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쑨원 유언의 작성 과정과 그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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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쑨원의 유언에 대한 뒤늦은 의문
"내가 국민혁명에 힘 쏟기를 40년, 그 목적은 중국의 자유와 평등을 구함에 있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반드시 민중을 환기시키고 세계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대하는 민족과 연합하여 함께 분투해야 한다.
현재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무릇 우리 동지들은 모름지기 내가 저술한 건국방략, 건국대강, 삼민주의, 그리고 제1차전국대표대회선언에 의거하여 계속 노력해 혁명을 관철하길 바란다.
최근 주장한 국민회의 개최와 불평등조약 폐지는 더욱 최단기간 내에 실현하기를 촉구한다."
이 쑨원의 유언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성되었는지, 유언의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다. 다만 당시 주변 인물들의 회고를 근거로 유언을 누가 썼는지를 밝히는 글이 있기는 하나, 근거로 하는 회고조차도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료집이나 연보의 '조작'에 대해 꽤 장황하게 다루었다. 역사의 실제를 온전히 복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방법은 '실증'이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사료의 직접 인용을 많이 했다.
쑨원의 유언이 작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쑨원의 병세가 심해지자 1925년 2월 24일 왕징웨이汪精衛가 미리 준비한 유언을 병상의 쑨원에게 읽어 주니 쑨원이 이에 찬성했다는 내용이 기왕의 통설이다. 그런데 저자는 병실에서 이루어진 이 「쑨원과 왕징웨이 등과의 대담」의 끝맺음에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유언을 읽어 드리겠다고 하자 쑨원이 "읽어 보세요" 하고는 대화가 끝나 버리는데, 저자는 쑨원이 유언에 대한 찬부 표명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의문에서 시작된 쑨원 유언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유언이 작성되었음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유언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 북상 시기의 쑨원과 국민당에 대한 실질을 보여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쑨원이 '없는' 국민당과 쑨원의 유언
이 책은 쑨원이 북상선언(1924. 11. 10.) 후 상하이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가, 톈진을 경유한 뒤 베이징에 입성하여 생을 마감할 때(1925. 3. 12.)까지의 약 4개월을 다룬다. 이 시기는 쑨원이 혁명을 시작한 이래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빼 버리고, '민의를 반영하는 국민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북상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북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는 동맹자들과 함께 혁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쑨원은 반직전쟁 승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실제 전쟁 과정에서의 역할은 그다지 없었다. 쑨원은 북상에 앞서 시국 해결책으로 국민회의 개최를 선언했다.
쑨원의 북상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다. 별로 없다기보다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연구는 거의 모두 "군벌들과 싸우기 위해 '국민회의 개최'라고 쓴 깃발을 들고 단기필마로 북으로 올라가는 쑨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쑨원의 북상을 국민회의가 감싸고 있는 듯하다.
1924년 1월 말 소비에트 러시아와 쑨원 사이에 이른바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연아聯俄). 이는 쑨원의 혁명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연아'는 외부와의 충돌뿐만 아니라 국민당 내부와 쑨원 측근들 속에서도 충돌했다. 그러나 톈진 도착 후 예기치 못한 쑨원의 발병과 병세의 악화 속에서 이 내분은 점차 '쑨원이 없는 국민당'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내분은 점차 권력다툼이 되어 쑨원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그 양상은 확대되었다. 근본적으로는 쑨원의 뜻이 국민당의 결정이라는 조직적 결함이 내분과 권력다툼을 더욱 조장했다. 쑨원의 유언 속에는 국민당의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25년 2월 24일 병실에서 유언을 청하는 왕징웨이에게 쑨원은 "이미 나의 저술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왕징웨이는 그 자리에서 쑨원이 1923년 10월 국민당 간친대회에 보낸 제사題詞를 인용하여 유언의 한 구절을 작성했다.
"현재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무릇 우리 동지들은 (중략) 계속 노력해 혁명을 관철하길 바란다."
이 대련對聯이 당원들의 분투를 요구하는 전략적 선전으로 쓰였기에 왕징웨이가 쑨원의 유언에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왕징웨이에게도 국민당은 이제 '쑨원이 없는 국민당'이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미래 권력을 잡는 데 '쑨원이 있는 국민당'이라면 더욱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왕징웨이는, 병실에서의 유언 작성에서 쑨원으로부터 소기의 성과를 얻어 내어 유언의 마지막 구절을 만들었다.
"최근 주장한 국민회의 개최와 불평등조약 폐지는 더욱 최단기간 내에 실현하기를 촉구한다."
쑨원의 유언은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전반부와 병실에서 추가한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유언을 마무리한 후 왕징웨이는 쑨원의 서명을 받고자 했으나,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쑹칭링의 울음소리에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서 나온 왕징웨이는 베이징반점에서 열린 정치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병실에서의 대화 내용을 정치위원회 위원들에게 전했다. 이어 오후 4시 25분 왕징웨이는 병실에서의 대화를 대화체 형식의 문장으로 소략하게 만들었다(「집외집 문건」). 「집외집 문건」 말미에 함께 병실에 들어간 세 사람(쑹쯔원, 쿵샹시, 쑨커), 그리고 당시 병실 밖에서 대화를 들었던 쩌우루가 증명자로 서명했다. 따라서 2월 24일에 만들어진 문건은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유언에 병실에서 보충하여 완성된 국사유언, 병실 밖에서 미리 준비한 가사유언, 그리고 병실 밖에서 만들어진 「집외집 문건」 이렇게 3개가 있는 셈이다.
아무튼 왕징웨이가 쑨원과 단독으로 대화한 것이 아니라 병실에 함께 들어간 세 사람이 있고, 이들이 유언 작성 과정을 직접 봤고, 쑹쯔원은 가사유언 작성에도 참여했다. 굳이 서명까지 받아야 할 '증명서'가 왜 필요했을까. 어찌 보면 왕징웨이가 유언에 대해 매우 '집착'하는 듯하다. 사실 유언에 대한 '왕징웨의의 집착'이 이 책의 출발이다.
쑨원은 혁명가였다
이 책은 쑨원의 유언이 만들지기까지의 과정을 밝히는 한편, 유언의 내용에 함축된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쑨원의 북상'까지 들여다보았다. 이에 대한 연구는 진작 밝혀졌어야 할 주제인데도 너무도 단순하게, '민의를 담은 국민회의를 개최하기 위해 군벌에 맞서 북상한 혁명가 쑨원'으로 쑨원의 북상을 정형화해 버리는 바람에 연구의 빈 공간이 생긴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넓게는 쑨원 연구, 근대 중국의 혁명사 연구가 '민중과 결합한 혁명'이라는 틀 속에서만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보았다. 민중에 선전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이를 통해 혁명을 추진한다는 틀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를 어느 때,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저자의 일침이 따끔하다.
쑨원 서세 직후 광저우에 건립된 국민정부는 쑨원의 우려를 실천하려는 듯이 끊임없는 권력투쟁을 이어 갔다. 권력투쟁 중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부정하기 위해 늘 쑨원의 유언을 서로 내세웠지만, "국민정부는 훈정기의 혁명정부이므로 혁명당인 국민당의 당원은 헌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혁명에 종사하고 관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대련의 뜻을 이어 가지 않았다. 대륙에서 국민당이 몰락한 첫째 원인은 중국공산당이나 제국주의보다 그 자신에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 나아가 전 세계가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 독성의 농약을 서로 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친환경농법이라고 할 수 있는 쑨원의 혁명정신이 여전히 요구되는 바이다.
"내가 국민혁명에 힘 쏟기를 40년, 그 목적은 중국의 자유와 평등을 구함에 있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반드시 민중을 환기시키고 세계에서 우리를 평등하게 대하는 민족과 연합하여 함께 분투해야 한다.
현재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무릇 우리 동지들은 모름지기 내가 저술한 건국방략, 건국대강, 삼민주의, 그리고 제1차전국대표대회선언에 의거하여 계속 노력해 혁명을 관철하길 바란다.
최근 주장한 국민회의 개최와 불평등조약 폐지는 더욱 최단기간 내에 실현하기를 촉구한다."
이 쑨원의 유언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작성되었는지, 유언의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적다. 다만 당시 주변 인물들의 회고를 근거로 유언을 누가 썼는지를 밝히는 글이 있기는 하나, 근거로 하는 회고조차도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료집이나 연보의 '조작'에 대해 꽤 장황하게 다루었다. 역사의 실제를 온전히 복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실제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방법은 '실증'이 아닐까? 그래서 저자는 사료의 직접 인용을 많이 했다.
쑨원의 유언이 작성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쑨원의 병세가 심해지자 1925년 2월 24일 왕징웨이汪精衛가 미리 준비한 유언을 병상의 쑨원에게 읽어 주니 쑨원이 이에 찬성했다는 내용이 기왕의 통설이다. 그런데 저자는 병실에서 이루어진 이 「쑨원과 왕징웨이 등과의 대담」의 끝맺음에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유언을 읽어 드리겠다고 하자 쑨원이 "읽어 보세요" 하고는 대화가 끝나 버리는데, 저자는 쑨원이 유언에 대한 찬부 표명을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의문에서 시작된 쑨원 유언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다른 과정을 통해 유언이 작성되었음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유언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 북상 시기의 쑨원과 국민당에 대한 실질을 보여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쑨원이 '없는' 국민당과 쑨원의 유언
이 책은 쑨원이 북상선언(1924. 11. 10.) 후 상하이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가, 톈진을 경유한 뒤 베이징에 입성하여 생을 마감할 때(1925. 3. 12.)까지의 약 4개월을 다룬다. 이 시기는 쑨원이 혁명을 시작한 이래 매우 '복잡하고도 어려운' 시기였다. 따라서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을 빼 버리고, '민의를 반영하는 국민회의'를 개최하기 위한 북상으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북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유는 동맹자들과 함께 혁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쑨원은 반직전쟁 승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실제 전쟁 과정에서의 역할은 그다지 없었다. 쑨원은 북상에 앞서 시국 해결책으로 국민회의 개최를 선언했다.
쑨원의 북상에 관한 연구는 별로 없다. 별로 없다기보다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연구는 거의 모두 "군벌들과 싸우기 위해 '국민회의 개최'라고 쓴 깃발을 들고 단기필마로 북으로 올라가는 쑨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말하자면 쑨원의 북상을 국민회의가 감싸고 있는 듯하다.
1924년 1월 말 소비에트 러시아와 쑨원 사이에 이른바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연아聯俄). 이는 쑨원의 혁명에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연아'는 외부와의 충돌뿐만 아니라 국민당 내부와 쑨원 측근들 속에서도 충돌했다. 그러나 톈진 도착 후 예기치 못한 쑨원의 발병과 병세의 악화 속에서 이 내분은 점차 '쑨원이 없는 국민당'을 전제로 진행되었다. 내분은 점차 권력다툼이 되어 쑨원의 죽음이 다가올수록 그 양상은 확대되었다. 근본적으로는 쑨원의 뜻이 국민당의 결정이라는 조직적 결함이 내분과 권력다툼을 더욱 조장했다. 쑨원의 유언 속에는 국민당의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25년 2월 24일 병실에서 유언을 청하는 왕징웨이에게 쑨원은 "이미 나의 저술에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왕징웨이는 그 자리에서 쑨원이 1923년 10월 국민당 간친대회에 보낸 제사題詞를 인용하여 유언의 한 구절을 작성했다.
"현재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무릇 우리 동지들은 (중략) 계속 노력해 혁명을 관철하길 바란다."
이 대련對聯이 당원들의 분투를 요구하는 전략적 선전으로 쓰였기에 왕징웨이가 쑨원의 유언에 사용했다고 생각된다. 왕징웨이에게도 국민당은 이제 '쑨원이 없는 국민당'이었다. 그러나 국민당의 미래 권력을 잡는 데 '쑨원이 있는 국민당'이라면 더욱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왕징웨이는, 병실에서의 유언 작성에서 쑨원으로부터 소기의 성과를 얻어 내어 유언의 마지막 구절을 만들었다.
"최근 주장한 국민회의 개최와 불평등조약 폐지는 더욱 최단기간 내에 실현하기를 촉구한다."
쑨원의 유언은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전반부와 병실에서 추가한 후반부로 이루어져 있다. 유언을 마무리한 후 왕징웨이는 쑨원의 서명을 받고자 했으나, 병실 밖에서 들려오는 쑹칭링의 울음소리에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병실에서 나온 왕징웨이는 베이징반점에서 열린 정치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병실에서의 대화 내용을 정치위원회 위원들에게 전했다. 이어 오후 4시 25분 왕징웨이는 병실에서의 대화를 대화체 형식의 문장으로 소략하게 만들었다(「집외집 문건」). 「집외집 문건」 말미에 함께 병실에 들어간 세 사람(쑹쯔원, 쿵샹시, 쑨커), 그리고 당시 병실 밖에서 대화를 들었던 쩌우루가 증명자로 서명했다. 따라서 2월 24일에 만들어진 문건은 왕징웨이가 미리 준비한 유언에 병실에서 보충하여 완성된 국사유언, 병실 밖에서 미리 준비한 가사유언, 그리고 병실 밖에서 만들어진 「집외집 문건」 이렇게 3개가 있는 셈이다.
아무튼 왕징웨이가 쑨원과 단독으로 대화한 것이 아니라 병실에 함께 들어간 세 사람이 있고, 이들이 유언 작성 과정을 직접 봤고, 쑹쯔원은 가사유언 작성에도 참여했다. 굳이 서명까지 받아야 할 '증명서'가 왜 필요했을까. 어찌 보면 왕징웨이가 유언에 대해 매우 '집착'하는 듯하다. 사실 유언에 대한 '왕징웨의의 집착'이 이 책의 출발이다.
쑨원은 혁명가였다
이 책은 쑨원의 유언이 만들지기까지의 과정을 밝히는 한편, 유언의 내용에 함축된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 '쑨원의 북상'까지 들여다보았다. 이에 대한 연구는 진작 밝혀졌어야 할 주제인데도 너무도 단순하게, '민의를 담은 국민회의를 개최하기 위해 군벌에 맞서 북상한 혁명가 쑨원'으로 쑨원의 북상을 정형화해 버리는 바람에 연구의 빈 공간이 생긴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넓게는 쑨원 연구, 근대 중국의 혁명사 연구가 '민중과 결합한 혁명'이라는 틀 속에서만 파악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 보았다. 민중에 선전하고 그들을 조직하여 이를 통해 혁명을 추진한다는 틀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를 어느 때, 어느 장소, 누구에게나 교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저자의 일침이 따끔하다.
쑨원 서세 직후 광저우에 건립된 국민정부는 쑨원의 우려를 실천하려는 듯이 끊임없는 권력투쟁을 이어 갔다. 권력투쟁 중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를 부정하기 위해 늘 쑨원의 유언을 서로 내세웠지만, "국민정부는 훈정기의 혁명정부이므로 혁명당인 국민당의 당원은 헌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혁명에 종사하고 관리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대련의 뜻을 이어 가지 않았다. 대륙에서 국민당이 몰락한 첫째 원인은 중국공산당이나 제국주의보다 그 자신에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 나아가 전 세계가 진영으로 나뉘어 상대방을 제거하기 위해 독성의 농약을 서로 살포하고 있는 듯하다. 친환경농법이라고 할 수 있는 쑨원의 혁명정신이 여전히 요구되는 바이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문제 제기
1장 관련 사료에 대한 재검토
북상에서 유언 작성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료집의 사료「문건」
「문건」과 『국부연보』의 「조문」
『국부연보』의 「조문」과 「보고」
『연보장편』과 『쑨중산사사편년』
「보고」와 유언의 작성 과정에 대한 추론
2장 새로운 사료, 그리고 '위조'
'신발견' 문건: 「집외집 문건」
마카오의 쑨완과 베이징의 다이언싸이
유언의 '위조': 허샹닝의 주장
3장 국민회의에 대한 선전과 조직
북벌선언부터 베이징정변까지
북벌의 목적
쑨원의 북상선언과 국민회의
국민회의에 대한 '침묵'
국민회의에 대한 중공의 대응
4장 국민회의와 건국대강
새로운 권력에 의한 새로운 체제
새로운 혁명방법
국민회의와 훈정
5장 반직의 북벌과 혁명의 북벌
우한武漢에서 장시江西로
쑨원과 돤치루이의 왕래
입경
6장 쑨원과 장쭤린의 만남
언론 보도
사료집의 사료문건
회고록
만남의 실체에 대한 추론
7장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연합
국공합작에 대한 선전
쑨원의 '연아'
'연아'에 대한 일본 측의 반응
'연아'에 대한 여론의 반응
'연아'에 대한 동맹자들의 반응
8장 내분
병세 악화
덩쩌루의 '상서'
중앙감찰위원회의 '공산당 탄핵'
왕징웨이에 대한 탄핵
9장 왕징웨이의 대응과 유언
쑨원에 대한 왕징웨이의 '불만'
두 개의 「선언」
유언의 활용
세 번의 찬성
10장 관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쑨원 유언 속의 '대련'
중국국민당간친대회
간친대회 연설
이당치국, 이당건국
혁명정부의 건립
결론
참고문헌
문제 제기
1장 관련 사료에 대한 재검토
북상에서 유언 작성까지
이해할 수 없는 사료집의 사료「문건」
「문건」과 『국부연보』의 「조문」
『국부연보』의 「조문」과 「보고」
『연보장편』과 『쑨중산사사편년』
「보고」와 유언의 작성 과정에 대한 추론
2장 새로운 사료, 그리고 '위조'
'신발견' 문건: 「집외집 문건」
마카오의 쑨완과 베이징의 다이언싸이
유언의 '위조': 허샹닝의 주장
3장 국민회의에 대한 선전과 조직
북벌선언부터 베이징정변까지
북벌의 목적
쑨원의 북상선언과 국민회의
국민회의에 대한 '침묵'
국민회의에 대한 중공의 대응
4장 국민회의와 건국대강
새로운 권력에 의한 새로운 체제
새로운 혁명방법
국민회의와 훈정
5장 반직의 북벌과 혁명의 북벌
우한武漢에서 장시江西로
쑨원과 돤치루이의 왕래
입경
6장 쑨원과 장쭤린의 만남
언론 보도
사료집의 사료문건
회고록
만남의 실체에 대한 추론
7장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연합
국공합작에 대한 선전
쑨원의 '연아'
'연아'에 대한 일본 측의 반응
'연아'에 대한 여론의 반응
'연아'에 대한 동맹자들의 반응
8장 내분
병세 악화
덩쩌루의 '상서'
중앙감찰위원회의 '공산당 탄핵'
왕징웨이에 대한 탄핵
9장 왕징웨이의 대응과 유언
쑨원에 대한 왕징웨이의 '불만'
두 개의 「선언」
유언의 활용
세 번의 찬성
10장 관리가 되려고 하지 마라
쑨원 유언 속의 '대련'
중국국민당간친대회
간친대회 연설
이당치국, 이당건국
혁명정부의 건립
결론
참고문헌
저자
저자
이승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종대학교 인문대학 역사학과 교수,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한국기록학회 회장, 중국근현대사학회 회장,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대표,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손문의 혁명』(한울, 201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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