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시인(실천시선 225)
일과시 동인 시집 『못난 시인』. 김명환, 김용만, 김해자, 김해화, 문동만, 서정홍, 손상렬, 송경동, 이한주, 조태진 10명의 시인이 각각 10편의 시 작품을 모아 엮었다. 일과시 동인은 모두 노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현장에서 피땀 어린 노동을 통해 참된 삶의 가치와 진정성을 시로써 구현하는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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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일과시 동인 시집 『못난 시인』이 창간 20년 만에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2005년 제8집 『저 많은 꽃등들』이 나온 후 10여년 만이다. 제9집 『못난 시인』은 김명환, 김용만, 김해자, 김해화, 문동만, 서정홍, 손상렬, 송경동, 이한주, 조태진 10명의 시인이 각각 10편의 시 작품을 모아 엮었다. 일과시 동인은 모두 노동자들로 구성되었으며, 현장에서 피땀 어린 노동을 통해 참된 삶의 가치와 진정성을 시로써 구현하는 시인들이다.
노동자시인 모임인 '일과시' 동인이 만들어진 지 스무 해가 지났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걸 깨닫고,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순천에서 여수에서 창원에서 마산에서 부산에서 서울에서 바쁜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목숨보다 질긴 시를 끌어안고 모였습니다. 동인들은 일하면서 쓴 시를 가난한 밥상 위에 펼쳐놓고 한 편 한 편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눈 다음 동인 시집을 해마다 펴냈습니다. 몇 해 전부터 모임이 시들해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동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끄집어냈습니다.
"날이 갈수록 하루하루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 형제들이 늘어나고, 생명의 텃밭인 농촌은 무너져 내립니다. 정치와 언론은 모두 돈과 권력에 휘둘려 꼭두각시 노릇을 해댑니다. 그러니 빈부의 차이는 심해지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기댈 언덕조차 사라졌습니다. '노동청년 한 사람은 이 지구 위에 있는 모든 황금을 합친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던 우리는 여태 어찌 살아왔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비틀거리는데, 시를 쓴다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바쁘다는 핑계 둘러대지 말고 다시 한 번 모여 봅시다."
'일과시' 동인을 만든 지 스무 해가 되던 지난해 여름, 우리는 잠시 잊고 살았던 목숨보다 질긴 시를 끌어안고 다시 모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동인들 모두 잠시 시를 잊고 살아온 것 같지만, 속으로는 더 뜨겁게 시를 끌어안고 살았다는 것을 만나자마자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남의 가게 간판을 달아주는 막노동꾼으로, 공사판 철근장이로, 답답하고 위험한 철길을 달리는 노동자로, 힘든 사회복지사로, 밥 먹듯이 한뎃잠을 자는 희망버스 기획자로, 빈 들녘을 지키는 산골 마을 농부로, 가난한 시인으로, 모두 눈물겹도록 쓸쓸하게 살아온 게지요. 스무 해 전이나 지금이나 동인들은 흔들리지도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이 시집은 동인들이 여태 살아오면서 쓴 시 가운데 열 편씩 가려 뽑아 펴내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는, 투박하지만 땀 냄새와 사람 냄새 물씬 나리라 생각합니다. 멋이나 부려 이름이나 알리자고 쓴 시는 한 편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아파하지 못하고, 먹고사는 일에 목을 매달고 살아왔음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도 시를 쓰는 일입니다. 시를 쓰는 일이 무어 '대단'하거나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살아있는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난한 이웃들과 땀 흘려 일하며 정직하게 살고 싶기에 시를 씁니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돈보다 더 귀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사람이 스스로 가난하게 살려는 마음이 없으면 남을 헐뜯고 속이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사람의 길'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시를 쓰는 까닭은 평등과 자유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아무도 부유하지 않고, 모두가 가난하면서도 모두가 부유한 세상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시집이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가난하고 상처 받은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나누고 섬기며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다면…….
§. 추천의 글
어느덧 스무 돌을 넘긴 노동자시인 모임 일과시의 기념시집을 읽으며 내게 떠오른 것은 시 「전국적으로」에 묘사된 것과 같은 동인들의 연대의 모습이다. 그들은 지난 20년 동안 순천에서 여수에서 창원에서 마산에서 부산에서 또 서울에서 바쁜 일손을 잠시 내려놓고 '목숨보다 질긴 시를 끌어안고' 모였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일과 시의 일치, 변혁운동과 노동운동의 통일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들의 삶이 그렇듯이 그들의 시는 투박하다. "거친 꿈들이 저당 잡힌 거리"(손상렬, 「새벽길 2」)에서 "쫓고 쫓기며 한 시대를 보낸 상처"(김해화, 「가을 모후산」)가 그들의 언어 곳곳에 손바닥 굳은살처럼 박여 있기에, 그들 시의 미학적 투박함은 그 자체 우리 시대 노동시의 역설적 명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김해자, 「어진내에 두고 온 나」)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듯이 일과시를 위해 뻗은 그들의 손 또한 "마침내 평등의 대지를 마련할 연장이며/끝내는 착취와 죽음의 노동을 몰아내고/해방 조국에 꽂을 깃발"(조호진, 「손에 대하여」)로 펄럭일 것임을 믿는다. 그 날을 위해 바친 일과시 동인들의 말없는 헌신과 오랜 기다림을 오늘 우리는 기억한다.
_염무웅(문학평론가)
§. 시인의 말
일과시 동인 창간 20주년 기념시집을 펴내며
지나온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처럼 가슴 아픈 일은 없습니다.
90년대 초, 소비에트연합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왔던 격정의 80년대를 되돌아봤습니다. 먼 길을 달려왔지만 날은 저물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 많던 동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받아들인 마음은 머리로 바꾸지만, 몸으로 만들어낸 마음은 몸뚱이가 부서져도 바뀌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존감보다, 조그만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운 들판을 헤매는 외로움이 우리를 힘들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외로움이 우리를 모이게 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흔들리고 있는 우리 자신을 다잡고 싶었겠지요.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게 목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꼭 20년이 지났습니다. 그 20년을 되돌아보기가 무섭습니다.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몸이 망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년 전의 외로움은 없었습니다. 아, 다들 잘 견뎌왔구나! 죽지 않고, 이렇게들 마음 지키며 살아냈구나! 그 대견함이 우리에게 지나온 시절을 되돌아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동안 써온 글들을 다시 읽고 고치고, 동인들이 함께 읽고 고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위 분들과 함께 읽고, 고쳐 쓰기 위해 시집을 엮어 냅니다. 우리들이 쓴 시가 어느 이름모를 한 분에게라도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내 '못난 시인'들이 쓴 시들을 읽어주신 염무웅 선생님, 힘든 형편에 팔리지도 않는 노동자들의 시집을 펴내주신 실천문학사 식구들께 감사드립니다.
2014년 가을에
일과시 동인
책속으로 추가
어진내에 두고 온 나
지금도 청천동 콘크리트 건물 밖에는 플러그 뽑힌 채 장대비에 젖고 있는 도요타 미파 브라더 싱가 미싱들이 있다 나오다 안 나오다 끝내 끊긴 황달 든 월급봉투들 무짠지와 미역냉국으로 빈 봉지를 우적우적 채우고 있다 얼어붙은 시래기 걸려 있는 담 끼고 굽이도는 골목 끝, 아득하고 고운 옛날 어진내라 불리던 인천 갈산동 그 쪽방에는 연탄보다 번개탄을 더 많이 사는 어린 소녀가 살고 있다 야근 마치고 돌아오면 늘 먼저 잠들어 있는 연탄불과 활활 타오르기 전 곯아떨어지는 등 굽은 한뎃잠이 있다
삼산동 논 가장자리에 앉혀진 그 붉은 벽돌집에는 아직도 비틀대는 깨진 유리창과 미친 칼을 피해 옆방으로 도망친 늙은 아버지 피 묻은 런닝구와 선홍색 유리조각들이 장롱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배추밭에 배추나비 한가로이 노닐던 가정동 스레트 집 문간방에는 사흘 걸러 쥐어터지던 젊은 해당화가 살고 있다 지금도 들리는 어린아이 울음소리 듣지 않으려 귀 막고 이불 속에 숨어 있다 저도 몰래 뛰쳐나가 패대기쳐진 여인과 아이와 한 덩어리 된 어린 여자 눈물방울이 아직도 흙바닥에 뒹굴고 있을까
교도소가 마주 보이던 학익동 모퉁이 키 낮은 집 흙벽 아궁이가 있던 옛 부엌엔 전단지 속 휘어 갈긴 어린 해고자 메모처럼 '배가 고파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애호박 몇 조각 둥둥 떠다니는 밀가루 죽이 아직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효성동 송현동 송림동 바람 몰아치던 주안 언덕배기 그 작고 낮은 닭장 집 창문마다 한밤중이면 하나둘 새어 나오는 쓸쓸하고 낮고 따스한 불빛
이상하기도 하지
스무 해 도망쳐왔는데 아직도 내가 거기에 있다니
내가 떠나온 그곳에 다른 내가 살고 있다니
푸른 작업복에 떨어지는 핏방울
아직도 머리채 잡혀 끌려가고 있다니
앞으로 달려온 줄만 알았는데 뛰어도 제자리
러닝머신 위에서 뜀박질이었다니
쇠밥
흙먼지에 섞어 먹는 밥
싱거우면 녹가루에 비벼 먹고
석면가루도 흩뿌려먹는 밥
체인블럭으로 땡겨야 제 맛인 밥
찰진 맛 좋으면 오함마로 떡쳐 먹고
일 없으면 고층 빔 위에 혼자라도 서서 먹는 밥
시큼한 게 좋으면 오수관 때우며 먹고
새콤한 게 좋으면 가스관 때우며 먹고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 하는 밥
무엇보다 나눠 먹는 밥
1톤짜리 앵글 져다 공평하게 나눠 먹고
크레인 포크레인 지게차 기사도 불러
함께 비지땀 흘리며 먹는 밥
석양에 노을이 질 때면
아내와 아이도 모두 사이좋게 앉아 먹는
그 쇠밥
손에 대하여
어찌 보면 오함마 같고
어찌 보면 쇠갈쿠리 같은
두꺼비 등짝 같은 이 흉한 손을 무엇에 쓸까
넥타이도 멜 줄 모르는 못난 손
식구에게 돼지고기 한 근도 못 사다주는 가난한 손
하얀 손에 주눅 들어 쩔쩔매는 겁쟁이 손
때에 절고 기름투성이인
우악스런 이 손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손이여,
후렌지에 손등 찍혀 피 적셔진 손이여
우리가 건설했다
거칠고 황량한 들판에
철골을 세우고
굴뚝을 붙박고
파이프를 용접하고 배관하고
그리하여, 기골 장대하게 우뚝 선 저 공장을
우리가 건설했다
그러나 우리는 빈 손
손은 계급이다
손은 무기이고
마침내 평등의 대지를 마련할 연장이며
끝내는 착취와 죽음의 노동을 몰아내고
해방 조국에 꽂을 깃발이다
어찌 보면 오함마 같고
어찌 보면 쇠갈쿠리 같은
이 거친 손으로
서러운 눈물이나 훔쳐서는 안 되리
어둠을 찢어발길 이 뜨거운 주먹으로
허공 향해 종 주먹질이나 해선 안 되리
암, 안 되고말고
손이여, 망치를 든 건설의 주인이여
그대가,
이 땅의 마지막 희망이고
이 땅을 결박시킬 모든 끄나풀을
단숨에 끊어버릴 유일한 사랑이다
목차
목차
김명환
나무 / 지장천 / 어색한 휴식 / 갈매기의 꿈 / 망실공비를 위하여 2 / 첫사랑 / 돋보기 / 자전거 / 이하역 / 계약직
김용만
황토 / 어머니 / 노동절 / 전국적으로 / 별이 되어 / 산동네 / 못난 시인 / 날마다 시를 쓴다 / 기분 좋은 밤 / 달개비 꽃
김해자
배부른 여자 / 아시아의 국경 / 무화과(無花果)는 없다 / 인연 / 심지에 쓴 시 / 죽을 만큼 천천히 / 승천 / 축제 /
넝쿨장미 / 어진내에 두고 온 나
김해화
가을 모후산 / 가난한 꽃편지 / 가을 풍경소리 / 홍란꽃 / 청천강에서 아버지를 보다 / 철근살이 / 산 철근이 죽은 철근에게 /
유서 / 두메양귀비 / 할미밀빵
문동만
박쥐 / 눈썹과 눈꺼풀 / 등 / 수직의 배반자 / 환관의 무덤 / 가시 / 新창세기 대한문편 / 뿔 / 미루나무 살풍경 / 제빙 기술자
서정홍
세월은 / 상남동에서 만난 하느님 /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 어디선가 / 나를 두고 온 자리 / 목욕탕에서 1 / 58년 개띠 /
아내는 언제나 한 수 위 /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 언제부턴지
손상렬
서울에는 서울이 없다 / 눈 오는 날, 길을 나서다 / 순례자는 어디에 오고 있는가 2 / 치악산 11 / 천국에서의 하룻밤 /
우울한 암각화 / 새벽길 2 / 봄 / 낡은 의자 / 치악산 1
송경동
손 / 쇠밥 / 마지막 술집 / 잃어버린 안경 /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하얀 비 / 어느 날 경찰서를 나오며 /
무허가 /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 읍내 형수
이한주
봄비 / 눈 / 겨울 / 기둥에 대하여 / 인구주택총조사 / 초동리 노래자랑 / 열여덟 딸에게 / 열세 살 평화시장 /
내 몸만 모른다 / 일과시
조태진
손에 대하여 / 가투의 추억 / 오목교, 뚝방동네, 소년원을 위하여 / 비 오는 날 소주를 마시다 / 상처 난 것들의 향기 /
이 지상의 집 한 칸 / 꽃과 땅 / 벌집 / 가리봉, 봄 / 가리봉, 겨울
꼬리글
일과시 동인 발자취
발문 이재현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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