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선물 2
선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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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선물을 통해 조선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다!
선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국왕의 선물』제2권.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특히나 조선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살펴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고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국왕이 신하에 대한 신뢰, 격려, 감사의 뜻을 선물로 표현하고 이에 대해 신하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충성을 서약한 방식을 알아본다.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서부터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동옷과 초구 같은 의복에서 활, 화살, 말, 각종 서적과 문방사보, 약재와 음식물까지 다양한 인물에게 증여한 다양한 선물의 종류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 국왕이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국왕이 사대부와의 공치를 이루어내고 대외적으로 국가권력의 상징성을 견지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선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국왕의 선물』제2권.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특히나 조선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 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살펴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고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국왕이 신하에 대한 신뢰, 격려, 감사의 뜻을 선물로 표현하고 이에 대해 신하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충성을 서약한 방식을 알아본다.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서부터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동옷과 초구 같은 의복에서 활, 화살, 말, 각종 서적과 문방사보, 약재와 음식물까지 다양한 인물에게 증여한 다양한 선물의 종류를 살펴볼 수 있다. 조선 국왕이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국왕이 사대부와의 공치를 이루어내고 대외적으로 국가권력의 상징성을 견지해 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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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국왕과 사대부를 이어 준 선물의 미학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그렇기에 선물에는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어, 달콤한 말과는 다른 어떤 힘을 발휘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열광하고, 그날 전해진 선물은 화이트데이에 또 다른 선물로 변신한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큰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잠을 설치는 것도 선물이 가진 위력과 달콤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우리는 선물의 위력을 매순간 실감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620년 전에 탄생해 5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선 왕조를 이끈 27명의 국왕들은,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사대부에게 일정한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국왕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이들은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역대 국왕들은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에게 선물을 증여했다.
한편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함께 묶어 포상한 경우도 많았다. 선조는 재위 37년인 1604년에 이순신, 권율, 원균, 김시민, 이정암 등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선무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또 역대 조선의 군신 관계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권력 다툼과 연관된 선물 사례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종은 1468년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해 일어난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37명에게 익대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엄청난 물품과 함께 궁중의 술을 내려 주었다.
하지만 국왕의 선물과 관련된 슬픈 역사의 기록도 있다. 단종은 계유정난의 공신들에게 세조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과 그 연좌인들의 집을 내려 주었는데, 즉위년인 1452년 4월 27일에는 명신(名臣) 김종서의 집을 시녀 내은이(內隱伊)에게 내려 주었다. 또한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하여 공신들에게 배분했는데,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된 이들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는데, 윤근수의 《월정만필》을 보면 단종의 왕비 송씨가 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공신비로 삼아서 받으려 한 공신도 있었다.
조선의 국왕들이 이렇게 선물 증여를 통해 신하들에게 신뢰·격려·감사의 뜻을 표현하면, 신하들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국왕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은 신하들은 반드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전(謝恩箋)을 작성하여 올렸다. 도성에 거주할 때는 궁궐로 가서, 국왕이 부르면 사은의 예를 올리고 부르지 않으면 궁궐의 일정한 곳에서 사은례를 올렸다. 사은전에는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했는데, 물품을 하사받은 데 대한 감사와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들여다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은 어떠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국왕의 선물은 관직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기(公器)였다. 때문에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선왕의 뜻을 이으면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었다. 문종은 병약했지만 총명하고 인자한 군주로서,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조선의 국왕은 공신과 대관(大官), 세신(世臣)을 대우하여 국가 권력의 기반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태조는 공신 조준에게 두 번이나 초상을 하사하고 정도전에게 그 찬(贊)을 짓게 하였다. 태종은 공신 하륜에게 궁중의 의원을 내려 보내어 존문(存問)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이천의 온천에 행차했을 때 도승지 이승손 등 시종신에게도 온천욕을 하사했다. 세조는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고 정인지 등 조정 신하들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여 혁명 이후 군신 관계를 새로 맺어나갔다. 예종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고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명했다. 성종은 자신의 장인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내려 주었고, 선왕 이래 서적의 편찬과 문화 창달에 공을 많이 세운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했으며, 외직에 잠시 나가 있었던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려 주었다. 연산군은 좌의정 성준에게 탑호를 내려 주어 변함없는 충성을 요구했으며, 인종도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려 주면서 왕권을 보호해 주길 기대했다. 중종이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린 일, 명종이 조식에게 약재를 내리면서 상경을 종용한 일, 선조가 원접사로 나가는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고 호성공신이면서 향촌에 칩거하고 있는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린 일, 광해군이 자신의 등극에 큰 힘이 되었던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린 일, 인조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린 일, 효종이 성묘하러 가는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한 일, 효종이 세자 시절의 사부 윤선도에게 성균 사예의 벼슬을 주고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한 일과 산림의 거두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한 일, 숙종이 남인의 지도자 허목에게 궤장을 내린 일, 경종이 진주 겸 주청 정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유배되어 섬에 있던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한 일,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보호한 홍국영에게 초피·사모·이엄을 내린 일, 세손 시절의 스승 서명응에게 특별히 고비를 하사한 일, 영조가 이인좌의 난 이후 정국을 안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여 자문했던 정제두에게 낙죽을 수시로 내린 일, 정조가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고 규장각의 각신 이만수에게 목극나막신을 하사한 일, 순조가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한 일, 헌종이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원보 해임의 청을 들어준 일, 철종이 자신을 옹립하는 데 기여한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린 일 등등은 국왕의 편에서 현량(賢亮)한 신하와의 제우(際遇)를 희원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왕은 부마나 종친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도 노력하여, 그 경우 선물을 크게 활용했다. 영조가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국왕은 문치와 중흥을 위해서도 선물을 활용했다.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선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성종은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했고, 명종은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렸다. 세종은 《찬주분류두시》를 편찬케 하고 그 자문에 응한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했다. 성종은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저고리를 하사했다. 인조는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일을 맡은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렸다. 영조는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과 유기그릇을 내려 주었다. 정조는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었다.
국왕은 지방 민간의 삶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질병을 퇴치하고 재해를 막거나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경우 선물을 자주 활용했다. 곧, 문종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렸고, 예종은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렸다. 현종은 유랑민을 잘 구호한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었으며, 숙종은 황해도 연안의 이정암 사우에 은액을 하사했다. 영조는 이인좌를 체포한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해서 백성들의 충성심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잘못된 선물을 내린 일도 있었다. 정종은 격구에 늘 함께 한다는 이유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했고,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었으며,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렸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구로 후금과 전투하러 나가는 강홍립의 군사에게 몸을 덥힐 목면을 하사했다. 인조는 후금의 징병 요구를 거절한 책임을 지고 심양으로 떠나는 최명길에게 갖옷을 내려, 전대(專對)의 책임을 지웠다. 또한 일본의 에도막부가 일광(日光·닛코)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을 모신 사당에 봉헌할 동종을 요구했을 때, 교린의 의리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고려하여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어 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면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조선 국왕은 국왕의 권력과 국가의 주권을 외세에게 넘겨주었기에, 공기(公器)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500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선물은 마음과 마음을 맺어주는 끈이다. 그렇기에 선물에는 주술의 힘이 깃들어 있어, 달콤한 말과는 다른 어떤 힘을 발휘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달콤한 선물을 사기 위해 열광하고, 그날 전해진 선물은 화이트데이에 또 다른 선물로 변신한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에 큰 양말을 걸어 놓고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며 잠을 설치는 것도 선물이 가진 위력과 달콤함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우리는 선물의 위력을 매순간 실감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620년 전에 탄생해 5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조선의 역대 국왕들은 누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했을까?
조선 왕조를 이끈 27명의 국왕들은, 사대부나 외국 사신들에게 증여한 유형무형의 선물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사대부에게 일정한 권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함께 나라를 다스렸다. 그런데 조선시대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국왕으로부터 선물을 받은 이들은 신료, 공신, 종실, 부마, 지방관 등 사대부와 왕실 등 고위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역대 국왕들은 군인, 백성, 귀화인, 외국사절, 자신을 길러준 유모, 궁궐의 시녀에 이르기까지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에게 선물을 증여했다.
한편 특정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들을 함께 묶어 포상한 경우도 많았다. 선조는 재위 37년인 1604년에 이순신, 권율, 원균, 김시민, 이정암 등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선무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또 역대 조선의 군신 관계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권력 다툼과 연관된 선물 사례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예종은 1468년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해 일어난 '남이의 옥사'를 다스리는 데 공을 세운 37명에게 익대공신의 칭호를 내리고, 엄청난 물품과 함께 궁중의 술을 내려 주었다.
하지만 국왕의 선물과 관련된 슬픈 역사의 기록도 있다. 단종은 계유정난의 공신들에게 세조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과 그 연좌인들의 집을 내려 주었는데, 즉위년인 1452년 4월 27일에는 명신(名臣) 김종서의 집을 시녀 내은이(內隱伊)에게 내려 주었다. 또한 조선 조정은 역적의 집과 가솔들을 몰수하여 공신들에게 배분했는데, 여성들도 그 배분의 대상이었다. 역적죄로 몰려 공신들의 여종이 된 이들을 공신비(功臣婢) 혹은 공신비첩(功臣婢妾)이라고 했는데, 윤근수의 《월정만필》을 보면 단종의 왕비 송씨가 관비가 되었을 때 그녀를 공신비로 삼아서 받으려 한 공신도 있었다.
조선의 국왕들이 이렇게 선물 증여를 통해 신하들에게 신뢰·격려·감사의 뜻을 표현하면, 신하들은 문서나 의식, 혹은 행동으로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했다. 국왕으로부터 물품을 하사받은 신하들은 반드시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사은전(謝恩箋)을 작성하여 올렸다. 도성에 거주할 때는 궁궐로 가서, 국왕이 부르면 사은의 예를 올리고 부르지 않으면 궁궐의 일정한 곳에서 사은례를 올렸다. 사은전에는 미사여구를 많이 사용했는데, 물품을 하사받은 데 대한 감사와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국왕의 선물은, 국왕과 신하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였으며 매개물이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500여 년 동안 이런 역할을 해온 선물의 증여를 들여다봄으로써, 정치권력과 선물은 어떠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바람직한 소통 방식과 선물 수수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관한 화두를 던진다.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국왕의 선물은 관직과 마찬가지로 사회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기(公器)였다. 때문에 그것을 어떤 장(場)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국왕의 권력 행사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태조는 동북면에 산재한 조상들의 무덤들을 보살피고 동시에 그 지역의 행정조직을 정비하기 위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렸다. 세종은 선왕의 뜻을 이으면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강역을 확정하기 위해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었다. 문종은 병약했지만 총명하고 인자한 군주로서, 부왕의 뜻을 이어 함길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상중에 있던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주었다.
조선의 국왕은 공신과 대관(大官), 세신(世臣)을 대우하여 국가 권력의 기반을 안정시키려고 하였다.
태조는 공신 조준에게 두 번이나 초상을 하사하고 정도전에게 그 찬(贊)을 짓게 하였다. 태종은 공신 하륜에게 궁중의 의원을 내려 보내어 존문(存問)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이천의 온천에 행차했을 때 도승지 이승손 등 시종신에게도 온천욕을 하사했다. 세조는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고 정인지 등 조정 신하들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여 혁명 이후 군신 관계를 새로 맺어나갔다. 예종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고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명했다. 성종은 자신의 장인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내려 주었고, 선왕 이래 서적의 편찬과 문화 창달에 공을 많이 세운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했으며, 외직에 잠시 나가 있었던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려 주었다. 연산군은 좌의정 성준에게 탑호를 내려 주어 변함없는 충성을 요구했으며, 인종도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려 주면서 왕권을 보호해 주길 기대했다. 중종이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린 일, 명종이 조식에게 약재를 내리면서 상경을 종용한 일, 선조가 원접사로 나가는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고 호성공신이면서 향촌에 칩거하고 있는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린 일, 광해군이 자신의 등극에 큰 힘이 되었던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린 일, 인조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린 일, 효종이 성묘하러 가는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한 일, 효종이 세자 시절의 사부 윤선도에게 성균 사예의 벼슬을 주고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한 일과 산림의 거두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한 일, 숙종이 남인의 지도자 허목에게 궤장을 내린 일, 경종이 진주 겸 주청 정사로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유배되어 섬에 있던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한 일,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자신을 보호한 홍국영에게 초피·사모·이엄을 내린 일, 세손 시절의 스승 서명응에게 특별히 고비를 하사한 일, 영조가 이인좌의 난 이후 정국을 안정시킬 방안을 모색하여 자문했던 정제두에게 낙죽을 수시로 내린 일, 정조가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고 규장각의 각신 이만수에게 목극나막신을 하사한 일, 순조가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한 일, 헌종이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원보 해임의 청을 들어준 일, 철종이 자신을 옹립하는 데 기여한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린 일 등등은 국왕의 편에서 현량(賢亮)한 신하와의 제우(際遇)를 희원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왕은 부마나 종친과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도 노력하여, 그 경우 선물을 크게 활용했다. 영조가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편 국왕은 문치와 중흥을 위해서도 선물을 활용했다. 태종은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선온을 내려 흥을 돋우어, 이후 국왕이 문한(文翰)의 관서에서 행하는 공연에 찬조하는 관례를 만들었다. 성종은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했고, 명종은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렸다. 세종은 《찬주분류두시》를 편찬케 하고 그 자문에 응한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했다. 성종은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저고리를 하사했다. 인조는 《선조실록》을 수정하는 일을 맡은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렸다. 영조는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과 유기그릇을 내려 주었다. 정조는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었다.
국왕은 지방 민간의 삶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 질병을 퇴치하고 재해를 막거나 지역공동체를 결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는데, 그 경우 선물을 자주 활용했다. 곧, 문종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렸고, 예종은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렸다. 현종은 유랑민을 잘 구호한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었으며, 숙종은 황해도 연안의 이정암 사우에 은액을 하사했다. 영조는 이인좌를 체포한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해서 백성들의 충성심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국왕의 권력이 미약하거나 국왕이 혼암하여 잘못된 선물을 내린 일도 있었다. 정종은 격구에 늘 함께 한다는 이유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했고, 단종은 계해정난 이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었으며, 광해군은 부질없이 종계변무의 일을 재차 거론한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렸다.
조선의 국왕은 외교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로 노력하였다. 세종은 명나라에 대해 국격에 맞는 사절을 보내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황화집》을 간행하여 명나라 사신에게 증정했다. 성종은 유구 사신을 칭하는 하카다 출신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려서, 일본, 대마도, 유구와의 외교적 관계를 신중하게 이어나갔다.
광해군은 명나라의 요구로 후금과 전투하러 나가는 강홍립의 군사에게 몸을 덥힐 목면을 하사했다. 인조는 후금의 징병 요구를 거절한 책임을 지고 심양으로 떠나는 최명길에게 갖옷을 내려, 전대(專對)의 책임을 지웠다. 또한 일본의 에도막부가 일광(日光·닛코)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혼을 모신 사당에 봉헌할 동종을 요구했을 때, 교린의 의리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고려하여 그 요구를 들어 주었다.
대한제국의 고종은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하고, 양무위원 이기에 대한 징계를 사면하는 한편, 일제의 압력으로 퇴위하여 상왕이 되어 있을 때는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면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순종은 의병들을 토적으로 규정하고 일본 거주민들을 위문하는 한편,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조선 국왕은 국왕의 권력과 국가의 주권을 외세에게 넘겨주었기에, 공기(公器)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 500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목차
목차
[1권]
책머리에 | 6
1장 태조,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리다 | 14
2장 태조, 공신 조준에게 화상을 하사하다 | 28
3장 정종, 격구에 능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하다 | 38
4장 태종,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을 내리다 | 48
5장 태종, 공신 하륜에게 궁중 의원을 내려 보내다 | 58
6장 세종,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하다 | 70
7장 세종,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다 | 86
8장 세종, 도승지 이승손에게 온천욕을 하사하다 | 104
9장 세종, 중국 사신에게 《황화집》을 선물하다 | 122
10장 문종,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 주다 | 142
11장 문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리다 | 152
12장 단종,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다 | 162
13장 세조,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다 | 176
14장 세조, 정인지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다 | 192
15장 예종,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다 | 206
16장 예종,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하다 | 218
17장 예종,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리다 | 232
18장 성종,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손수 적어서 내려 주다 | 246
19장 성종,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하사하다 | 258
20장 성종,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하다 | 270
21장 성종,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 저고리를 하사하다 | 284
22장 성종,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리다 | 300
23장 성종, 유구 사신을 칭하는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리다 | 314
24장 성종,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하다 | 328
25장 연산군, 좌의정 성준에게 답호를 내리다 | 348
26장 중종,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리다 | 364
27장 인종,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리다 | 380
28장 명종, 조식에게 약재를 내려 보내다 | 394
29장 명종,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리다 | 408
30장 선조, 원접사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다 | 420
31장 선조, 호성공신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리다 | 436
부록1 _ 조선시대 국왕의 선물 증여에 관하여 | 458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 480
도판목록 | 484
참고문헌 | 486
찾아보기 | 498
[2권]
책머리에 | 6
1장 광해군,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리다 | 12
2장 광해군,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리다 | 28
3장 광해군, 강홍립의 군사에게 목면을 하사하다 | 46
4장 인조, 승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리다 | 72
5장 인조, 청나라 심양으로 들어가는 최명길에게 초구를 내리다 | 88
6장 인조,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리다 | 102
7장 인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동종을 선사하다 | 116
8장 효종,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하다 | 130
9장 효종, 사부 윤선도에게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하다 | 144
10장 효종,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하다 | 162
11장 현종,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다 180
12장 숙종, 81세의 허목에게 궤장을 내리다 | 194
13장 숙종, 황해도의 이정암 사우에 편액을 하사하다 | 206
14장 경종, 진주사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하다 | 218
15장 영조, 이인좌를 붙잡은 농민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하다 | 230
16장 영조, 팔십 노인 정제두에게 낙죽을 내리다 | 242
17장 영조,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을 내려 주다 | 258
18장 영조,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하다 | 272
19장 정조, 홍국영에게 사모를 내리다 | 288
20장 정조, 남한산성 수어사 서명응에게 고비를 하사하다 | 304
21장 정조, 검서관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다 | 318
22장 정조, 직제학 이만수에게 나막신을 하사하다 | 340
23장 정조,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다 | 360
24장 순조,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하다 | 378
25장 헌종,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영의정 해임의 청을 들어주다 | 394
26장 철종,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리다 | 412
27장 고종,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했으나 최익현은 받지 않다 | 430
28장 고종, 을사오적 살해에 실패한 이기를 특별 사면하다 | 448
29장 고종,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다 | 464
30장 순종,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다 | 482
부록1 _ 조선의 국왕과 가족 | 488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 494
도판목록 | 498
참고문헌 | 500
찾아보기 | 512
책머리에 | 6
1장 태조,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동옷을 내리다 | 14
2장 태조, 공신 조준에게 화상을 하사하다 | 28
3장 정종, 격구에 능한 조온에게 말 한 필을 하사하다 | 38
4장 태종, 교서관의 홍도연에 궁온을 내리다 | 48
5장 태종, 공신 하륜에게 궁중 의원을 내려 보내다 | 58
6장 세종, 시승 만우에게 옷을 하사하다 | 70
7장 세종,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에게 입고 있던 홍단의를 내려 주다 | 86
8장 세종, 도승지 이승손에게 온천욕을 하사하다 | 104
9장 세종, 중국 사신에게 《황화집》을 선물하다 | 122
10장 문종,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을 기복시키고 의복을 내려 주다 | 142
11장 문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황해도에 벽사약을 내리다 | 152
12장 단종, 김충·인평 등의 집을 양녕대군·효령대군 등에게 내려 주다 | 162
13장 세조, 신숙주에게 소주 다섯 병을 부치다 | 176
14장 세조, 정인지에게 춘번자 삽모를 하사하다 | 192
15장 예종, 유자광에게 초구 한 벌을 내려 주다 | 206
16장 예종, 공신들의 비를 세워 주라고 하다 | 218
17장 예종, 호랑이를 쏘아 바친 적성현 정병에게 동옷 한 벌을 내리다 | 232
18장 성종, 한명회에게 압구정시를 손수 적어서 내려 주다 | 246
19장 성종, 주자청 당상관 이유인에게 놋쇠솥을 하사하다 | 258
20장 성종, 달성군 서거정에게 호피를 하사하다 | 270
21장 성종, 천문학원 이지영에게 명주 저고리를 하사하다 | 284
22장 성종, 영안도 관찰사 허종에게 보명단을 내리다 | 300
23장 성종, 유구 사신을 칭하는 일본인에게 조선의 토산품을 내리다 | 314
24장 성종, 독서당의 문신들에게 수정배를 선물하다 | 328
25장 연산군, 좌의정 성준에게 답호를 내리다 | 348
26장 중종, 홍문관 수찬 조광조에게 털요 한 채를 내리다 | 364
27장 인종, 좌의정 홍언필에게 산증의 처방약을 내리다 | 380
28장 명종, 조식에게 약재를 내려 보내다 | 394
29장 명종, 신하들에게 서총대 연회를 내리다 | 408
30장 선조, 원접사 이이에게 호피를 내려 주다 | 420
31장 선조, 호성공신 유성룡에게 백금을 내리다 | 436
부록1 _ 조선시대 국왕의 선물 증여에 관하여 | 458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 480
도판목록 | 484
참고문헌 | 486
찾아보기 | 498
[2권]
책머리에 | 6
1장 광해군, 좌의정 정인홍에게 표석을 내리다 | 12
2장 광해군, 허균에게 녹비 한 장을 내리다 | 28
3장 광해군, 강홍립의 군사에게 목면을 하사하다 | 46
4장 인조, 승지 이경석에게 황감 열 개를 내리다 | 72
5장 인조, 청나라 심양으로 들어가는 최명길에게 초구를 내리다 | 88
6장 인조, 이식에게 도원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를 내리다 | 102
7장 인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에 동종을 선사하다 | 116
8장 효종, 김육에게 요전상을 하사하다 | 130
9장 효종, 사부 윤선도에게 역마를 타고 올라오게 하다 | 144
10장 효종, 송시열에게 《주자어류》를 내사하다 | 162
11장 현종, 광주목사 오두인에게 말을 내려 주다 180
12장 숙종, 81세의 허목에게 궤장을 내리다 | 194
13장 숙종, 황해도의 이정암 사우에 편액을 하사하다 | 206
14장 경종, 진주사 이건명에게 안구마를 하사하다 | 218
15장 영조, 이인좌를 붙잡은 농민 신길만에게 상현궁을 하사하다 | 230
16장 영조, 팔십 노인 정제두에게 낙죽을 내리다 | 242
17장 영조, 기술자 최천약에게 은그릇을 내려 주다 | 258
18장 영조, 부마 황인점에게 저택을 선물하다 | 272
19장 정조, 홍국영에게 사모를 내리다 | 288
20장 정조, 남한산성 수어사 서명응에게 고비를 하사하다 | 304
21장 정조, 검서관 이덕무에게 웅어와 조기를 내려 주다 | 318
22장 정조, 직제학 이만수에게 나막신을 하사하다 | 340
23장 정조, 정약용에게 《시경》의 문제를 숙제로 내다 | 360
24장 순조, 국구 김조순에게 내구마로 시상하다 | 378
25장 헌종, 4년 만에 권돈인에게 영의정 해임의 청을 들어주다 | 394
26장 철종, 정원용의 회혼례에 장악원의 이등악을 내리다 | 412
27장 고종, 최익현에게 돈 3만 냥을 선물했으나 최익현은 받지 않다 | 430
28장 고종, 을사오적 살해에 실패한 이기를 특별 사면하다 | 448
29장 고종, 유길준에게 용양봉저정을 하사하다 | 464
30장 순종, 일본군 주차사령부에 1,000원을 하사하다 | 482
부록1 _ 조선의 국왕과 가족 | 488
부록2 _ 이 책에서 다룬 국왕의 선물 증여 | 494
도판목록 | 498
참고문헌 |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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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심경호
저자 심경호는 1955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일본 교토대(京都大)에서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와 강원대 국문과 조교수를 거쳤으며, 2012년 지금은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2010년 4월에는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 1년 동안 메이지대(明治大) 객원교수로 지내면서, 한일 문학 및 문화교류에 기여하기도 했다.
2002년 성산학술상과 2006년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에 이어, 한국학술진흥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로 뽑혔다. 그 뒤 2010년 11월 우호인문학 학술상을 받았으며, 2011년 11월에는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한시기행》, 《산문기행》, 《내면기행》, 《한학입문》,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등이 있다. 역서로는 《금오신화》, 《당시읽기》, 《한자학》, 《중국자전문학》, 《역주 원중랑집》, 《한자, 백가지 이야기》, 《중국 고전시, 계보의 시학》 등이 있다.
2002년 성산학술상과 2006년 일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 선생 기념 제1회 동양문자문화상에 이어, 한국학술진흥재단 선정 제1회 인문사회과학 분야 우수학자로 뽑혔다. 그 뒤 2010년 11월 우호인문학 학술상을 받았으며, 2011년 11월에는 연민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한시의 서정과 시인의 마음》, 《여행과 동아시아 고전문학》, 《김시습평전》, 《한시기행》, 《산문기행》, 《내면기행》, 《한학입문》,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 책 몰래 고치는 사람》, 《책, 그 무시무시한 주술》 등이 있다. 역서로는 《금오신화》, 《당시읽기》, 《한자학》, 《중국자전문학》, 《역주 원중랑집》, 《한자, 백가지 이야기》, 《중국 고전시, 계보의 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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