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양장본 Hardcover)
Regular price
$19.10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 일기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1988년, 가장 끔찍했던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로…
서울 집에서 부산의 딸 집으로, 분도수녀원의 언덕방으로…
▶ 9월, 부산 첫째 딸네 집
1988년 온 나라가 올림픽의 환희로 가득 차 있던 그때, 박완서는 갑작스럽게 외아들을 잃고 만다. 어머니가 걱정된 첫째 딸의 성화에 부산의 딸네 집으로 내려온 작가는 기억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 아들을 생각하며 아직도 미치지 못한 자신의 강인한 정신을 탓한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들을 데려갔는지, 신을 향해 그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이런 물음은 신을 향한 증오로, 마침내 살의로 치달으며 작가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기도를 토해낸다. 그럼에도 아들을 앗아간 신은 끝끝내 응답이 없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 10월, 부산 분도수녀원 언덕방
서울 집으로 가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박완서는 이해인 수녀의 제안으로 부산 분도수녀원의 언덕방에 머물 기회를 얻는다. 뒤돌아서 다 토했을지언정 여봐란듯이 밥 반 공기를 먹어 치우며 딸의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언덕방에 도착해 마주한 고립감은 아주 고약했다. 이후 사흘을 밤새 방 안을 데굴데굴 구르고 몸부림치며 신에게 한 말씀만 달라며 애걸복걸했지만 끝내 응답은 얻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을 흘렀고 작가는 수녀원의 수녀님과 도움을 받는 노인들, 젊은 방문객들 틈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 또한 교만이라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다.
"따라 죽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교만이요, 환상이라는 걸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은 살 궁리인가? 역겹고 비참하지만 자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 어쩌랴."
▶ 10월, 부산 분도수녀원 언덕방, 화장실
신병을 얻은 딸에 대한 근심을 토로하던 옆방 방문객에게 박완서는 아들을 잃은 자신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살아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불행이 타인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심경으로 옆방 방문객과 마주 앉아 먹은 점심은 결국 제대로 얹혔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낸다. 그리고 그때 문득 든 생각,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아들을 앗아갔냐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 신의 계시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작가는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궁극적으로는 신과도 고통을 나눌 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죄였음을 깨닫는다.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 그해,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서울 집으로
죽고 싶다는 정신의 소망을 따라주던 박완서의 육체는 그날 이후 끼니때가 되면 배고픔을 여실히 드러냈고 육신과 정신의 분열 앞에 작가는 창피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몸은 회복되었어도 살아갈 의욕까지 온전히 찾지는 못했기에 서울 집에 혼자 머무르지 못하고 막내가 사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은 이질적인 언어로 가득 찬 세상이었고, 그 참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겨울을 나기도 전에 서울로 급히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몇 달 후, 작가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아들이 없는 세상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이후, 다시 언덕방으로
분도수녀원을 처음 갈 때만 해도 박완서는 그곳을 속세를 벗어난 도피처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머물게 된 수녀원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가장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서 삶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고, 끝내 생명의 가장 필수적인 식욕을 되찾는다. 이후에도 작가는 해마다 언덕방 손님을 자처하며 그곳에 머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수필 「언덕방은 내 방」과 그곳으로 작가를 이끌어준 이해인 수녀님께 보내는 손 편지는 참척의 고통을 견뎌낸 이후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지금 같은 고통으로 힘겹다면, 삶의 막다른 길에 놓인 것 같다면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살아 있는 위로를 건네받기를 바란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분도수녀원으로 저를 인도해 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05년 이해인 수녀님께 보낸 편지 중에서
"이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입니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것입니다."
1988년, 가장 끔찍했던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로…
서울 집에서 부산의 딸 집으로, 분도수녀원의 언덕방으로…
▶ 9월, 부산 첫째 딸네 집
1988년 온 나라가 올림픽의 환희로 가득 차 있던 그때, 박완서는 갑작스럽게 외아들을 잃고 만다. 어머니가 걱정된 첫째 딸의 성화에 부산의 딸네 집으로 내려온 작가는 기억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 아들을 생각하며 아직도 미치지 못한 자신의 강인한 정신을 탓한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들을 데려갔는지, 신을 향해 그 이유를 묻고 또 묻는다. 이런 물음은 신을 향한 증오로, 마침내 살의로 치달으며 작가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기도를 토해낸다. 그럼에도 아들을 앗아간 신은 끝끝내 응답이 없다.
"사생결단 죽이고 또 죽여 골백번 고쳐 죽여도 아직 다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최대의 극치인 살의(殺意), 나의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암 있어야 하구말구."
▶ 10월, 부산 분도수녀원 언덕방
서울 집으로 가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박완서는 이해인 수녀의 제안으로 부산 분도수녀원의 언덕방에 머물 기회를 얻는다. 뒤돌아서 다 토했을지언정 여봐란듯이 밥 반 공기를 먹어 치우며 딸의 허락을 받았지만, 막상 언덕방에 도착해 마주한 고립감은 아주 고약했다. 이후 사흘을 밤새 방 안을 데굴데굴 구르고 몸부림치며 신에게 한 말씀만 달라며 애걸복걸했지만 끝내 응답은 얻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을 흘렀고 작가는 수녀원의 수녀님과 도움을 받는 노인들, 젊은 방문객들 틈에서 죽음에 대한 갈망 또한 교만이라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한다.
"따라 죽을 수 있으리라는 것도 교만이요, 환상이라는 걸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은 살 궁리인가? 역겹고 비참하지만 자신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걸 어쩌랴."
▶ 10월, 부산 분도수녀원 언덕방, 화장실
신병을 얻은 딸에 대한 근심을 토로하던 옆방 방문객에게 박완서는 아들을 잃은 자신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살아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불행이 타인에게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심경으로 옆방 방문객과 마주 앉아 먹은 점심은 결국 제대로 얹혔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낸다. 그리고 그때 문득 든 생각, 도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아들을 앗아갔냐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 신의 계시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작가는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 궁극적으로는 신과도 고통을 나눌 줄 몰랐던 것이 가장 큰 죄였음을 깨닫는다.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 그해,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서울 집으로
죽고 싶다는 정신의 소망을 따라주던 박완서의 육체는 그날 이후 끼니때가 되면 배고픔을 여실히 드러냈고 육신과 정신의 분열 앞에 작가는 창피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몸은 회복되었어도 살아갈 의욕까지 온전히 찾지는 못했기에 서울 집에 혼자 머무르지 못하고 막내가 사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은 이질적인 언어로 가득 찬 세상이었고, 그 참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겨울을 나기도 전에 서울로 급히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몇 달 후, 작가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것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였다. 아들이 없는 세상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 이후, 다시 언덕방으로
분도수녀원을 처음 갈 때만 해도 박완서는 그곳을 속세를 벗어난 도피처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막상 머물게 된 수녀원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가장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서 삶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고, 끝내 생명의 가장 필수적인 식욕을 되찾는다. 이후에도 작가는 해마다 언덕방 손님을 자처하며 그곳에 머무르는 버릇이 생겼다. 수필 「언덕방은 내 방」과 그곳으로 작가를 이끌어준 이해인 수녀님께 보내는 손 편지는 참척의 고통을 견뎌낸 이후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지금 같은 고통으로 힘겹다면, 삶의 막다른 길에 놓인 것 같다면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살아 있는 위로를 건네받기를 바란다.
"88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아' 소리가 나올 적이 있을 만큼 아직도 생생하고 예리하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수녀님이 가까이 계시어 분도수녀원으로 저를 인도해 주신 것은 그래도 살아보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05년 이해인 수녀님께 보낸 편지 중에서
목차
목차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
수필 언덕방은 내 방
서신 이해인 수녀님과의 손 편지
작품 해설 통곡과 말씀의 힘 - 황도경(문학평론가)
개정판에 부치며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 호원숙(작가)
수필 언덕방은 내 방
서신 이해인 수녀님과의 손 편지
작품 해설 통곡과 말씀의 힘 - 황도경(문학평론가)
개정판에 부치며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 호원숙(작가)
저자
저자
박완서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 입학 전 어머니, 오빠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다. 숙명여고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지만, 6ㆍ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53년 결혼해 평범한 주부로 살며 1남 4녀를 두었고,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데뷔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롭지만 따듯한 시선과 진실된 필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던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이를 일기로 써 내려간다. 그 일기를 엮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해 준다. 더 나아가 삶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도록 이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이외에도 동화ㆍ산문집ㆍ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두루 남겼다. 특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발견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예술상(2006) 등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러던 1988년 하나뿐인 아들을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로 잃는 참척의 고통을 겪었고, 이를 일기로 써 내려간다. 그 일기를 엮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애끓는 마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원망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어 있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깊이 위로해 준다. 더 나아가 삶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딛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의미까지 생각하도록 이끈다.
2011년 1월 담낭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40여 년간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15편의 장편소설을 쓰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이외에도 동화ㆍ산문집ㆍ콩트집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두루 남겼다. 특히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는 에세이스트로서의 박완서의 면모를 발견하도록 하는 작품이다.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중앙문화대상(1993),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한무숙문학상(1995),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인촌문학상(2000),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예술상(2006) 등을 수상했으며, 2006년에는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후에는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99 이상 무료 배송
3% 리워드 크레딧 적립
Secure Pay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