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에 시를 베다(실천시집선 226)
2001년『사람의 문학』등단 이후, 시집『기차를 놓치다』와 산문집『그대라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손세실리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시인의 시선은 늘 서럽고 애달픈 것들을 향해 있다. 기계적인 현실 속에서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분주하게 날갯짓하는 새처럼 시인의 말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아파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오지랖 넓게 보듬는 엄마 품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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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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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긍정하는 고갯짓
2001년『사람의 문학』등단 이후, 시집『기차를 놓치다』와 산문집『그대라는 문장』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손세실리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의 시선은 늘 서럽고 애달픈 것들을 향해 있다. 기계적인 현실 속에서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분주하게 날갯짓하는 새처럼 시인의 말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아파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오지랖 넓게 보듬는 엄마 품과 닮았다.
서럽고 아픈 것들을 가만히 만지다
시집「꿈결에 시를 베다」에는 발목 잘린 유기견, 삐걱거리는 테이블, 구걸하는 캄보디아 소년, 다문화 가정, 어머니 등 다양한 대상들이 등장한다. 세상의 주역이 아닌 변두리에서 서성거리고 버려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른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그저 연민에 겨운 감정 놀이의 산물로써 시의 형식만 입고 있는 것일까? 시집의 발문을 쓴 미술가 임옥상의 말을 빌리자면 "시인은 연민만 갖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시인 스스로도 위로를 받는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대상들을 주전부리 우물거리듯 아무렇게나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 작품 속 화자들은 작고 나약한 것들의 울먹임을 내치지 못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생에 지친 대상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시상으로 곰삭아지는 과정을 거친다.
구수하게 곰삭은 시상은 투명한 젤리처럼 응고되어 불우하지 않은 몸, 하지만 마음이 허하여 제 이웃을 볼 줄 모르는 누군가에게 전달된다. 시인은 아마도 이 세상에 존중받지 못해 슬퍼하고 있을 존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을 지녔을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온 뼘"이 되지 못한 "반 뼘"들을 위해 언제나 조근조근 위안하는 법을 곰곰궁리하고 있을 것이다.
마석가구공단 뒤켠 쪽방촌 어귀엔 무슨 무슨
마트라는 한글 상호 하단에
siekya라 써넣은 상점이 있다
전자사전은 물론이거니와 네이버 지식인에도
올라있지 않은 국적불명의 이 영단어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이 배어 있다는데
말하긴 뭣하지만 이 새끼 저 새끼
망할 놈의 새끼… 할 때의 영문표기란다
가게 주인의 상투적인 말투를 Hi쯤으로 알고
딴엔 멋진 한국식 인사라며 고용주에게
시캬 시캬 하다가 혼쭐났다는 일화는
한 편의 빼어난 블랙코미디다
샬롬의 집에 초대 받아 시를 낭송했다
손가락 세 개를 공장 마당에 묻고
방글라데시로 추방당한 씨플루에게
폐암 말기로 고국에 돌아가
히말라야 끝자락에 묻힌 네팔인 람에게
열세 번의 구조요청을 묵살당한 채
혜화동 길거리에서 얼어 죽은
조선족 김원섭 씨에게 사죄하고자 섰다
시인으로서가 아닌
코리안 시캬로 섰다
_「시캬」 전문
모 라이브 카페 구석진 자리엔
닿기만 해도 심하게 뒤뚱거려
술 쏟는 일 다반사인 원탁이 놓여있다
거기 누가 앉을까 싶지만
손님 없어 파리 날리는 날이나 월세 날
나이든 단골들 귀신같이 찾아와
아이코 어이쿠 술병 엎질러가며
작정하고 매상 올려준다는데
꿈의 반 뼘을 상실한 이들이
발목 반 뼘 잘려나간 짝다리 탁자에 앉아
서로를 부축해 온 뼘을 이루는
기막힌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반 뼘쯤 모자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다
생의 의지를 반 뼘쯤 놓아버린 누군가
행간으로 걸어 들어와 온 뼘이 되는
그런
_「반 뼘 」 전문
이밖에도 시집『꿈결에 시를 베다』가운데 심심치 않게 나오는 소재는 바로 어머니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존재. 어머니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단순히 예찬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시집『꿈결에 시를 베다』속에는 '어머니'에 관련된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세상에 태어난 여자는 누군가의 딸이 되고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어머니라는 존재를 떼어 놓고 삶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거 알아? 전 세계 3천 여 종의 뱀 가운데
누룩뱀을 포함한 0.3%만이 모성애를 가졌다는 거
산란 즉시 줄행랑인 대부분의 뱀과는 달리
친친 감고 빙빙 돌면서 따뜻하게 품어준다는 거
그러다가 체온이 떨어지면 잠시 외출해
나뭇가지에 납작 엎드려 햇볕을 쬐기도 하지만
몸이 덥혀지면 먹이사냥도 마다한 채
새끼들 곁으로 서둘러 돌아온다는 거
저 없는 사이 적의 표적이 될지 몰라 그런다는 거
부화된 새끼가 스르르 길 떠날 때까지 보호한다는 거
그러다 쇠잔해져 맹금류에게 잡아먹히기도 한다는 거
오래 전 인삼장수에게 핏덩이 떠맡긴 여자
밥은 굶어도 사람 찾기 방송은 챙겨보는 여자
죽기 전 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여자
왜 버렸어 울부짖는 자식과
미안하다 잘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고갤 못 드는 출연진을 지켜보며
동병상련이 되고 마는 여자
엔딩 자막이 사라질 때까지
자릴 뜨지 못하는 여자 오늘도
차디찬 마룻바닥에 우그려 눈물바람이었을 여자
누룩뱀만도 못한 시절을 살다가
늘그막에야 누룩뱀으로 돌아온 여자
나를 낳은…… 곡절 많은
_「늙은 누룩뱀의 눈물」 전문
혀를 날름거리고 표독스러워 보이는 뱀의 겉모습은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자신의 뱃가죽 안에 넣고 기르는 캥거루나 등에 업고 다니는 코알라와는 분명 다른 이미지다. 그러나 시「늙은 누룩뱀의 눈물」에 나오는 누룩뱀은 다른 종과 달리 모성을 지니고 있는 뱀이다. 시인은 누룩뱀과 어느 한 여자의 삶을 견주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잘 아는 지인에게 이야기를 건네듯 부담스럽지 않은 어조로 조근조근 풀어 나간다. 누룩뱀과 어머니의 공통점은 모정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자는 누룩뱀과 달리 모정을 똬리 틀어놓은 채로 있어야 했다. 그렇게 말 못할 사연을 품고 한 세상을 살아야 했을 여자에게 우리들은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여자의 삶이 누룩뱀과 대비되면서 생의 처연함을 느껴야 하는 지점이다.「늙은 누룩뱀의 눈물」외에도 어머니와 관련된 시 들이 몇 편 더 있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시가 지루하지 않게 읽히는 지점은 중첩되는 소재라고 할지라도 가지각색의 이야기로 다루고 있는 점이다.
까막눈으로 살아온 팔순 노모
복지관 한글반에 입학하던 날
숙제로 내준 자음 쓰고 또 씁니다
교본 베끼는 일도 괴발개발이지만
소리 내어 읽기는 가르쳐주고 돌아서기 무섭게
헷갈려합니다 특히 ㅁ은 그 정도가 심해
우물쭈물하다 끝내 말문을 봉해버립니다
단번에 각인시킬 묘안을 짜내지 않으면
때려치울 것 같아 궁리 끝에
김감심
피란 통 보릿고개를 배곯지 않고 넘겼다더니
이제 보니 그거 다 엄마 이름 덕이네 뭐
미음이 한 그릇도 아니고
세 그릇씩이나 든 이름을 가졌으니
그럴 수밖에
_「미음 끓는 저녁」 부분
시 속에 등장하는 노모는 글을 모르는 까막눈이다. 노모는 왜 글을 배우지 못했을까. 시에서 언급하다시피 전쟁을 겪은 뒤 자식을 키우기 위해 자신을 위한 삶은 저버려야 했던 배경이 나온다. 한글 'ㅁ'을 계속 헷갈려 하며 "우물쭈물하다가 끝내 말문을 봉해버리는" 노모처럼 사람이라면 자신이 잘 모르는 대상 앞에서 쉽게 긴장을 하기 마련이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시인이 그리고 있는 노모 모습에서 금세 감정이입이 되고 만다.
노모의 딸은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성향을 잘 간파하고 있다는 듯이 "단번에 각인시킬 묘안을 짜내지 않으면" 어머니가 한글 공부를 "때려치울 것 같아" 궁리한다. 받아쓰기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글씨 쓰기를 연습할 때 한 번쯤은 자신의 이름을 써 보기 마련이다. 딸이 생각한 묘안은 어머니 이름인 '김감심'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동음이의어인 글자 'ㅁ'과 음식인 미음을 이야기하며 재치 있게 잔잔한 감동으로 이끈다.
노모는 어쩌면 운명적으로 "미음이 세 그릇씩이나"들어 있는 이름으로 힘겨운 세월을 이겨냈을 것이다. 또한 자식과 이웃들에게 미음같이 뜨끈하게 마음을 쓰고 보살피려 했을 것이다. 이렇듯 손세실리아 시인의 작품 속에는 재치 있는 시적 유희가 등장한다. 시를 전개하는 법에 있어서도 시인은 이야기 구조를 선택한다. 마치 프레파라트 속 조밀하게 얹힌 양파 조직처럼 시의 결을 곱게 다지고 있다.
§. 추천의 글
괭이갈매기의 저공비행이 목전에서 펼쳐지는 바닷가에서
은유나 수사가 끼어들 틈이 없이 솟아나는
시의 절벽에 그녀는 매달려 있다.
과녁을 조준하는 사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
일순 호흡을 멈추는 긴장을 속에다 감춘 생래적인 시인의 모습이다.
소심함 머뭇거림 뒷걸음질…….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인지를 알고 있
는 그녀는 누룩뱀처럼 온몸으로 꿈틀거리며, 아니 가을 가뭄을 뚫고 촉을
틔운 수선처럼 절묘하게 시를 쓴다.
울컥울컥 삶의 생생함을 펼쳐놓는다.
_문정희 (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한국의 시인들은 모두 다 한국어로 시를 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진정 한국어로 시를 쓰는 시인은 많지가 않다. 몇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뿐이다. 손세실리아의 시가 '한국어'라는 사실은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낭송하지 좋은 시, 만약 작곡을 한다면 바로 노랫말이다.
_임옥상 (미술가)
§. 시인의 말
섬에 들었다. 붕괴 직전에 이른 폐가에 몸을 의탁한지 4년, 침구로 배어들어 등짝까지 축축해지는 지독한 습기와 고질적 두통의 원인인 곰팡이와 천장 위 고양이와의 동거도 같은 햇수다. 이 밖의 무수한 복병에도 불구하고 섬을 뜨지 못했던 건 인간들로부터 버려지고 내쳐진 오두막의 처연한 눈빛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사철 꽃 지는 일 없게 마당을 가꾼다거나, 가만가만 말 걸어주고 칭찬해주는 따위가 전부였을 뿐, 허나 진심이 읽혀졌던 걸까? 그는 눈 먼 보리 숭어의 비상과 화염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장엄한 놀을 앞마당에 펼쳐주었다. 분에 넘치는 포상이다.
사는 일이 매양 이러하다. 어눌하고 촌스럽고 거절에 서툴러 궂은일을 자초하기도 한다. 오지랖이 넓어 아프고 고달프고 사무치고 아련하다. 시가 나를 향해 제 발로 찾아와준 건 어쩌면 이런 못난 구석이 눈에 밟혀서 일게다. 혼자 놔둘 없게 위태로워 손 내밀어 준 것일 게다. 한 일에 비하면 황홀한 포상이다.
시에게 진 빛이 많다.
어림없겠지만 이 시집으로 그 빛이 일부나마 변제됐으면 좋겠다.
_ 손세실리아
목차
목차
홀딱새 | 채송화 | 나를 울린 마라토너
제2부 탄식 | 빙어 | 세족례 | 텃세 | 수목장 | 문전성시 | 불가촉천민 | 당귀밭에서 |은유적 생 | 강정
조천(朝天)에서
제3부 꿈결에 시를 베다 | 필사적 필사(筆寫) | 팔삭둥이 수선에게 | 노안 | 욕타임 | 파일럿 | 통한다는 말 | 낌새
부적 |적멸궁에 들다
제4부 섬 | 몸국 | 바닷가 늙은 집 | 방명록 | 명진스님 왈 | 금강경을 읽다 | 벼락지 | 시캬 | 아버지의 헛기침
올레, 그 여자 | 사재기 전모
제5부 고해성사 | 첫사랑 | 개화 | 뒷감당 | 명판결 | 시집 코너에서 | 늙은 누룩뱀의 눈물 | 귀머거리 연가 | 목숨
어떤 말 | 유산 | 내 시의 출처
발문 임옥상 | 시인의 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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