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
문화수용전략에 관한 융합적 연구 -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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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개항의 시대’를 맞이한 동북아 3국의 선택
대한제국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10년에 강제병합 당한 것은 ‘문화’가 ‘문명’과의 대결에서 참패한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천문학 지식을 수용한 이래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를 교훈 삼아 해군 건설에 나선 것도, 일본이 1854년 ‘흑선黑船’을 몰고 다시 나타난 페리 제독에게 개항을 허락하고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막말의 ‘지사志士’들이 문명개화로 방향을 바꾼 것도 모두 문명의 막강한 힘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의 동북아시아는 분노에 떨면서, 그리고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문화수용전략이 나타나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과연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대한제국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1910년에 강제병합 당한 것은 ‘문화’가 ‘문명’과의 대결에서 참패한 사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천문학 지식을 수용한 이래 아편전쟁에서의 패배를 교훈 삼아 해군 건설에 나선 것도, 일본이 1854년 ‘흑선黑船’을 몰고 다시 나타난 페리 제독에게 개항을 허락하고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막말의 ‘지사志士’들이 문명개화로 방향을 바꾼 것도 모두 문명의 막강한 힘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19세기 중반의 동북아시아는 분노에 떨면서, 그리고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서양 문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과정에서 본연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문화수용전략이 나타나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과연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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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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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받아들이냐 마느냐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곳의 관습에 따라 산다.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권에서 오래 살다 보면 당연히 그곳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갓 태어난 아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될 때 어색해한다. 특히 문명개화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과학'과 '개혁,' 그리고 '개방'을 등에 업은 '근대 사회'는 사람들한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문화수용과정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익숙한 문화를 전부 낡아빠졌다면서 새로운 것을 억지로 주입한다면 그에 대한 거부감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한의학을 기반으로 개발되어 접종해 온 종두법(천연두 예방법)인 '인두법'이 있었는데, 20세기가 되기 전 새로운 접종법인 '우두법'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종두법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부정되었고, 하물며 인두법을 발전시켰던 한의학 또한 미신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로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들여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조선에서 위생 경찰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결국 사람들한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 제도는 대한제국 시기 견고한 국가적 방역 체제의 구축을 위해 강력한 경찰 조직과 경찰력을 이용하는 행정 시스템으로서 창설되었으나, 경찰과 헌병은 전염병 환자를 찾아낸다는 명분으로 환자로 의심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구금하고 감시하면서 백성들을 삼엄하게 통제했다. 이처럼 '근대'의 과학은 삶을 이롭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로 이용도 했지만 종종 소수의 문명개화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별다른 문제 없이 유지되어 오던 것들을 졸지에 미신적인 데다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무서운 권력이 되었다.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중체서용의 성공과 실패
19세기 중후반에 동북아시아는 위압적인 서양 문명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끝까지 문화수용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야 했고, 외래 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는 사람들조차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감당해야 할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현실에 분노했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시아 주요 3국은 각자 상황이 다른 만큼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도 퍽 달랐다. 다만 강압적인 과정 가운데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수용전략의 양상 자체는 비슷했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실제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패하기 전까지 조선과 중국에 무력을 행사하고 강압적인 식민 정책을 펼치는 등 위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일본이 택한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처음 생각했던 대로 그들의 뿌리를 잃지 않고 원하는 만큼 선택적으로 외래의 것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개항을 받아들인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파도와 그 저변에 깔린 복잡한 마음
어떤 것이든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에 있던 것도 변한다. 19세기 말 존왕양이를 주장하던 유신지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의 숙장이었던 요시다 쇼인은 '몸은 비록 무사시武藏의 들판에 있지만, 스러지지 않고 마음에 새겨진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설파했다. 그러나 본연의 자리를 고수하며 세력을 지킨다는 그의 주장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싸운 막부 말의 번주들과 지사들 중 결국 일부는 물러나고 다른 일부는 새로운 세력과 영합하여 신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외래 문명이라는 파도를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태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기반으로 공동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화혼양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한 것으로,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민과 실천, 비판과 지지, 선택과 거부 등을 포함한 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를 살펴보고자 했다. 좁게는 서양의 것을 선택적으로 고른 후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상품인 일본의 앙꼬빵과 세븐일레븐부터 크게는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야마토다마시'가 군국주의와 영합하면서 변질된 사상과 근대화가 영향을 끼친 정치 제도, 산업혁명, 제철 산업, 그리고 과학까지 폭넓게 다룬다. 파도가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 '수용'은 모든 분야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곳의 관습에 따라 산다. 긴 세월에 걸쳐 형성된 문화권에서 오래 살다 보면 당연히 그곳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갓 태어난 아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될 때 어색해한다. 특히 문명개화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과학'과 '개혁,' 그리고 '개방'을 등에 업은 '근대 사회'는 사람들한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문화수용과정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것이라면, 그리고 익숙한 문화를 전부 낡아빠졌다면서 새로운 것을 억지로 주입한다면 그에 대한 거부감은 몇 배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한의학을 기반으로 개발되어 접종해 온 종두법(천연두 예방법)인 '인두법'이 있었는데, 20세기가 되기 전 새로운 접종법인 '우두법'이 들어오면서 기존의 종두법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부정되었고, 하물며 인두법을 발전시켰던 한의학 또한 미신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로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들여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조선에서 위생 경찰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결국 사람들한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 제도는 대한제국 시기 견고한 국가적 방역 체제의 구축을 위해 강력한 경찰 조직과 경찰력을 이용하는 행정 시스템으로서 창설되었으나, 경찰과 헌병은 전염병 환자를 찾아낸다는 명분으로 환자로 의심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구금하고 감시하면서 백성들을 삼엄하게 통제했다. 이처럼 '근대'의 과학은 삶을 이롭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로 이용도 했지만 종종 소수의 문명개화론자들을 제외한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별다른 문제 없이 유지되어 오던 것들을 졸지에 미신적인 데다가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무서운 권력이 되었다.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중체서용의 성공과 실패
19세기 중후반에 동북아시아는 위압적인 서양 문명에 분노를 느끼는 동시에 그 격차에 경탄하면서 강제로 받아들여야 했다. 끝까지 문화수용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져야 했고, 외래 문화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는 사람들조차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감당해야 할 변화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급박한 현실에 분노했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시아 주요 3국은 각자 상황이 다른 만큼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도 퍽 달랐다. 다만 강압적인 과정 가운데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양의 진보한 기술과 제도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자는 수용전략의 양상 자체는 비슷했는데, 바로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그리고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이었다.
이 중에서도 화혼양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부국강병에 성공하게 만든 요인으로 높게 평가되어왔다. 실제로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을 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패하기 전까지 조선과 중국에 무력을 행사하고 강압적인 식민 정책을 펼치는 등 위세를 펼쳤다. 그러나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일본이 택한 화혼양재는 중체서용이나 동도서기와 크게 다른 것이었을까? 처음 생각했던 대로 그들의 뿌리를 잃지 않고 원하는 만큼 선택적으로 외래의 것을 수용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어떤 차이점이 있어서 일본은 '성공'했고 중국과 조선은 '실패'했던 것일까? 개항을 받아들인 이들은 '위정척사衛正斥邪'와 무엇이 그렇게 달랐을까?
거부할 수 없는 문명의 파도와 그 저변에 깔린 복잡한 마음
어떤 것이든 시간이 흐르면 제자리에 있던 것도 변한다. 19세기 말 존왕양이를 주장하던 유신지사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학당 쇼카손주쿠松下村塾의 숙장이었던 요시다 쇼인은 '몸은 비록 무사시武藏의 들판에 있지만, 스러지지 않고 마음에 새겨진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설파했다. 그러나 본연의 자리를 고수하며 세력을 지킨다는 그의 주장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치열하게 싸운 막부 말의 번주들과 지사들 중 결국 일부는 물러나고 다른 일부는 새로운 세력과 영합하여 신정부를 세웠던 것처럼, 외래 문명이라는 파도를 억지로라도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근대화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태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과 질문을 기반으로 공동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화혼양재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시도한 것으로,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민과 실천, 비판과 지지, 선택과 거부 등을 포함한 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를 살펴보고자 했다. 좁게는 서양의 것을 선택적으로 고른 후 현지화 전략에 성공한 상품인 일본의 앙꼬빵과 세븐일레븐부터 크게는 요시다 쇼인이 주창한 '야마토다마시'가 군국주의와 영합하면서 변질된 사상과 근대화가 영향을 끼친 정치 제도, 산업혁명, 제철 산업, 그리고 과학까지 폭넓게 다룬다. 파도가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처럼 결국 '수용'은 모든 분야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목차
목차
머리말
제1부 왜 화혼양재를 알아야 하는가?
제1장·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1. 중국에서도 배울 것이 없었던 문화국가, 식민지로 전락하다
2. 문화수용전략이라는 관점
3. 화혼양재는 성공한 문화수용전략이었는가?
4. 화혼양재는 의미가 불분명해야만 했다? 상징과 슬로건으로서의 화혼양재
5. 이 책의 구성
제2장·산업혁명과 이데올로기로서의 화혼양재-이제는 지식산업혁명으로
1.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2. 일본의 산업화
3. 선발국의 산업혁명 vs 후발국의 산업혁명
4. 화혼양재(和魂洋才)
제3장·화혼양재의 계보와 의미 변환-화혼한재와 야마토다마시, 그리고 야마토고코로
1. '화(和)'란 무엇인가?
2. '화혼' 또는 '야마토다마시'의 행로
3. '화혼양재': '화혼'과 외래 문화의 수용
4. 결론에 대신하여: 화혼양재에 대한 질문과 해석
제2부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현장과 사례 연구
제4장·국가의 정치제도와 근대 국가 건설과정의 화혼양재
-봉건론과 군현론의 줄타기와 한재(漢才)
1. 막말 유신기의 봉건·군현론-한재(漢才)에서 화혼양재로
2.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군현론
3. 왕정복고는 군현제? '막부의 봉건'에서'천황의 봉건'으로
4. 판적봉환(版籍奉還): 봉건과 군현 사이의 줄타기
5. 폐번치현과 군현의 설득: "서양 각국은 모두 군현"
제5장·일본의 산업화 초기의 화혼양재-제철산업과 근대화에 대한 검토
1. 화혼양재의 흔적을 찾아서
2. 도쿠가와 시대의 제련 산업
3. 막부 말기 서양 제철 기술의 도입
4. 메이지 유신 초기의 산업화
5. 일본 산업 발전기와 철강 산업
6. 일본 초기 산업화 과정과 성공 요인
제6장·외국 유통업 세븐일레븐의 도입 과정에서 본 화혼양재
1. 서양의 기업을 화혼의 기업으로?
2. 세븐일레븐 재팬의 성공 요인
3. 세븐일레븐 재팬을 통해 본 화혼양재
제7장·동도서기론적 과학 인식
-17~19세기 중국과 조선에서 만난 이질적인 두 과학
1.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과학'은 서양의 '과학'을 어떻게 대했을까?
2.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적' 수용: 첫 만남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3. 조선 학인들의 과학담론
4. 서양 과학을 '과학'으로 수용하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근대 과학의 형성
맺음말·위장척사와 동도서기, 그리고 중체서용은 과연 실패한 전략이었는가?
참고문헌
제1부 왜 화혼양재를 알아야 하는가?
제1장·문화수용전략으로서의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그리고 위정척사
1. 중국에서도 배울 것이 없었던 문화국가, 식민지로 전락하다
2. 문화수용전략이라는 관점
3. 화혼양재는 성공한 문화수용전략이었는가?
4. 화혼양재는 의미가 불분명해야만 했다? 상징과 슬로건으로서의 화혼양재
5. 이 책의 구성
제2장·산업혁명과 이데올로기로서의 화혼양재-이제는 지식산업혁명으로
1.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2. 일본의 산업화
3. 선발국의 산업혁명 vs 후발국의 산업혁명
4. 화혼양재(和魂洋才)
제3장·화혼양재의 계보와 의미 변환-화혼한재와 야마토다마시, 그리고 야마토고코로
1. '화(和)'란 무엇인가?
2. '화혼' 또는 '야마토다마시'의 행로
3. '화혼양재': '화혼'과 외래 문화의 수용
4. 결론에 대신하여: 화혼양재에 대한 질문과 해석
제2부 화혼양재와 동도서기: 현장과 사례 연구
제4장·국가의 정치제도와 근대 국가 건설과정의 화혼양재
-봉건론과 군현론의 줄타기와 한재(漢才)
1. 막말 유신기의 봉건·군현론-한재(漢才)에서 화혼양재로
2. 도쿠가와 시대의 봉건·군현론
3. 왕정복고는 군현제? '막부의 봉건'에서'천황의 봉건'으로
4. 판적봉환(版籍奉還): 봉건과 군현 사이의 줄타기
5. 폐번치현과 군현의 설득: "서양 각국은 모두 군현"
제5장·일본의 산업화 초기의 화혼양재-제철산업과 근대화에 대한 검토
1. 화혼양재의 흔적을 찾아서
2. 도쿠가와 시대의 제련 산업
3. 막부 말기 서양 제철 기술의 도입
4. 메이지 유신 초기의 산업화
5. 일본 산업 발전기와 철강 산업
6. 일본 초기 산업화 과정과 성공 요인
제6장·외국 유통업 세븐일레븐의 도입 과정에서 본 화혼양재
1. 서양의 기업을 화혼의 기업으로?
2. 세븐일레븐 재팬의 성공 요인
3. 세븐일레븐 재팬을 통해 본 화혼양재
제7장·동도서기론적 과학 인식
-17~19세기 중국과 조선에서 만난 이질적인 두 과학
1.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과학'은 서양의 '과학'을 어떻게 대했을까?
2. 서양 과학의 '동아시아적' 수용: 첫 만남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3. 조선 학인들의 과학담론
4. 서양 과학을 '과학'으로 수용하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근대 과학의 형성
맺음말·위장척사와 동도서기, 그리고 중체서용은 과연 실패한 전략이었는가?
참고문헌
저자
저자
한경구
서울대 인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사학과에서 수학했다. 외무부에 근무했고 해군 장교로 병역을 마쳤으며 일본에서 장기 현지조사를 수행하여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원대 인류학과와 국민대 국제학부를 거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 편집위원장, 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장, 한국이민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공동체로서의 회사』, 『세계의 한민족: 아시아·태평양』등의 저서, 『인류학 민족지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공저서가 있고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등을 책임 편집했으며 『국경을 넘는 방법: 문화, 문명, 국민국가』 등을 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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