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에 흘린 청색(창비시선 544)
조정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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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나는 나를 경험하는 중이다"
하나의 '나'에서 세계의 무수한 떨림으로
겹치고 번지며 확장되는 감각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꿈속을 배회하는 여럿의 나"(「청색에 흘린 청색」)가 있음을 발견하고 고독의 정서를 통해 끊임없이 분열하고 확장하는 자아를 보여준다. 시인에게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끊임없는 울림 속에서 내면에 숨겨진 수많은 목소리와 흔적을 발견하고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선명하게 전개되는 색채 이미지들은 그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천사, 나비, 개, 눈〔雪〕 등을 표상하는 흰색은 무구함, 탄생, 애도, 환함, 슬픔과 같은 여러 성질의 바탕이 된다.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백면 위에, 시인은 짙은 청색으로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새겨나간다. 마치 "청색에 흘린" 또다른 "청색"처럼 "흔적 없이 스미고 번"지는 것 같아도, 세계 속의 존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직접 "경험하"(같은 시)면서 겹겹이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스스로 "내가 나를 답사하고 탐사하는"(「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쳐 진정한 '나'를 완성해나간다.
한편 '르네 마그리트 「Listening Room」에 부치는 시'라는 부제가 붙은 「청사과」와 「환승역」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적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 어두운 방 안에 가득 들어찬 청사과 그림의 인상은 어느새 무수한 초현실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노래가 되어 흐른다. 홀로 들어앉은 "청취실"에서 시인은 "우주미아가 되어 말할 수 없이 광활한 고독감 속"에서 속절없이 "생성과 소멸"(「청사과」)하는 별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기민한 감각은 「환승역」으로 그 여정을 이어간다. 지상과 천국, 과거와 미래, 역사와 선사, '나'와 '당신'이 교차되는 환승역에서 시인은 운문의 속도로 우주라는 긴 책의 역사를 따라잡고자 한다. 눈으로는 볼 수 없을 "검푸른 밤하늘 한복판"에 걸린, "사과"로 표상되는 세계의 기억을 리듬을 따라 되짚는다. 화자는 비로소 "나에게도 희고 커다란 날개가 생길 것 같"다는 말을 건네며 '나'와 '당신'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진면모를 인식하기에 이른다. 개별과 총체, 고독과 화합, 소멸과 생성은 각각의 상태로 건너가기 위해 이어진 하나의 경로가 된다. "한없이 고적"(「청색에 흘린 청색」)하게 자신의 메아리를 들은 뒤에야 "스스로 악기이며/악공인 우주"의 선율과 결속할 수 있고, "죽은 시인의 펄럭이는 말들"을 빈틈없이 받아들인 후에 비로소 애도를 넘어 "사랑의 세계성"(「감정의 기원」)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너지는 세계를 온몸으로 애도하는 문장들
소멸의 슬픔을 안고 끝내 아름다움에 가닿는 음성
나아가 시인의 시선은 생의 공포와 소멸의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존재들의 현실로 향한다. "한 사람의 장례는 모든 사람의 장례"(「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라는 깨달음은 개인의 상실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확장하고, "누가, 무엇이 그를 죽게 했는지?"(「타살들」)라고 묻는 목소리는 한 노동자의 죽음이나 희생을 단순한 개인의 불행으로 지나치지 않고 그 불행의 배후를 살핀다. 시인은 사회적 비극을 "인간 누대의 피에 젖은 식탁"(「사라진 누선(淚腺)으로 우는 것들」)으로 명명하며 삶의 그늘진 곳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의 죽음을 진혼하는 사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낸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다. 고통과 절망의 세계를 온 힘을 다해 응시하며 끝내 생의 기척과 사랑의 빛을 포착한다. "손이 따듯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추억이라 하고/잡은 손을 놓을 리 없을 거라 믿는 일을 사랑이라 한다"(「백색소음」)라고 말하며 사랑과 애도는 결국 '기억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고독이 단순한 외로움이나 삶을 포기하게 하는 아픔이 아니라 "나의 연료, 나의 조난 식량"이 된다는 역설적 지혜와 "우리의 유일한 지하자원은 검은 고독"(「검은 곤드레나물을 삶는 밤」)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랑 역시 상처가 없는 무결한 상태가 아니다. 시인은 "사랑은 그러므로 스스로 얻은 상처가 아름다울 때 발현되는 빛"(같은 시)이라고 말하며,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강한 생명의 힘과 희망을 다시 찾아간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사멸의 그늘 속에서 신생(新生)의 빛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시선은 더욱 강고하고 아늑해졌다. 곳곳에 도사린 "부조리의 덫에 걸리지 않"(「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고 삶의 비관과 비극을 담대하게 통과하여 아름다움을 펜 끝에 머금을 수 있게 된 시인이야말로 세계의 진면목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마지막에 남긴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일은 나를 용서하는 일이 되고 있었다"('시인의 말')라는 읊조림은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결론이다. 우리는 지금 "두렵고 흥미진진한 조정인 시의 미래"(최현식, 해설) 앞에 서 있다.
하나의 '나'에서 세계의 무수한 떨림으로
겹치고 번지며 확장되는 감각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 "꿈속을 배회하는 여럿의 나"(「청색에 흘린 청색」)가 있음을 발견하고 고독의 정서를 통해 끊임없이 분열하고 확장하는 자아를 보여준다. 시인에게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끊임없는 울림 속에서 내면에 숨겨진 수많은 목소리와 흔적을 발견하고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는 사유의 시간이다. 선명하게 전개되는 색채 이미지들은 그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천사, 나비, 개, 눈〔雪〕 등을 표상하는 흰색은 무구함, 탄생, 애도, 환함, 슬픔과 같은 여러 성질의 바탕이 된다. 하나로 단정할 수 없는 백면 위에, 시인은 짙은 청색으로 또렷하게 자신의 존재를 새겨나간다. 마치 "청색에 흘린" 또다른 "청색"처럼 "흔적 없이 스미고 번"지는 것 같아도, 세계 속의 존재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직접 "경험하"(같은 시)면서 겹겹이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스스로 "내가 나를 답사하고 탐사하는"(「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거쳐 진정한 '나'를 완성해나간다.
한편 '르네 마그리트 「Listening Room」에 부치는 시'라는 부제가 붙은 「청사과」와 「환승역」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감각적 인식을 찾아볼 수 있다. 어두운 방 안에 가득 들어찬 청사과 그림의 인상은 어느새 무수한 초현실적 이미지로 이루어진 노래가 되어 흐른다. 홀로 들어앉은 "청취실"에서 시인은 "우주미아가 되어 말할 수 없이 광활한 고독감 속"에서 속절없이 "생성과 소멸"(「청사과」)하는 별들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기민한 감각은 「환승역」으로 그 여정을 이어간다. 지상과 천국, 과거와 미래, 역사와 선사, '나'와 '당신'이 교차되는 환승역에서 시인은 운문의 속도로 우주라는 긴 책의 역사를 따라잡고자 한다. 눈으로는 볼 수 없을 "검푸른 밤하늘 한복판"에 걸린, "사과"로 표상되는 세계의 기억을 리듬을 따라 되짚는다. 화자는 비로소 "나에게도 희고 커다란 날개가 생길 것 같"다는 말을 건네며 '나'와 '당신'의 경계를 넘어 세계의 진면모를 인식하기에 이른다. 개별과 총체, 고독과 화합, 소멸과 생성은 각각의 상태로 건너가기 위해 이어진 하나의 경로가 된다. "한없이 고적"(「청색에 흘린 청색」)하게 자신의 메아리를 들은 뒤에야 "스스로 악기이며/악공인 우주"의 선율과 결속할 수 있고, "죽은 시인의 펄럭이는 말들"을 빈틈없이 받아들인 후에 비로소 애도를 넘어 "사랑의 세계성"(「감정의 기원」)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너지는 세계를 온몸으로 애도하는 문장들
소멸의 슬픔을 안고 끝내 아름다움에 가닿는 음성
나아가 시인의 시선은 생의 공포와 소멸의 어둠 속에서 허덕이는 존재들의 현실로 향한다. "한 사람의 장례는 모든 사람의 장례"(「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라는 깨달음은 개인의 상실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확장하고, "누가, 무엇이 그를 죽게 했는지?"(「타살들」)라고 묻는 목소리는 한 노동자의 죽음이나 희생을 단순한 개인의 불행으로 지나치지 않고 그 불행의 배후를 살핀다. 시인은 사회적 비극을 "인간 누대의 피에 젖은 식탁"(「사라진 누선(淚腺)으로 우는 것들」)으로 명명하며 삶의 그늘진 곳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의 죽음을 진혼하는 사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낸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다. 고통과 절망의 세계를 온 힘을 다해 응시하며 끝내 생의 기척과 사랑의 빛을 포착한다. "손이 따듯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일을 추억이라 하고/잡은 손을 놓을 리 없을 거라 믿는 일을 사랑이라 한다"(「백색소음」)라고 말하며 사랑과 애도는 결국 '기억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고독이 단순한 외로움이나 삶을 포기하게 하는 아픔이 아니라 "나의 연료, 나의 조난 식량"이 된다는 역설적 지혜와 "우리의 유일한 지하자원은 검은 고독"(「검은 곤드레나물을 삶는 밤」)이라고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랑 역시 상처가 없는 무결한 상태가 아니다. 시인은 "사랑은 그러므로 스스로 얻은 상처가 아름다울 때 발현되는 빛"(같은 시)이라고 말하며, 외로움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강한 생명의 힘과 희망을 다시 찾아간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결코 절망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사멸의 그늘 속에서 신생(新生)의 빛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시선은 더욱 강고하고 아늑해졌다. 곳곳에 도사린 "부조리의 덫에 걸리지 않"(「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고 삶의 비관과 비극을 담대하게 통과하여 아름다움을 펜 끝에 머금을 수 있게 된 시인이야말로 세계의 진면목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이 마지막에 남긴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일은 나를 용서하는 일이 되고 있었다"('시인의 말')라는 읊조림은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결론이다. 우리는 지금 "두렵고 흥미진진한 조정인 시의 미래"(최현식, 해설) 앞에 서 있다.
목차
목차
수면 위로 내리는 눈발들
제1부ㆍ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백색증
눈 내리는 행성을 나는 가졌네
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청색에 흘린 청색
수의(壽衣)
그런 약속의 말이 있었다는 듯
발목들
신의 아그네스와 벚나무
꿈
걸인 여자가 다녀갔다
불어나는 풀
제2부ㆍ청사과
눈 오고 동백 지다
파란(波瀾)을 끌어 덮는 밤
청사과
산책자
달리면서 생각하기
멍게 이야기
검은 곤드레나물을 삶는 밤
흰 개 1
너무 환한 오후 세시
오늘의 파이
깨진 화분
삼십대
당신은 이름이 저녁이라 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
유리, 혹은 유리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새가 쏟아졌다
두고 간 목소리
물에 놓다
제3부ㆍ감정의 기원
물의 무형행성에서의 하루
감정의 기원
정오의 풀밭
기린여자
세번째 거짓말에서 만난 싯다르타
흘러 다니는 섬
사라진 누선(淚腺)으로 우는 것들
밤의 푸른 외투를 걸친 자화상
그리운 곳으로부터 바람은 분다
타살들
낮에 산 패딩을 입어보았다
언 사과 한 자루
질병이 우리를 야유한다
흰,
제4부ㆍ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
빈방
박수의 탄생
일기예보
없는 나비
환승역
백색소음
고택(古宅)
취토(取土)
땅꾼의 여자
동심초라니요?
고양이가 간다
검정 백합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아침
침묵을 쓰다듬는 사람
아일랜드
흰 개 2
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
해설|최현식
시인의 말
제1부ㆍ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백색증
눈 내리는 행성을 나는 가졌네
이렇게 고요하고 차가운 불꽃의 세계
청색에 흘린 청색
수의(壽衣)
그런 약속의 말이 있었다는 듯
발목들
신의 아그네스와 벚나무
꿈
걸인 여자가 다녀갔다
불어나는 풀
제2부ㆍ청사과
눈 오고 동백 지다
파란(波瀾)을 끌어 덮는 밤
청사과
산책자
달리면서 생각하기
멍게 이야기
검은 곤드레나물을 삶는 밤
흰 개 1
너무 환한 오후 세시
오늘의 파이
깨진 화분
삼십대
당신은 이름이 저녁이라 했다
나는 나의 장례식에 갔었다
유리, 혹은 유리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새가 쏟아졌다
두고 간 목소리
물에 놓다
제3부ㆍ감정의 기원
물의 무형행성에서의 하루
감정의 기원
정오의 풀밭
기린여자
세번째 거짓말에서 만난 싯다르타
흘러 다니는 섬
사라진 누선(淚腺)으로 우는 것들
밤의 푸른 외투를 걸친 자화상
그리운 곳으로부터 바람은 분다
타살들
낮에 산 패딩을 입어보았다
언 사과 한 자루
질병이 우리를 야유한다
흰,
제4부ㆍ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
빈방
박수의 탄생
일기예보
없는 나비
환승역
백색소음
고택(古宅)
취토(取土)
땅꾼의 여자
동심초라니요?
고양이가 간다
검정 백합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아침
침묵을 쓰다듬는 사람
아일랜드
흰 개 2
그가 계절처럼 지나간다
해설|최현식
시인의 말
저자
저자
조정인 1998년 『창작과비평』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장미의 내용』 『사과 얼마예요』 등과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웨하스를 먹는 시간』이 있다. 『웨하스를 먹는 시간』은 중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吃威化?乾的時間』, 왕 옌리王?麗 옮김, 인민문학출판사 2026). 지리산문학상,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구지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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