 반영해 하나의 제목 아래 여러 형태의 작업이 묶이게 했다. 과거의 작업이 여러 해 뒤에 다른 버전으로 제작되거나 재구성된 경우에도 병렬해 동일한 모티프가 새롭게 구성되어 가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국내 필진들의 에세이 역시 전시와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전시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들과 함께 필진들 각각의 고유한 시선으로 나아간다. 조나스의 작품 세계 전반을 통찰하는 첫번째 에세이 「상상력과 이성, 그리고 그 사이의 세계」에서 미술사학자 이지은은, 비디오 퍼포먼스 및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 〈사물의 형태, 냄새, 느낌(The Shape, the Scent, the Feel of Things)〉(2004/2006)의 모티프로 등장하기도 했던 미술사가이자 문화연구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가 말하는 창작의 조건, 즉 상상력과 이성 사이의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작가로서 조나스를 조명한다. 필자에 따르면 이 예술은 여러 층위의 시공간을 중첩시키는 형식 안에 인간과 동물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 구현되는 것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생성되는 세계 속에 여러 주체를 엮어 넣는다. 조나스는 거울과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해 관람자의 시선과 공간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했다. 등신대의 거울을 든 여러 명의 퍼포머가 질서와 무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퍼포먼스 〈거울 작업 I(Mirror Piece I)〉(1969)에서 거울로 반사되어 겹쳐지는 조각 난 신체, 비디오카메라와 폐쇄회로 티브이를 활용한 비디오 퍼포먼스 〈오개닉 허니의 시각적 텔레파시(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1972)와 〈오개닉 허니의 버티컬 롤(Organic Honey's Vertical Roll)〉(1972)에서 모니터를 중심으로 중복되는 퍼포머를 바라보며 관객은 '기이한 동시성'을 마주하게 된다. 필자는 프로젝션과 티브이 모니터, 실시간 퍼포먼스를 중첩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이 세계에서 조나스가 또한 비디오를 "인간의 목청으로 구전하는 기술"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목소리는 신화와 문학을 거쳐 '동물 조력자(animal helpers)'들의 목소리로 확장되는데, 동화 속 고정된 여성 이미지를 전복한 퍼포먼스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1976/1977/1978)부터 소형 카메라를 몸에 단 반려견 오주(Ozu)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비디오 〈아름다운 개(Beautiful Dog)〉(2014), 수중식물로 치장해 그 자신이 해양생물이 되어 보인 비디오 퍼포먼스 〈육지를 떠나서〉까지 다종다양한 목소리들을 통해 조나스는 세계의 다중적 차원을 드러낸다.
시적 서사에서 생태 서사로
이어지는 두 편의 에세이 중 「행위의 언어로 쌓아 올린 시적 서사」에서 시인 최재원은, 조나스의 작품 속 원초적이고 시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행위들과 그러한 행위를 바탕으로 구축된 '시적 서사'에 집중한다. 이때의 시적 서사란 "형체 없는 것에 육체를 부여하는 것,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일깨우는 것, 그 사이에서 밀고 당겨지며 변화하는 의미를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조나스는 그 자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휘청이고 그들의 옷가지가 휘날리는 장면을 통해 뚜렷이 감각할 수 있게 하며, 여성의 신체를 거울과 화면에 비추어 젠더 위계와 관음증적인 사회에 얼굴을 부여한다. 이러한 왜곡된 여성상은 그에 가해진 시선을 전복하며 대상화에서 벗어나는데, 대표적인 작품 비디오 〈오개닉 허니의 시각적 텔레파시(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1972)에서 성인용품 가게에서 구매한 가면을 쓴 '오개닉 허니'는 독창적인 유희를 수행하며 가면 속 실제 자아보다도 더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 나아가 필자는 조나스의 작업이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은 채 시적으로 재전유함으로써 의미를 쓰고 다시 쓰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재전유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을 뜻하는 관용어 '모래 위의 선(a line in the sand)'을 복수의 선으로 재해석한 비디오 퍼포먼스 〈모래 위의 선(Lines in the Sand)〉(2002)에서 두드러진다. 조나스는 그리스 신화 속 팜므파탈로 그려졌던 헬레네를 주체적 인간으로 재현한 힐다 둘리틀(Hilda Doolittle)의 『이집트의 헬레네(Helen in Egypt)』에서 영감을 받아 그 스스로 헬레네의 분신이 되어 역사 속 상징들을 현대 문명 위에 새로이 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조나스의 작업은 행위를 통해 의미를 갱신하며 시적 서사를 완성한다.
조나스 작업의 생태적 측면에 주목한 인류학자 노고운은 「'인간 너머'의 세계와 지구타자들」에서 특히 수생 생물을 다룬 대표적인 작업들을 조명한다. 필자에 따르면 물속 세계는 인간이 숨 쉴 수 없는 두려운 공간으로, 따라서 우리는 육지 생물보다 수생 생물에 대한 이해가 더 얕다. 조나스는 이 수생 생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그들 역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임을 밝힌다. 이러한 공감은 형식적 차원에서도 드러나는데, 필자는 조나스가 즐겨 사용하는 '중첩' 방식이 〈육지를 떠나서〉에서 지구 생물의 다종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프로젝션 화면을 배경으로 영상 속 수생 생물과 겹쳐져 움직이는 조나스는 인간과 다른 동식물의 구분을 흐트러뜨리며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다. 이같은 움직임은 고래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비디오 조각 〈소리 만지기〉로 연장되며, 그 작품에서도 역시 조나스는 고래의 언어, 습관, 문화를 탐구한 결과로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허문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에서 해양 생태계 전반으로 연구를 확장한 비디오 퍼포먼스 〈소생(얼음 드로잉)〔Reanimation (Ice Drawing)〕〉(2010/2011/2012)은 바다 오염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관객이 전면을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고 하얀 종이에 검정 잉크를 부어 그 위에서 얼음 조각을 움직이며 서서히 종이를 검정색으로 물들이는 이 작업에 대해 필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과 석유 유출 문제를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태계 파괴로 고통받는 동물의 직접적인 노출 없이도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조나스는 기후 위기에 대한 우리의 시공간적 연결성을 시사한다. 이렇듯 조나스의 작업은 인간 중심의 이원론을 넘어 지구타자들과 감각을 공유하며, 예술적 행위를 통해 생태 서사를 써내려 간다.
예술적 순간, 그리고 작품 뒤에 남겨진 것들
조안 조나스는 평생 드로잉 작업을 병행했는데, 퍼포먼스 도중이나 작업실에서 지구 생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끝없이 반복하는 이 행위들은 마치 자연과 접속하고 대화하려는 예술가의 끈질긴 구도(求道)처럼 보인다. 방대한 드로잉 중 46점을 엄선해 주요 작품 끝에 모아 배치했고, 뒤이어 작품과 연관된 스케치, 포스터, 소품 등 주요 아카이브 자료들을 실었다. 협업과 현장 설치가 필요한 퍼포먼스 특성상 아이디어를 담은 작가 노트, 스크립트 등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미술가 김성환과 조안 조나스의 자전적 에세이가 이어진다. 김성환은 「모양이 되어 버린 돌」에서 1998년 하버드대학교 시각환경학과 수업에서 조나스를 처음 만났던 기억을 돌아본다. 그를 통해 '퍼포먼스 아트'의 세계로 입문했던 경험, 조나스를 상대로 만든 일대일 퍼포먼스, 2002년 조나스의 〈모래 위의 선〉 퍼포먼스에 한 명의 퍼포머로 참여했던 경험 등을 술회한다. 그는 특별히 기억에 남은 일로, 해당 작업의 설치 버전에 포함된 피라미드 앞 여인의 사진이 조나스의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발견된 이미지(found image)'가 예술가와 긴밀히 연결된 개인적 형상임이 드러나는 '발로(發露)'의 순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어느덧 모양이 되어 버리는 과정을, 예술이 표현이 아니라 발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발로의 순간이 가르쳐 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아버지의 유일성 역시 더 넓은 역사와 흐름에 속해 있다는 또 다른 깨달음 안에서 그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선을 그리며 나와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조나스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안 조나스의 에세이 「나만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To Forge One's Own Place)」은 이번 출간을 위해 작가가 보내온 글로, 비디오와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 작업의 시작점, 그리고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와의 기억이 담겼다. 동료 예술가이자 이웃이었던 조안 조나스와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세계에 함께 있으면서도 모니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각각의 고유한 탐색을 존중했다. 조나스는 백남준에 이어 삼 년 뒤 소니 포터팩을 구입했던 순간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처음으로 영상 속 자신을 실시간으로 마주했던 경험, 모니터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여성으로서 수행했던 역할들을 떠올렸던 시간들까지, 비디오의 세계로 접속했던 그 시작을 되돌아본다. 또한 비디오 및 퍼포먼스 작업 〈신기루(Mirage)〉의 탄생과 관련해 그곳의 비디오 큐레이터였던 시게코의 제안으로 뉴욕의 앤솔러지필름아카이브에서 공연을 선보인 기억도 떠올린다. 그에 의하면, 당시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에서 벗어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여성이 비디오와 퍼포먼스라는 또 다른 매체로 이동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에세이는 조나스가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구성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귀한 증언이기도 하다.
조안 조나스의 제8회 백남준 예술상 수상을 기념해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25년 11월 20일부터 2026년 3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창작 워크숍, 북토크 등의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각과 미술사를 전공한 조안 조나스에게 퍼포먼스로의 전환은 단순한 매체 변화를 넘어 물리적 공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의미했다. 시기별로 뚜렷이 구분되는 듯 보이는 작업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지점이 바로 이 공간에 대한 탐구로, 그는 "그저 공간에 들어가 그 안을 둘러보곤" 하며 "그 안의 모호함과 환영"을 관객들이 어떻게 인식할지를 상상했다고 한다. 이때의 공간은 실내뿐 아니라 실외 역시 포함하는데, 2018년 『스튜디오 인터내셔널(Studio International)』과의 인터뷰에서 조나스는 그에게 풍경이 "작업하고, 움직이고, 촬영하고, 기록하기에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존재하며 서서히 그의 "언어의 일부"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와 더불어 전시와 책이 공통의 주제로 '자연'을 택한 이유는 조안 조나스를 장르적으로 국한하거나 초기 비디오 및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온 여성주의적 면모로 환원하지 않기 위함이다. 전시와 책의 제목인 '인간 너머의 세계'는 인간과 다른 동식물, 자연 현상을 모두 아우르는 생태적 개념으로, 첫번째 비디오 작업인 〈바람(Wind)〉(1968)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바람'부터 중기 비디오 작업 〈화산 이야기(Volcano Saga)〉(1989)의 서사를 형성하는 아이슬란드의 자연 풍경, 그리고 후기 비디오 퍼포먼스 〈육지를 떠나서(Moving Off the Land)〉(2016-2020)와 비디오 조각 〈소리 만지기(To Touch Sound)〉(2024) 속 해양생물로 연결되는 조나스의 자연에 대한 탐구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전시를 기획한 경기문화재단 학예연구사 김윤서는 정지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언제나 행위의 과정 속에 놓여 있는 작업의 특성에 주목하며, 조나스가 몸과 공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퍼포먼스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창작의 적극적 요소이자 협업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설명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제목 '인간 너머의 세계'는 "다양한 생명체에 대한 배움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계 없이 뻗어 나가는 조나스의 예술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조나스의 예술 전반에 흐르는 근본적인 태도는 "언제나 자연을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그 힘을 창작 행위에 개입시키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렇듯 조나스는 창작의 과정에서 공감과 친밀함의 대상으로서 자연과 협업하며 예술을 생태적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해 나간다. 이 책은 그 확장의 궤적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조나스의 시선을 함께 체험하도록 이끄는 한편, 그가 지속적으로 환기해 온 기후 위기와 공존의 문제의식에 대해 오늘의 우리가 다시금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을 마련한다.
중첩되는 세계의 목소리들
전시는 초기 퍼포먼스와 비디오아트 실험에 집중한 '실험: 급진적인 순간들'과 이후 다양한 나라로의 여행과 문학을 토대로 구축한 생태적 내러티브를 소개하는 '여행: 자연의 정령·동물 조력자', 그리고 초기작부터 반복 및 변주되어 온 시각적 요소를 2025년 최신작을 포함해 선보이는 '공생: 되살림과 변주'라는 세 가지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책은 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넘나드는 조나스의 작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볼 수 있도록 순차적인 진행을 따르며, 전시에서 볼 수 없는 다른 작품과 주요 아카이브 자료들을 수록해 조나스의 작품 세계를 더 다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책은 크게 작품과 주요 자료, 다섯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졌다. 그중 작품 부분에서는 발표 연도에 따라 배치한다는 큰 틀 안에서, 동명의 작업이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로 확장되곤 하는 조안 조나스의 작업적 특성을 반영해 하나의 제목 아래 여러 형태의 작업이 묶이게 했다. 과거의 작업이 여러 해 뒤에 다른 버전으로 제작되거나 재구성된 경우에도 병렬해 동일한 모티프가 새롭게 구성되어 가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국내 필진들의 에세이 역시 전시와 주제를 공유하면서도 전시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들과 함께 필진들 각각의 고유한 시선으로 나아간다. 조나스의 작품 세계 전반을 통찰하는 첫번째 에세이 「상상력과 이성, 그리고 그 사이의 세계」에서 미술사학자 이지은은, 비디오 퍼포먼스 및 멀티미디어 설치 작업 〈사물의 형태, 냄새, 느낌(The Shape, the Scent, the Feel of Things)〉(2004/2006)의 모티프로 등장하기도 했던 미술사가이자 문화연구자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가 말하는 창작의 조건, 즉 상상력과 이성 사이의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구사하는 대표적인 작가로서 조나스를 조명한다. 필자에 따르면 이 예술은 여러 층위의 시공간을 중첩시키는 형식 안에 인간과 동물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 구현되는 것으로, 계속해서 변화하고 생성되는 세계 속에 여러 주체를 엮어 넣는다. 조나스는 거울과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해 관람자의 시선과 공간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했다. 등신대의 거울을 든 여러 명의 퍼포머가 질서와 무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퍼포먼스 〈거울 작업 I(Mirror Piece I)〉(1969)에서 거울로 반사되어 겹쳐지는 조각 난 신체, 비디오카메라와 폐쇄회로 티브이를 활용한 비디오 퍼포먼스 〈오개닉 허니의 시각적 텔레파시(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1972)와 〈오개닉 허니의 버티컬 롤(Organic Honey's Vertical Roll)〉(1972)에서 모니터를 중심으로 중복되는 퍼포머를 바라보며 관객은 '기이한 동시성'을 마주하게 된다. 필자는 프로젝션과 티브이 모니터, 실시간 퍼포먼스를 중첩하며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이 세계에서 조나스가 또한 비디오를 "인간의 목청으로 구전하는 기술"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목소리는 신화와 문학을 거쳐 '동물 조력자(animal helpers)'들의 목소리로 확장되는데, 동화 속 고정된 여성 이미지를 전복한 퍼포먼스 〈노간주나무(The Juniper Tree)〉(1976/1977/1978)부터 소형 카메라를 몸에 단 반려견 오주(Ozu)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담은 비디오 〈아름다운 개(Beautiful Dog)〉(2014), 수중식물로 치장해 그 자신이 해양생물이 되어 보인 비디오 퍼포먼스 〈육지를 떠나서〉까지 다종다양한 목소리들을 통해 조나스는 세계의 다중적 차원을 드러낸다.
시적 서사에서 생태 서사로
이어지는 두 편의 에세이 중 「행위의 언어로 쌓아 올린 시적 서사」에서 시인 최재원은, 조나스의 작품 속 원초적이고 시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행위들과 그러한 행위를 바탕으로 구축된 '시적 서사'에 집중한다. 이때의 시적 서사란 "형체 없는 것에 육체를 부여하는 것,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일깨우는 것, 그 사이에서 밀고 당겨지며 변화하는 의미를 쓰고 다시 쓰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조나스는 그 자체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휘청이고 그들의 옷가지가 휘날리는 장면을 통해 뚜렷이 감각할 수 있게 하며, 여성의 신체를 거울과 화면에 비추어 젠더 위계와 관음증적인 사회에 얼굴을 부여한다. 이러한 왜곡된 여성상은 그에 가해진 시선을 전복하며 대상화에서 벗어나는데, 대표적인 작품 비디오 〈오개닉 허니의 시각적 텔레파시(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1972)에서 성인용품 가게에서 구매한 가면을 쓴 '오개닉 허니'는 독창적인 유희를 수행하며 가면 속 실제 자아보다도 더 주체적인 존재가 된다. 나아가 필자는 조나스의 작업이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은 채 시적으로 재전유함으로써 의미를 쓰고 다시 쓰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재전유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선'을 뜻하는 관용어 '모래 위의 선(a line in the sand)'을 복수의 선으로 재해석한 비디오 퍼포먼스 〈모래 위의 선(Lines in the Sand)〉(2002)에서 두드러진다. 조나스는 그리스 신화 속 팜므파탈로 그려졌던 헬레네를 주체적 인간으로 재현한 힐다 둘리틀(Hilda Doolittle)의 『이집트의 헬레네(Helen in Egypt)』에서 영감을 받아 그 스스로 헬레네의 분신이 되어 역사 속 상징들을 현대 문명 위에 새로이 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끝없이 뻗어나가는 조나스의 작업은 행위를 통해 의미를 갱신하며 시적 서사를 완성한다.
조나스 작업의 생태적 측면에 주목한 인류학자 노고운은 「'인간 너머'의 세계와 지구타자들」에서 특히 수생 생물을 다룬 대표적인 작업들을 조명한다. 필자에 따르면 물속 세계는 인간이 숨 쉴 수 없는 두려운 공간으로, 따라서 우리는 육지 생물보다 수생 생물에 대한 이해가 더 얕다. 조나스는 이 수생 생물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그들 역시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임을 밝힌다. 이러한 공감은 형식적 차원에서도 드러나는데, 필자는 조나스가 즐겨 사용하는 '중첩' 방식이 〈육지를 떠나서〉에서 지구 생물의 다종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 프로젝션 화면을 배경으로 영상 속 수생 생물과 겹쳐져 움직이는 조나스는 인간과 다른 동식물의 구분을 흐트러뜨리며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다. 이같은 움직임은 고래와 인간의 관계를 다룬 비디오 조각 〈소리 만지기〉로 연장되며, 그 작품에서도 역시 조나스는 고래의 언어, 습관, 문화를 탐구한 결과로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허문다. 그뿐만 아니라, 생물에서 해양 생태계 전반으로 연구를 확장한 비디오 퍼포먼스 〈소생(얼음 드로잉)〔Reanimation (Ice Drawing)〕〉(2010/2011/2012)은 바다 오염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한다. 관객이 전면을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고 하얀 종이에 검정 잉크를 부어 그 위에서 얼음 조각을 움직이며 서서히 종이를 검정색으로 물들이는 이 작업에 대해 필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빙과 석유 유출 문제를 비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생태계 파괴로 고통받는 동물의 직접적인 노출 없이도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조나스는 기후 위기에 대한 우리의 시공간적 연결성을 시사한다. 이렇듯 조나스의 작업은 인간 중심의 이원론을 넘어 지구타자들과 감각을 공유하며, 예술적 행위를 통해 생태 서사를 써내려 간다.
예술적 순간, 그리고 작품 뒤에 남겨진 것들
조안 조나스는 평생 드로잉 작업을 병행했는데, 퍼포먼스 도중이나 작업실에서 지구 생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끝없이 반복하는 이 행위들은 마치 자연과 접속하고 대화하려는 예술가의 끈질긴 구도(求道)처럼 보인다. 방대한 드로잉 중 46점을 엄선해 주요 작품 끝에 모아 배치했고, 뒤이어 작품과 연관된 스케치, 포스터, 소품 등 주요 아카이브 자료들을 실었다. 협업과 현장 설치가 필요한 퍼포먼스 특성상 아이디어를 담은 작가 노트, 스크립트 등은 작품 못지않게 중요하고 흥미로운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미술가 김성환과 조안 조나스의 자전적 에세이가 이어진다. 김성환은 「모양이 되어 버린 돌」에서 1998년 하버드대학교 시각환경학과 수업에서 조나스를 처음 만났던 기억을 돌아본다. 그를 통해 '퍼포먼스 아트'의 세계로 입문했던 경험, 조나스를 상대로 만든 일대일 퍼포먼스, 2002년 조나스의 〈모래 위의 선〉 퍼포먼스에 한 명의 퍼포머로 참여했던 경험 등을 술회한다. 그는 특별히 기억에 남은 일로, 해당 작업의 설치 버전에 포함된 피라미드 앞 여인의 사진이 조나스의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발견된 이미지(found image)'가 예술가와 긴밀히 연결된 개인적 형상임이 드러나는 '발로(發露)'의 순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사물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다 보면 어느덧 모양이 되어 버리는 과정을, 예술이 표현이 아니라 발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발로의 순간이 가르쳐 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아버지의 유일성 역시 더 넓은 역사와 흐름에 속해 있다는 또 다른 깨달음 안에서 그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선을 그리며 나와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조나스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안 조나스의 에세이 「나만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To Forge One's Own Place)」은 이번 출간을 위해 작가가 보내온 글로, 비디오와 퍼포먼스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 작업의 시작점, 그리고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와의 기억이 담겼다. 동료 예술가이자 이웃이었던 조안 조나스와 백남준은 비디오라는 세계에 함께 있으면서도 모니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각각의 고유한 탐색을 존중했다. 조나스는 백남준에 이어 삼 년 뒤 소니 포터팩을 구입했던 순간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처음으로 영상 속 자신을 실시간으로 마주했던 경험, 모니터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여성으로서 수행했던 역할들을 떠올렸던 시간들까지, 비디오의 세계로 접속했던 그 시작을 되돌아본다. 또한 비디오 및 퍼포먼스 작업 〈신기루(Mirage)〉의 탄생과 관련해 그곳의 비디오 큐레이터였던 시게코의 제안으로 뉴욕의 앤솔러지필름아카이브에서 공연을 선보인 기억도 떠올린다. 그에 의하면, 당시 남성이 지배적이었던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에서 벗어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여성이 비디오와 퍼포먼스라는 또 다른 매체로 이동했던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 에세이는 조나스가 예술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구성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귀한 증언이기도 하다.
조안 조나스의 제8회 백남준 예술상 수상을 기념해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25년 11월 20일부터 2026년 3월 29일까지 이어지며, 창작 워크숍, 북토크 등의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자세한 내용은 백남준아트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목차
목차
Preface / Yoonseo Kim
책머리에 / 김윤서
Imagination, Reason, and the World in Between / Jieun Rhee
상상력과 이성, 그리고 그 사이의 세계 / 이지은
A Poetic Narrative Layered through the Language of Action / Jaewon Che
행위의 언어로 쌓아 올린 시적 서사 / 최재원
More-than-Human World and Earthothers / Gowoon Noh
'인간 너머'의 세계와 지구타자들 / 노고운
Works
작품
Sketches, Posters, and Props
스케치, 포스터, 소품
The Stone as in a Shape / Sung Hwan Kim
모양이 되어 버린 돌 / 김성환
To Forge One's Own Place / Joan Jonas
나만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 / 조안 조나스
List of Works
작품 목록
작가 약력
Biography
책머리에 / 김윤서
Imagination, Reason, and the World in Between / Jieun Rhee
상상력과 이성, 그리고 그 사이의 세계 / 이지은
A Poetic Narrative Layered through the Language of Action / Jaewon Che
행위의 언어로 쌓아 올린 시적 서사 / 최재원
More-than-Human World and Earthothers / Gowoon Noh
'인간 너머'의 세계와 지구타자들 / 노고운
Works
작품
Sketches, Posters, and Props
스케치, 포스터, 소품
The Stone as in a Shape / Sung Hwan Kim
모양이 되어 버린 돌 / 김성환
To Forge One's Own Place / Joan Jonas
나만의 자리를 개척하는 일 / 조안 조나스
List of Works
작품 목록
작가 약력
Biography
저자
저자
조안 조나스
조안 조나스(Joan Jonas)는 1936년 출생으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멀티미디어 작가이다.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해 퍼포먼스, 영화, 비디오, 드로잉, 설치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 왔다. 초기 작업에서는 몸과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를 둘러싼 시선과 지각을 통해 여성 정체성을 탐구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신화와 문학을 토대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해 왔다. 이후 자연을 향한 탐구로 작업의 영역을 넓히며, 예술을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생태학적 차원으로 확장했다. 1998년부터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시각예술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MIT 건축·도시계획대학 내 예술·문화·기술 프로그램의 명예교수로 있다. 2015년 제56회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주요 전시로 「노간주나무」 (에인트호번 반아베미술관;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 1979), 「빛, 시간, 이야기들」 (밀라노 피렐리항가르비코카, 2014), 「조안 조나스」 (런던 테이트모던, 2018; 포르투 세랄베스재단현대미술관, 2019), 「조안 조나스: 오십 년의 여정」 (상파울루피나코테카, 2020), 「조안 조나스: 굿 나이트 굿 모닝」 (뉴욕현대미술관, 2024) 등이 있다. 2009년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이 수여한 첫번째 평생공로상을 받았으며, 2018년에 교토상, 2024년에는 백남준 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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