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한집(칸트전집 14)(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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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저는 결코 제 편지를 대중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성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편지들을 가지고 계신다면 꼭 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8세기 독일에서 편지는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일종의 공적 매체였다. 학문은 편지의 형식으로 유통되었고, 사유는 편지 교환 속에서 다듬어졌다. 레싱과 리히텐베르크는 예술을, 오일러와 람베르트는 자연과학을 편지 형식으로 전개해가며 독일의 지성사를 써 내려갔다. 칸트 역시 편지로 동시대인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했지만,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는 것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럼에도 칸트 사후 곧바로 그의 편지를 수집해 출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후 20세기에는 프로이센 왕립학술원의 『칸트전집』 출간과 때를 같이하여 방대한 서한집이 정리되기에 이른다.
■"형님! 이번에는 늦장 부리면 안 됩니다"
막냇동생 요한 하인리히 칸트가 보낸 편지 속 이 한마디가 보여주듯, 『서한집』이 비추는 칸트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 제때 답장을 받지 못해 서운하다는 동생의 불평부터 칸트라는 성을 물려준 조부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이야기, 부사서직과 교수직을 얻기 위해 왕과 총장, 원로원에 보낸 간절한 청원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칸트 스스로 공개를 바라지 않은 기록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렸다는 엄격한 철학자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완성되기 전의 칸트 비판철학
편지들은 사적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칸트의 비판철학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 곳곳에 스며 있다. 미완성된 체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고민이 나타나며, 선험철학에 대한 칸트의 확신이 말년까지 일관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저서의 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예고하고 그 진척을 설명하는 대목, 그리고 모제스 멘델스존, 마르쿠스 헤르츠, 살로몬 마이몬, 카를 레온하르트 라인홀트,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등과 주고받은 서신은 18세기 계몽주의 지성인들의 대화망과 역동적인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초역으로 만나는 칸트의 편지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 14 『서한집』은 칸트가 남긴 900편 이상의 편지 가운데 핵심만 가려 뽑은 선집이다. 한국칸트학회와 서양근대철학회 회장을 지낸 맹주만 교수가 펠릭스마이너판 『서한집』(Briefwechsel)에 정리된 484편 중에서 칸트의 삶과 사유를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내는 153편을 엄선해 김형주 교수와 함께 번역했다. 방대한 서한집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은 칸트의 사상적 토대와 인간적 실체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약 편지들을 가지고 계신다면 꼭 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8세기 독일에서 편지는 단순한 연락 수단을 넘어 일종의 공적 매체였다. 학문은 편지의 형식으로 유통되었고, 사유는 편지 교환 속에서 다듬어졌다. 레싱과 리히텐베르크는 예술을, 오일러와 람베르트는 자연과학을 편지 형식으로 전개해가며 독일의 지성사를 써 내려갔다. 칸트 역시 편지로 동시대인들과 학문적으로 교류했지만,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는 것을 여러 차례 분명하게 거부했다. 그럼에도 칸트 사후 곧바로 그의 편지를 수집해 출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후 20세기에는 프로이센 왕립학술원의 『칸트전집』 출간과 때를 같이하여 방대한 서한집이 정리되기에 이른다.
■"형님! 이번에는 늦장 부리면 안 됩니다"
막냇동생 요한 하인리히 칸트가 보낸 편지 속 이 한마디가 보여주듯, 『서한집』이 비추는 칸트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 제때 답장을 받지 못해 서운하다는 동생의 불평부터 칸트라는 성을 물려준 조부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이야기, 부사서직과 교수직을 얻기 위해 왕과 총장, 원로원에 보낸 간절한 청원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칸트 스스로 공개를 바라지 않은 기록을 통해, 쾨니히스베르크 사람들 사이에서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렸다는 엄격한 철학자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완성되기 전의 칸트 비판철학
편지들은 사적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다. 칸트의 비판철학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이 곳곳에 스며 있다. 미완성된 체계를 쌓아나가는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고민이 나타나며, 선험철학에 대한 칸트의 확신이 말년까지 일관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저서의 출간을 주변 사람들에게 예고하고 그 진척을 설명하는 대목, 그리고 모제스 멘델스존, 마르쿠스 헤르츠, 살로몬 마이몬, 카를 레온하르트 라인홀트,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등과 주고받은 서신은 18세기 계몽주의 지성인들의 대화망과 역동적인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내 초역으로 만나는 칸트의 편지들
한국칸트학회가 기획한 칸트전집 14 『서한집』은 칸트가 남긴 900편 이상의 편지 가운데 핵심만 가려 뽑은 선집이다. 한국칸트학회와 서양근대철학회 회장을 지낸 맹주만 교수가 펠릭스마이너판 『서한집』(Briefwechsel)에 정리된 484편 중에서 칸트의 삶과 사유를 가장 밀도 있게 드러내는 153편을 엄선해 김형주 교수와 함께 번역했다. 방대한 서한집의 정수를 담은 이 책은 칸트의 사상적 토대와 인간적 실체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이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칸트전집』을 발간하면서
『칸트전집』 일러두기
1749년
1754년
1756년
1759년
1761년
1762년
1763년
1765년
1766년
1768년
1770년
1771년
1772년
1773년
1774년
1776년
1778년
1779년
1781년
1783년
1784년
1785년
1786년
1787년
1788년
1789년
1790년
1791년
1792년
1793년
1794년
1795년
1796년
1797년
1798년
1802년
편집자 해제
옮긴이의 글
편집자주/옮긴이주
찾아보기
『칸트전집』 일러두기
1749년
1754년
1756년
1759년
1761년
1762년
1763년
1765년
1766년
1768년
1770년
1771년
1772년
1773년
1774년
1776년
1778년
1779년
1781년
1783년
1784년
1785년
1786년
1787년
1788년
1789년
1790년
1791년
1792년
1793년
1794년
1795년
1796년
1797년
1798년
1802년
편집자 해제
옮긴이의 글
편집자주/옮긴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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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임마누엘 칸트 1724년 4월 22일 프로이센(Preußen) 쾨니히스베르크(K?nigsberg)에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730~32년까지 병원 부설 학교를, 1732~40년까지 오늘날 김나지움(Gymnasium)에 해당하는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Collegium Fridericianum)을 다녔다.
1740년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입학해 주로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746년 대학 수업을 마친 후 10년 가까이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1749년에 첫 저서 『살아 있는 힘의 참된 측정에 관한 사상』을 출판했다. 1755/56년도 겨울학기부터 사강사(PrⅣatdozent)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자연신학 원칙과 도덕 원칙의 명확성에 관한 연구』(1764)가 1763년 베를린 학술원 현상 공모에서 2등상을 받았다. 1766년 쾨니히스베르크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직책을 얻었다.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가 되었고, 교수취임 논문으로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를 발표했다.
그 뒤 『순수이성비판』(1781),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도덕형이상학』(1797) 등을 출판했다.
1786년 여름학기와 1788년 여름학기에 대학 총장직을 맡았고, 1796년 여름학기까지 강의했다. 1804년 2월 1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사망했고 2월 28일 대학 교회의 교수 묘지에 안장되었다.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의 생애에서 우리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굳이 들자면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1793) 때문에 검열 당국과 빚은 마찰을 언급할 수 있겠다. 더욱이 중년 이후 칸트는 일과표를 정확히 지키는 지극히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단조롭게 보이는 그의 삶은 의도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자기 삶에 방해가 되는 세인의 주목을 원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명예나 찬사는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1740년에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 입학해 주로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746년 대학 수업을 마친 후 10년 가까이 가정교사 생활을 했다.
1749년에 첫 저서 『살아 있는 힘의 참된 측정에 관한 사상』을 출판했다. 1755/56년도 겨울학기부터 사강사(PrⅣatdozent)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자연신학 원칙과 도덕 원칙의 명확성에 관한 연구』(1764)가 1763년 베를린 학술원 현상 공모에서 2등상을 받았다. 1766년 쾨니히스베르크 왕립 도서관의 부사서로 일하게 됨으로써 처음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직책을 얻었다.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교에서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담당하는 정교수가 되었고, 교수취임 논문으로 『감성계와 지성계의 형식과 원리』를 발표했다.
그 뒤 『순수이성비판』(1781), 『도덕형이상학 정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도덕형이상학』(1797) 등을 출판했다.
1786년 여름학기와 1788년 여름학기에 대학 총장직을 맡았고, 1796년 여름학기까지 강의했다. 1804년 2월 12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사망했고 2월 28일 대학 교회의 교수 묘지에 안장되었다.
칸트의 생애는 지극히 평범했다. 그의 생애에서 우리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을 굳이 들자면 『이성의 오롯한 한계 안의 종교』(1793) 때문에 검열 당국과 빚은 마찰을 언급할 수 있겠다. 더욱이 중년 이후 칸트는 일과표를 정확히 지키는 지극히 규칙적인 삶을 영위한다. 하지만 단조롭게 보이는 그의 삶은 의도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그는 자기 삶에 방해가 되는 세인의 주목을 원하지 않았다. 세속적인 명예나 찬사는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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