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실천시선 224)
1992년 노동자문예『삶글』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제11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노동자 시인 임성용의 두 번째 시집. 노동의 땀방울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값진 보배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임성용 시인은 노동자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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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92년 노동자문예『삶글』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제11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노동자 시인 임성용의 두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노동의 땀방울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값진 보배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임성용 시인은 노동자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허약한 꿈을 믿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악몽인가
삶의 패배는 희망을 잃었을 때 찾아온다. 세상에 지지 않으려면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 하고, 그 죽을힘이란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실천적 노력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노력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던가.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쳐야 하는 노동자의 삶은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막걸리를 마시고
아내가 운다
적금통장과 육십만 원 월급을 내놓고
혼자, 새벽까지 운다
(중략)
미안하다는 말이
앞으로 행복하게 잘살자는 말이
더 불행한 약속임을 왜 모르겠는가
애초애 나 같은 사람 만나지를 말지
억지를 부리면 부릴수록
하나씩 부러지는 아내의 뼈
진짜 아픈 건 뼈마디에 도사린 꿈이다
_「아내가 운다」, 『하늘 공장』 부분
시인은 값싼 술을 마시고 들어온 아내가 적금통장과 돈 육십만 원을 앞에 두고 밤새 흐느껴 우는 것이 안쓰럽다. 싱크대 서랍에 약봉지를 숨겨놓고 아침이면 다시 그녀를 일하러 나가게 하는 솔직하지 못한 그 꿈이 두렵다. 뻔한 위선 같아서 눈물을 참으라고 다독이거나 함께 울어줄 수 없는 그는 행복하게 잘살자는 약속을 하지 못해서 말없이 이불을 쓰고 잠든 척한다. 뼈마디에 도사린 꿈은 억지를 부릴수록 더 아파온다.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노동자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자본의 더 많은 잉여가치를 위해 꿈을 담보 잡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만 추구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모습마저 상실해간다.
도금 공장에서 십 년을 일한 형이
코에 구멍이 뚫려 돌아왔다
(중략)
형은 코를 벌리고 누렇게 흐르는 농을 닦아내며
골방에서 코뼈가 녹아내리기를 기다렸다
물 위에 뜬 물고기처럼 뻐끔뻐끔 방 안을 맴돌았다
형은 죽기 전까지 이불로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었으므로
나는 끝내 형이 숨겨놓은 늠름한 코를 보지 못했다
_「코」 부분
기름 범벅으로 끈끈하게 엉겨 붙은 쇠구슬들
알알이 박힌 기계의 몸통을 빠져나와
검게 마모된 동공을 열었다
떼구루루, 한 개의 눈알이 굴러떨어졌다
숨죽인 눈동자를 장갑으로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때, 헐떡거리던 내 눈 속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하얀 쇠구슬들
은빛 쟁쟁한 눈을 번득 떴다
죽어 눈감지 못한 수많은 눈동자들이
깨진 창문 틈에서 한 줄기 빛으로 어른거렸다
_「기계의 눈」 부분
도금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는 코에 구멍이 뚫려 누렇게 흐르는 농을 닦아내며 골방에서 코뼈가 다 녹아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죽기 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내 그 늠름하던 코를 보여주지 못했다. 밤낮으로 돌아가던 기계가 멈춰 서자 베어링을 꺼내 장갑으로 깨끗이 닦아주던 노동자는 기름 범벅이 된 쇠구슬을 보며 죽어 눈감지 못한 동료들의 눈을 떠올린다. 고장 난 부품은 교체되면 그만,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살아 있는 기계인 노동자는 죽어서도 눈감지 못한다.
노동을 통해 완성되는 인간의 삶
임성용 시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되는 노동의 파괴, 모순된 노동 현장을 고발하는 시를 써왔다. 파괴된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그의 시에는, 또한 아픔과 절망을 희망으로 포용하려는 마음이 간절하게 배어 있기도 하다.
친구들은 대부분 감옥에 수감되었다
농민도 노동자도
엔지니어도 화이트칼라도 함께 갇혔다
장사꾼도 청년들도
수감 생활에 적응하고 저항을 포기했다
체념이란 총칼보다 무섭고 세금보다 무겁지만
때론 고픈 배를 채워주는 상한 음식처럼 시큼한 것
친구들은
왕성하게 발기된 희망을 섞어 트럼프 놀이를 하고 있다
조마조마하지만 불안정한 미래는 늘 조커처럼 숨어 있다
다행히 무기형으로 감형된 나는 더 이상 이력서를 쓰지 않는다
그렇게 풀타임 정규직이 되고 싶은가?
그렇게 그들의 완전한 가족이 되고 싶은가?
나에게 남은 것은 집단적으로 구제를 거부하는
폭동처럼 격렬한 희망뿐
_「풀타임」 전문
이번 시집 『풀타임』의 해설을 쓴 노지영 문학평론가는 이 시가 "단절되고 구속된 시간 속에서 우리들에게 꽉 채워진 시간을 상상하게 하"게 하며 "그 '격렬한 희망'이야말로 감옥 안에 화자를 구금하는 원인이 된 동시에 감옥 안을 탈출하게 만드는 새로운 동인"이라고 말한다.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시간적 '제약'을 의미하고, 비정규 파트타임직에게는 경제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풀타임'은 이 시대 노동의 이중성과 애매성을 상징하는 말이다. 감옥 같은 공장에 갇혀 '풀타임'으로 수감 생활을 하는 이들, 어떤 선택을 해도 부자유를 살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이 말은 또한 구속된 시간 속에서도 꽉 채워진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격렬한 희망'이기도 하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숫돌의 힘에
손목의 힘이 부딪친다
부딪쳐 은빛으로 반짝이는 소리들
쇠가 쇠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는
이글거리는 불길에 담금질해야 한다
숫돌에 날을 갈아 세워야 한다
바이트를 깎아 연마기에 갈면서
거듭거듭 쇠를 잘라내면서
쇠와 숫돌 사이에
날카로운 바이트 끝에
파르르, 떨리는 노래를 듣는다
_「돌아오라, 노래여」 부분
"쇠가 쇠를 단련시키기 위해서는/이글거리는 불길에 담금질해야 한다". "쇠와 숫돌 사이", "날카로운 바이트 끝에"서 "파르르, 떨리는 노래"(「돌아오라, 노래여」)가 '연마'될 때, 노동자의 삶도 '연마'된다.
꿈이 없으면 더 이상의 패배도 절망도 없다. 눈물도 없다. 세상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지는 것은 지쳐 쓰러졌을 때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 못할 때다. 추운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천막 농성을 하고, 굴뚝 위로 올라가 위태롭게 버티는 노동자들을 보며 시인은 아내가 밤새 흘린 뜨거운 '눈물'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을 무릎 꿇린 세상에게 다시 한 번 덤벼들겠다는 뜨거운 다짐이기 때문이다.
§. 추천의 글
임성용 시인을 생각할 때마다 손톱 밑의 때가 떠오른다. 온종일 화물차를 몰다가 달려와 밤을 지키던 그의 손톱에는 까만 때가 끼어 있었다. 노동이라는 수식어를 매단 많은 시인들이 철학과 관념 쪽을 기웃거리는 와중에서도,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손톱을 날카롭게 벼려왔다. 『하늘 공장』 이후 그의 시를 기다려온 것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때로는 어두운 저수지에서, 묘혈 같은 고시원 골방에서 그가 마주하던 절망과 위악과 반어와 풍자들로 엮어낸 시가 주는 감동은 견고하고 도저하다.
얼핏 차갑게 들릴 기계의 금속음마저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그의 시가 벌어진 상처 사이로 석류(石榴) 같은 서정의 열매들을 오롯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밤에 뒤울을 서성이던 시퍼런 달빛 같기도 하고, 대밭에서 울던 서늘한 바람 같기도 한 그의 시에서는 그가 두고 온 남도의 걸쭉한 가락이 구성지게 들려온다.
_이시백(소설가)
7년 전, 『하늘 공장』을 발간하며 임성용 시인은 하늘 공장을 세워야겠다고 했다. 화려한 자본주의의 외면에 가려진 전국 노동자들의 천막 농성, 굴뚝 농성, 철탑 농성. 인간다운 노동으로 삶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농성을, 투쟁을 하지 않으면 기계의 일부, 자본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사회보다 차라리 하늘 공장을 세우는 게 나을 것이라 했다.
7년 후 오늘, 아직 세상은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곳곳에서 힘겹게 싸우는 노동자들과 패배하는 노동자들. 그러나 어느 노래 가사처럼 아흔아홉 번 패배해도 꿋꿋이 나아가는 전체 노동자들의 투쟁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시인이 말했듯 노동자의 몸은 "자본의 인간 파괴 기록 문서"지만 시인이 그 무엇보다 주목하는 노동자의 용기, 희생, 집념, 집중, 날카로운 눈빛, 바로 이것은 과거보다 더욱더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_복기성(쌍용자동차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 시인의 말
쓰라린 세월 너머
더 쓰라린 너울이 몰려옵니다.
가슴에 잠기는 노래는
하염없습니다.
잔인하게 타버린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밤이 깊었으니, 돌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국가를 버리고 노동을 버리고
결국엔 혼자 남은 상처를 안고
죽은 별 하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죽거나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합니다.
가슴이 저미도록 죽거나
가슴이 저미도록 살아야 합니다.
_ 임성용
목차
목차
기계의 눈
김말굽 씨의 가방하나
코
코끼리
위험한 기술자
풀타임
노동 거부 운동
불나비
푸른 악수
트럭
웃음의 꼬리
연탄구이집에서
텅빈 울림
수입검사 김과장
근로자복지아파트
돌아보니 그가 없었다
바이올린을 켜는 노동자
제2부
달
모자
흘림
거머리
갑골문자
먼지의 두께
아담의 정원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무쇠 바람
그늘을 옮기다
아나고
살아 있는 설화(設話)
비둘기
장날 오후
대파밭에서
그럼에도 또 그럼에도
제3부
돌아오라,노래여
서쪽으로
부리
자작나무
누님의 가실
버찌가 익을 때
대성연탄공장 굴뚝
어머니의 방
방아깨비의 노래
모진 꿈
백학
실연은 없다
노인자살예방센터
낮 열두 시
시가 나를 용서케 하고
똥꽃
꽉!
제4부
억부인 국숫집
거기 가면 일이 있다
그녀의 작은 책방
밤차를 타고
돌마루 이야기
목숨에 대하여
행복빌라 버스 정류장
차가운 꽃들이 피어 있는 공원
자정의 픽션
다락방 소녀
개 한마리
돼지 복지법
대한민국이라는 엽기 소설
새우리말사전 1
새우리말사전 2
새우리말사전 3
새우리말사전 4
해설 노지영
시인의 말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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